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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숫자로 알아보는 국내 最古 25] 현존하는 국내 최초의 호텔 '조선호텔'

발행일시 : 2017-03-20 17:00

-1914 (올해로 103주년을 맞은 조선호텔 개관 연도)

-140,666 (조선호텔 초기 건립비는 84만4000엔으로 비슷한 연도 쌀 가마니(6엔)로 환산했을 때 양)

-106 (현 조선호텔 주소와 개관 당시 수용 인원 수)

-201 (역사의 격변기를 함께한 특별 귀빈실 '임페리얼 스위트' 객실 번호)

-7000 (1950년대 조선호텔이 최초로 할리우드 영화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일주일간 무료로 상영했고 이 때 총 관람객 수)

1914년 조선호텔 개관 당시 모습이 담긴 엽서. 사진=웨스틴조선호텔 제공 <1914년 조선호텔 개관 당시 모습이 담긴 엽서. 사진=웨스틴조선호텔 제공>

지난 한 세기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역사적 순간을 장식했던 장소 1순위로 꼽히는 곳이 있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이하 조선호텔). 현존하는 국내 최초 호텔로 103년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호텔이 신축된 시기는 일제강점기인 1914년이다.

1914년 조선호텔 콘서트홀 모습. 사진=웨스틴조선호텔 제공 <1914년 조선호텔 콘서트홀 모습. 사진=웨스틴조선호텔 제공>

사실 국내 최초 호텔은 따로 있다. 1888년(고종 25년) 일본인 호리 리키타로가 인천시 중구에 지은 '대불호텔'과 1889년 중국인 양기당(梁綺堂)이 역시 인천에 세운 '스튜어드호텔'이 국내 1, 2호 호텔로 알려져 있다.

이 호텔들은 지역 경제상황에 의해 매각이나 음식점 등 다른 용도로 사용돼 오다 헐리면서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대불호텔은 지난 2월 인천 중구청이 25억8900만원의 예산을 들여 복원했지만 역사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국내 최초 승객용 수직열차(현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조선호텔은 1900여㎡(580평)에 총 52개 객실과 한·양식당, 커피숍, 바, 댄스홀을 갖춘 볼룸, 두 개의 별실과 도서실, 헬스장 등을 갖춘 초호화 건물이었다.

조선호텔 동호회 활동으로 추정되는 장미화원이 활동사진 프로그램을 안내하는 1922년 9월 6일자 동아일보 신문 광고. 사진=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캡처 <조선호텔 동호회 활동으로 추정되는 장미화원이 활동사진 프로그램을 안내하는 1922년 9월 6일자 동아일보 신문 광고. 사진=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캡처>

독일 건축가가 설계를 맡아 지하 1층 지상 4층 벽돌 건물로 세워졌다. 건립비용은 84만4000엔이 투입됐다고 한다. 1927년 쌀 한 가마니 가격이 6엔이었으니 호텔 건립 비용은 쌀 14만666가마니에 해당한다. 최근 쌀 10㎏이 약 3만원, 1가마니는 약 24만원으로, 이를 환산하면 현재가로 약 340억원이 소요됐다고 추정할 수 있다.

1936년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무용가 최승희씨가 조선호텔 커피를 마시는 모습. 사진=웨스틴조선호텔 제공 <1936년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무용가 최승희씨가 조선호텔 커피를 마시는 모습. 사진=웨스틴조선호텔 제공>

조선호텔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주인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일본 철도청(1914~1945년) △광복 후 미군정청 운수국(1945~1947년) △대한민국 정부 교통부(1948~1963년) △국제 관광공사(現 한국관광공사, 1963~1970년) 등이 거쳐갔다. 1995년 6월 신세계그룹이 호텔 지분 100%를 확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65년 조선호텔의 주인이었던 국제관광공사가 반도조선호텔 아케이드을 개점한다는 1965년 1월 21일자 동아일보 신문 광고.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1965년 조선호텔의 주인이었던 국제관광공사가 반도조선호텔 아케이드을 개점한다는 1965년 1월 21일자 동아일보 신문 광고.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조선호텔은 개관 후 국빈, 고위관리, 외국 인사가 투숙하는 영빈관 역할을 도맡아 하는 등 국내 정치·경제·사교 중심지 역할을 했다. 마를린 먼로와 맥아더 장군, 포드 미 前 대통령, 레이건 미 前 대통령 등 VIP 고객이 오면 항상 묵었다.

대표적인 VIP 객실은 일제시대 때 '임페리얼 수우트'라 불린 201호다. 1945년 8·15 광복 직후인 9월 미군 사령관 하지 중장(미군 제24사단 고급장교 숙소)이 이 곳을 거처로 정하고 미군정을 이끌었다.

이 객실에 투숙한 최초 한국인은 이승만 박사로 기록돼 있다.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 온 이 박사는 1946년 4월 거처를 옮길 때까지 201호실을 정치 활동 중심거점으로 삼았다. 이 대통령에 의해 일본식 명칭인 '조센호테루'가 '조선호텔'로 개칭됐다.

1950년 6월 28일에는 북한 인민군이 호텔을 점령해 호텔에 남아있던 고급 위스키와 포도주 등을 모두 마셔 버렸다. 한 북한군 장교가 호텔 세면 비누를 과자로 착각해 깨물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63년 당시 박정희 장군은 이 객실에서 제3공화국을 탄생시켰다. 정권을 잡은 박 대통령은 조선호텔을 세계적 수준의 호텔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1967년 옛 건물을 부수고 현대식 새 건물을 건축토록 했다.

시설과 규모면에서 반도호텔과 쌍벽을 이뤘던 조선호텔은 1964년 서울에서 개최된 PATA(태평양 아시아지역 관광협회) 총회 때 워크숍을 유치했고 험프리 미국 부대통령이 머물기도 했다. 그러나 1967년 7월 6일 신규호텔 건설을 위해 철거돼 53년이라는 긴 역사를 마무리지었다.

조선호텔이 개보수를 끝내고 재개관했다는 1970년 3월 17일자 경향신문.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조선호텔이 개보수를 끝내고 재개관했다는 1970년 3월 17일자 경향신문.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1970년 3월 17일 지하 2층, 지상 20층의 현재 조선호텔이 완공됐다. 새로운 조선호텔은 한미 자본이 각각 550만달러씩 출자돼 총 1100만달러라는, 당시로는 엄청난 공사비가 투입됐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은 위에서 보면 '人'자 모양을 띄고 있다. 4층 건물이었던 호텔을 헐고 새로 짓기로 했을 당시 정육면체 빌딩이었지만 개·보수 과정에서 옛 조선호텔 상징인 팔각정과 새 호텔 축을 변경해 곡선을 이룬 人자가 됐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투숙객 80% 이상이 해외 고객이라고 한다. 이중 1년 동안 25박 이상 투숙하는 고객이 약 50% 정도로 단골이 많다고 호텔 관계자는 전했다.

정영일기자 wjddud@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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