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녘이면 골목 사이로 구수한 밥내가 난다. 한 집 한 집 지날 때마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분주하다. 시장기에 발동이 걸려 발걸음이 빨라지는 소리까지 더해져 동네 잔치가 벌어지는 듯하다. 오늘도 옆집에서는 참기름을 둘러 계란을 굽는다. 옆집의 외동 아들을 향한 호사스러운 한끼가 마냥 부러웠던 어린 시절. 바람타고 흘러들어온 그 냄새 탓에 내 뱃고동 소리는 질투에 더 사납게 울어대었다. 남의 밥상이 아무리 귀한들 엄마의 밥상만 할까? 김치찌개 하나만 올라와도 밥통의 밥을 싹싹 비워내던 엄마의 밥상은 그녀의 품 만큼 따뜻했다. 몸과 마음이 헛헛해지기라도 하면, 30년도 훌쩍 넘은 그때가 아련히 떠오른다.

전처리 뒷처리를 대신해줄 누군가가 있다면 모를까 요리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엄마의 밥상을 향한 그리움은 매년 짙어만 가니 참 아이러니다. 내 아이가 그리워하는 엄마의 밥상은 무얼까? 한번도 물어본 적이 없으니 답은 오리무중이지만, 무언가를 떠올려 '그리움’을 간직하길 바라는 얄팍한 심보에 민망한 미소만 짓다 말다 한다.

한국인의 밥심 사랑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우리네 삼시세끼는 정찬세끼와 그 의미가 거의 같다. 호주에서는 하루 정찬 한끼면 된다고 배웠다. 나머지 끼니는 빵이나 시리얼, 요거트나 과일 등으로 가볍게 넘어가도 좋다는 뜻이다. 먹방 BJ가 등장할 정도로, 먹거리쇼가 넘쳐난다. 더 맛있고, 보다 독특한 음식을 향한 우리의 구애는 멈춤이 없다. 그러나 맛집 평가를 보면 한결같이 등장하는 말이 있다. '어머니의 손맛' 혹은 '시골 할머니의 옛맛' 등이다. 산해진미도 옛 밥상의 정취는 넘어설 수 없다. 일류 셰프라도 어머니의 손맛 앞에서는 무너진다. 도대체 왜? 그건 아마 '사랑 한 스푼’의 차이일 것이다.

적어도 우리에게 엄마는 따스함이고, 존재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엄마는 곧 사랑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그 사랑만큼은 무한이고, 무변이다. 그렇기에 왕후장상의 밥상이라고 해도, 뒤돌아서면 곧 허기가, 두서넛 소찬 뿐인 엄마의 밥상은 식후 포만감이 오래감을 경험할 수 있다. 이 경험을 떠올리고 그 가치를 숙고할 수 있다면, 음식을 향한 탐욕을 멈출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출발은 음식이지만 '사랑’이라는 원초적인 힘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혼자이든 둘이든 우리는 각자 외롭다고 느낀다. 그리고 곧잘 외로움을 넘어 불안으로, 두려움으로 방황한다. 쾌락을 맛볼 수 있는 물질적인, 그리고 일시적이면서 자극적인 소재들이 많다. 그런데 피노키오의 방황처럼 그 뒤끝은 허무하기 이를 데 없다. 제페토 할아버지에게 돌아가듯 우리도 진정한 사랑을 체험하는 횟수를 늘려야 한다. 적어도 하루 1번에서 3번,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일상인 '식사 시간’을 활용해볼 수 있다. 입안으로 급히 들어가기 전에 숨 한 번 고를 수 있는 짧은 시간만큼이라도 음식이 주는 이로움을 떠올린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갓지은 밥 한 술을 떠서 입에 넣고 잘게 씹는 동안, 우리 몸은 이완되고, 그 음식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그 순간 비록 엄마의 밥상은 아니지만 엄마의 손맛이라 느끼며, 그 사랑의 온기를 떠올린다. 사랑이라는 포만감에 위를 다 채우지 않아도 행복해질 것이다. 우리는 엄마의 사랑이 빚어낸 결과물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일상을 반복하다보면, 어느날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연구를 빙자해 푸른 바다를 핏빛으로 물들이는 일본의 타이지 고래잡이의 참혹함과 매년 발생하는 조류독감을 막지 못해 3천 마리 이상의 가금류가 살처분되고, 1조 이상의 혈세를 들이는 우리의 어리석음이 결국, 부메랑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러한 앎에도 불구하고 식습관은 한 순간에 변하기 힘들다. 오랜 시간 짓고 쌓아온 것이 모두 그렇다. 다행스럽게도 생체시계가 멈추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한, 우리는 매일 1번에서 3번, '사랑의 한 스푼’을 떠올릴 기회를 만난다.

이도 저도 안되고, 답답하고, 허기지고, 외로울 때, 대지에서 엄마로, 엄마의 사랑으로 버무려진 '밥 한 술’과 소찬만한 친구도 없다. 마음과 균형을 이루는 몸을 위한 힐링푸드, 약선요리, 채식요리 등 더 넓은 '식’의 세계가 있지만, 그중 최고는 엄마의 밥상이다. 몸의 이로움으로 마음이 이로워지는 체험을 순간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정치의 내막 기사로 유명했던 미국의 저널리스트 존 건서(John Gunther)는 "모든 행복은 느긋한 아침 식사에 달려있다(All happiness depends on a leisurely breakfast)"고 했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우리 모두에게 사랑 한 스푼이 첨가된 엄마의 따뜻한 밥상 만한 것이 있을까? 불교에는 공양게송이 있다. 나만의 공양게송을 만들어보는 것도 한 끼 식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일 것이다.

장윤정 eyjangnz@gmail.com 컴퓨터 전문지, 인터넷 신문, 인터넷 방송 분야에서 기자로, 기획자로 10여년 간 일했다. 출판 기획 및 교정을 틈틈히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살면서 본 애보리진과 마오리족의 예술, 건강한 사회와 행복한 개인을 위한 명상과 실수행에 관심이 많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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