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난은 검문소와 같다. 행복으로 나아가려는 우리의 길을 가로막는다. 여기만 통과하면 저기 행복이 우리를 기다리는데 검문소에서 걸리고 만다. 우리는 그저 아이의 생일 때 식구들과 단란한 식사를 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그저 부모님께 좋은 선물을 드리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그저 안락한 집에서 쉬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그저 남들이 거의 배우는 것을 배우고 싶고, 우리는 그저 남들이 가는 학교나 직장에 가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가난은 이러한 것을 깊은 한숨과 함께 포기하게 만든다.

고등학교 때인가 친구가 이성 교제를 하는 것을 보고, 나도 여자 친구와 교제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데이트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에 이내 생각을 접었다. 고3 때 학력고사 점수가 잘 안 나와 재수를 생각했다가 재수 비용 때문에 바로 대학에 입학했다. 직장을 조금 다니다 한의학 공부를 시도하다가 그만뒀다. 당시는 가장이었다. 캐나다 가족 여행을 꿈꾸는 아내의 소원을 아직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 보름 이상 일을 쉬고 다녀와도 괜찮은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난은 뭔가를 시도하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에 브레이크를 건다. 시도하기도 전에 잔뜩 부담을 준다. ‘돈도 없는데 왜 그런 일을 하려고 그래’ 하고 속삭이는 것 같다. 뭔가를 하고 싶은데 돈 때문에 포기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에는 깊은 꺼짐이 생긴다. 그러한 것들이 반복되면 행복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분배가 시작되면서 생겨난 이 가난은 너무 질겨서 세상의 그 어떤 지도자도 해결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이 가난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 앞으로도 그 어떤 지도자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고른 분배는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자 되는 법이 서점에 많이 있지만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 또 그 가난 때문에 비극적인 결과를 보게 되기도 한다. 바라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수가 어느 정도는 줄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어느 정도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의 나눔이 필요하다. 물론 가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욕과 실천도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 오래 전에 도곡동에서 과외 하던 학생 엄마에게 들은 얘기가 기억난다. 자기는 결혼 전까지는 전세나 월세 개념을 몰랐다는 것이다. 그때 그걸 느꼈다. 아, 부자든 빈자든 서로의 삶을 잘 모를 수 있겠구나.

최성원 기자 ipsi1004@nextdaily.co.kr 시인이자 칼럼니스트. 시집으로 「천국에도 기지국이 있다면」이 있다. 현재 서울 동부이촌동에서 국어와 논술을 가르치고 있으며, 저서로는 「7일 만에 끝내는 중학국어」 등이 있다. 또 ‘하얀국어’라는 인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시와와(詩와와)’는 ‘시 시(詩)’에 ‘와와(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웃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떠들어 대는 소리나 모양)’를 결합하였다. 시 읽기의 부흥이 오기를 희망한다. 100편의 시를 올릴 계획이다. 걷기와 운동, 독서와 집필, 사람 만나는 것, 그리고 야구를 좋아한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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