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전. 알바노조와 유가족, 피해자 친구들이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 본사를 방문했다. 사진=알바노조 제공
지난 23일 오전. 알바노조와 유가족, 피해자 친구들이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 본사를 방문했다. 사진=알바노조 제공

지난해 12월 14일 새벽 3시 30분쯤 경북 경산에 위치한 한 CU편의점에서 야간근무를 하던 30대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조선족 취객이 휘두른 흉기에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피의자는 20원짜리 비닐봉툿값 때문에 해당 알바 노동자와 실랑이를 벌였다. 막무가내로 20원을 낼 수 없다며 버티며 해당 공포분위를 조성하던 이 취객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오기전에 돌아갔다. 그러나 화를 참지 못하고 40분 후 집에서 커다란 흉기를 가지고 편의점으로 돌아왔다. 해당 알바 노동자는 사방이 막힌 편의점 계산대 구조상 피하지 못하고 결국 싸늘한 주검이 됐다.

그로부터 100일째가 되던 지난 23일 오전. 알바노조와 유가족, 피해자 친구들이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 본사를 방문했다.

이들의 요구는 총 4가지였다. ▲BGF리테일 홍석조 회장과 박재구 대표의 공개적인 사과 ▲유가족에게 합당한 보상 ▲편의점 알바노동자들을 위한 안전 대책 마련 ▲무리한 야간영업을 중단 등이다.

지난 23일 오전. 알바노조와 유가족, 피해자 친구들이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 본사를 방문했다. 사진=알바노조 제공
지난 23일 오전. 알바노조와 유가족, 피해자 친구들이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 본사를 방문했다. 사진=알바노조 제공

사실 편의점 가맹본부(본부)에서는 이들을 요구를 모두 수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확인 결과 BGF리테일은 피해자의 가족들을 위한 최소한의 성의도 보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후 100일이 지나도록 BGF 축은 피해자 가족들에게 단 한차례의 위로 전화도 하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피해가족들의 전화요구조차 묵살했다.

사건 다음 날 BGF리테일을 찾은 알바노조에게 본사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피해자 측과 긴밀한 연락을 하겠다는 본사 관계자의 답변을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최기원 알바노조 대변인은 이날 "BGF리테일 본사가 피해자 측과 한 약속이 전혀 이행되지 않았다"며 "공개 면담을 통해 사과와 보상, 안전대책 개선 등의 확답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BGF리테일 측은 "편의점사업에 대해 피해자 측과 이해상충되는 부분이 있다"며 "프랜차이즈 사업상 가맹점주의 권한과 의무 등은 본사에서 관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는 입장마을 밝혔다.

경찰통계에 따르면 편의점에서 매년 300~400건에 이르는 살인, 강도, 강간, 추행, 방화 등 강력범죄가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편의점 알바노동자들은 경찰신고와 CCTV에 의지해야 한다. 효과적인 공간활용이라는 명목으로 탈출구 없는 계산대가 설치되고 취객을 비롯한 온갖 손님과의 말다툼은 알바들의 인내에만 의존할 뿐이다.

BGF 관계자는 “CCTV 설치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항변했지만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지원하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미뤘다.

지난해 BGF리테일의 영업이익은 2174억원에 이른다. 각종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야간 아르바이트 등에게는 사후약방문에 지나지 않는 CCTV 등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매출수수료를 받으며 본사의 배만 불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13년 5월 30일 오전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섬유센터에서 CU편의점을 운영하는 BGF 리테일 박재구 사장(맨 오른쪽) 등 임원진들이 CU편의점 운영자 사망사건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박 사장은 운영자 자살 직후 사망진단서 변조 등 사건 은폐 의혹에 대해 잘못을 시인했다. 사진=당시 점수 자살 사건을 단독 보도해 제45회 한국기사상을 수상한 ‘경인일보’ 캡처
지난 2013년 5월 30일 오전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섬유센터에서 CU편의점을 운영하는 BGF 리테일 박재구 사장(맨 오른쪽) 등 임원진들이 CU편의점 운영자 사망사건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박 사장은 운영자 자살 직후 사망진단서 변조 등 사건 은폐 의혹에 대해 잘못을 시인했다. 사진=당시 점수 자살 사건을 단독 보도해 제45회 한국기사상을 수상한 ‘경인일보’ 캡처

BGF리테일의 비정상적인 사건 대처는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 2013년 5월 16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한 CU편의점에서 이 점포의 계약해지 문제로 본사 직원과 말다툼을 벌이던 점주 김모씨(53)가 현장에서 다량의 수면유도제를 복용 자살을 시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16시간만에 숨지고 말했다.

매출부진과 건강악화로 편의점 수익이 없는 상태에서 가맹 계약을 해지를 요구하자 BGF 측이 1억여원의 위약금을 운운하며 영업을 종용했던 것이다. 게다가 BGF리테일은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았던 김씨가 석가탄신일 하루라도 쉬게 해달라고 했지만 이마저도 거부했고 이날 말다툼을 벌이다 수십알의 수면유도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던 것이다.

가관인 것은 당시 사건을 단독 보도한 경인일보 자료에 따르면 BGF리테일은 유족들에게 합의금을 주기로 하고 합의서를 작성하면서 고인의 사망 과정을 언론 등 외부에 알리지 않는 것이었으며, 합의문 원본은 모두 본사 측이 회수해 갔다.

이 회사는 적반하장으로 마치 해당 편의점이 잘 운영돼왔던 것처럼 포장하고 계약해지의 조건으로 과도한 위약금 제시나 휴일에 대한 영업강요가 전혀 없었다고 언론에 공개했다. 특히 사망진단서까지 변조해 언론에 배포한 것이 뒤늦게 밝혀져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결국 5월 30일 박재구 사장 등이 머리를 조아리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불과 3년 전의 일이다.

이후 BGF리테일 측은 그동안 점주들과의 상생하겠다면 부산을 떨었다. 하지만 정착 고객들과의 접점에 있는 점포 직원(아르바이트)을 위한 부분에는 소홀했다. 이번 사망 사건으로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BGF리테일 측의 무사안일한 행태가 그대로 드러나 것이다.

한편 알바 노동자 피해와 관련해 알바노조 측은 “공문발송과 항의방문에도 불구하고 3월 27일까지 응답이 없거나 미진한 답변을 내놓는 경우, 경산CU편의점사건 해결을 위한 모임은 시민사회대책위원회로 조직을 확대하고 법적 대응을 준비하는 등 CU를 대상으로 한 범사회적인 강력한 투쟁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라고 밝혀 향후 대응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영일 기자 (wjddud@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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