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제과 신문 광고. 1967년 8월 1일자 경향신문. 사진=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캡처
롯데제과 신문 광고. 1967년 8월 1일자 경향신문. 사진=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캡처

롯데그룹은 1967년 롯데제과를 창립해 식품 산업에 진출한 이후, 호텔과 백화점을 설립해 국내 관광·유통산업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또한 석유화학 및 건설 산업 등 사업 영역을 지속적으로 넓혀왔다.

롯데는 지난 50년 동안 각 부문별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차별화된 역량을 꾸준히 쌓아왔다.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해오고 있다.

식품과 유통, 관광·서비스, 화학·건설, 금융 등 94개 계열사를 통해 지난해 총 92조원의 매출을 올린 기업, 국내 12만5000명, 해외 5만8000명 등 18만명의 직원이 함께하는 국내 5대, 아시아·태평양지역 16위의 대기업으로 국내 경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롯데그룹의 파란만장한 발자취를 알아본다.

교포실업가였던 동경(일본) 롯데제과 신격호 사장이 내한했다는 동아일보 1966년 7월 25일자 신문.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교포실업가였던 동경(일본) 롯데제과 신격호 사장이 내한했다는 동아일보 1966년 7월 25일자 신문.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태동

신격호 총괄회장은 1922년 10월 4일 경남 울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에 배움을 열망하던 청년 신격호는 1942년 관부 연락선을 타고 도일해 신문과 우유배달 등으로 고학생활을 시작했다. 남다른 부지런함으로 외지에서 문학도의 꿈을 불태우던 청년 신격호는 ‘조선인’이라는 불리한 여건을 성실과 신용으로 극복하고, 평소 그의 성실성을 눈여겨 보아온 한 일본인 투자자의 출자로 1944년 커팅 오일을 제조하는 공장을 세움으로써 기업 경영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당시 신 총괄회장은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숱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뛰어난 안목, 신용과 성실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도전하여 오늘날의 롯데 신화를 창조해 냈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얼마나 신용을 중시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신 총괄회장은 일본에 건너가 우유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학을 했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떤 경우에도 우유 배달시간이 워낙 정확해 유명했다고 한다. 소문이 나다보니 주문이 늘어나 배달시간을 못 맞추게 되자 신 총괄회장은 자기가 직접 아르바이트를 고용했다고 한다. 배달 시간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 아르바이트가 아르바이트를 고용한 것이다.

이런 신 총괄회장의 신용과 성실성을 지켜본 ‘하나미쓰’라는 일본인이 사업을 해볼 것을 제의하며 당시 돈 5만엔을 선뜻 내주었다. 이 돈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는데, 미군기의 폭격으로 공장을 가동해 보지도 못하고 전소되고 만다. 어렵게 재기를 했으나 다시 폭격을 당해 전소되어 버렸다. 그래도 하나미쓰의 신 총괄회장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었다고 한다. 신 총괄회장은 이후 재기에 성공해 일년 반 만에 이 돈을 모두 갚고 고마움의 표시로 하나미쓰에게 따로 집을 한 채 사주었다고 한다.

1940년대 초 20대 초반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팔이, 우유배달 등의 일을 하면서 일본 와세다 대학까지 고학했던 청년 신격호는 첫 사업이 폭격으로 공장이 전소되는 시련을 겪지만 허물어진 군수공장에서 비누를 만들어내면서 진정한 사업가의 길에 들어선다. 워낙 물자가 부족한 시절이라 1년도 채 안되어 적지 않은 돈이 들어온다.

사업가 신격호의 타고난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건 바로 이때부터다.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자 껌은 일본에서 갑자기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청년 사업가 신격호도 타고난 사업 감각을 발휘해 껌 사업에 뛰어든다. 워낙 껌이라면 없어서 못 팔던 시절이라 신격호 총괄회장은 큰 돈을 번다. 그는 드디어 자본금 100만엔, 종업원 10명의 법인사업체를 만들게 됐고, 이때 회사이름 '롯데'가 탄생한다.

서구문명의 상징인 껌에 일본 성인들은 비난을 퍼부었지만 신격호 총괄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일본에서 껌의 핵심 타깃은 바로 어린이라는 점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롯데는 풍선껌 사업을 강화해 아예 풍선껌을 작은 대나무 대롱 끝에 대고 불 수 있도록 풍선껌과 대나무 대롱을 함께 포장했다. 당시에는 변변한 장난감이 없던 터라 롯데의 풍선껌은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껌이라는 상품자체가 식품이라기보다는 심심한 입을 즐겁게 해주는 장난감이라는 제품의 핵심가치를 간파한 것이다.

이벤트와 미디어로 소비자의 눈길을 끌어당긴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껌 포장 안에 추첨권을 놓고 당첨된 사람에게 1000만엔을 준다는 광고를 내놓기도 했다. 결과는 롯데 껌을 사기 위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상점 앞에 길게 줄을 서게 만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천재적 마케팅 감각은 경영학 강의와 교재에서 도움을 받았다기보다는 그의 감수성과 창의성에서 나온 것이다.

1961년 신격호 총괄회장은 일본가정에서 손님 접대용 센베이가 초콜릿으로 대체될 기미가 보이자 초콜릿 생산을 결단한다. 초콜릿 산업은 과자 사업 중에서는 중공업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만큼 제조방법이 까다롭다는 얘기다. 신 총괄회장은 유럽에서 최고의 기술자와 시설을 들여오면서 초콜릿 시장을 장악하고 이것이 롯데가 종합메이커로 부상하는 밑거름이 된다. 이후 롯데는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부문에도 진출해 성공을 거듭한다.

1970년대 롯데제과 판매요원들. 사진=롯데그룹 제공
1970년대 롯데제과 판매요원들. 사진=롯데그룹 제공

◆창업기-1967년~1980년

1967년 신격호 회장이 설립한 롯데제과는 롯데그룹의 모태가 됐다. 롯데제과는 새롭고 맛있는 제품을 제공해 국내 식품산업을 현대화하고 국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1970년대의 한국은 고도성장의 신흥 산업국가로 발돋움하는 시기였다. 경제성장에 따라 고급화, 다양화되는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식품부문을 확대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뿐만 아니라 사업다각화를 가속화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기틀 마련에 박차를 가했다.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 롯데리아 등의 설립을 통해 국대 최대 식품기업으로 발전했으며,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을 설립함으로써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유통·관광산업의 현대화 토대를 닦았다. 또한 롯데건설, 호남석유화학, 롯데전자, 롯데상사 설립을 통해 국가 기간산업에도 본격 진출했다.

1979년 3월 호텔롯데 전관 개관 테이프커팅식 모습. 사진=롯데그룹 제공
1979년 3월 호텔롯데 전관 개관 테이프커팅식 모습. 사진=롯데그룹 제공

◆도약기-1981년~1996년

1980년대 들어 롯데는 축적된 자본과 기술을 기반으로 식품, 유통, 관광 등 각 사업분야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며 국내 10대 기업에 진입했다. 아울러 미래에 대한 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세계시장 진출 기반을 구축해나갔다.

이 시기에는 롯데월드를 완공하고, 호텔롯데부산과 롯데물산을 건립해 국내 유통·관광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현대화에 총력을 기울였다. 또 롯데캐논과 한국후지필름을 설립해 첨단산업 진출도 가속화했다. 더불어 그룹 문화 인프라 구축을 위해 롯데자이언츠와 대홍기획을 설립했으며, 롯데중앙연구소와 롯데유통사업본부를 설립해 신제품 연구개발 및 유통 노하우 전파에도 큰 역할을 했다.

1990년대는 핵심전략 사업군을 기반으로 21세기 초우량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해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시기였다.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의 전국 체인화 및 신규업태 진출로 호텔·쇼핑의 국내 체인망을 완성했다. 동남아 및 일본, 미주 시장 진출 확대를 통해 식음료산업과 유통관광산업의 세계 진출을 가속화했고, 롯데정보통신과 롯데닷컴을 설립해 첨단산업 진출을 확대했다. 또한 코리아세븐, 롯데로지스틱스를 설립해 21세기 새로운 유통·생활문화를 창조해나갔다.

2008년 12월 18일. 베트남 1호점 남사이공점 개점. 사진=롯데그룹 제공
2008년 12월 18일. 베트남 1호점 남사이공점 개점. 사진=롯데그룹 제공

◆성장기-1997년~2008년

1997년 말부터 시작된 ‘IMF 체제’라는 위기 속에서도 롯데는 업계 최고의 경쟁력과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착실히 성장을 이어나간다. 이는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신중히 선택하고, 선택한 일에 대해서는 모든 역량을 집중, 전문화하는 롯데의 전략이 이루어낸 결과였다.

2000년대 들어 롯데는 식품, 유통, 관광·서비스, 화학·건설·제조, 금융 등의 사업에서 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더욱 성장했다. 또한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중동, 미주까지 세계 곳곳에 진출해 글로벌 기업의 위상을 갖춰나갔다.

국내외 크고 작은 M&A가 이뤄졌으며, 특히 2006년에는 롯데쇼핑이 한국과 영국 증권시장에 동시 상장하는 등 내수기업의 이미지가 강했던 롯데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글로벌도약기-2009년~2017년

롯데는 내실경영을 바탕으로 주력업종과 연관산업에 대한 효율적인 투자를 실행하며 안정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2009년 ‘Asia Top 10 글로벌 그룹’이라는 비전을 발표한 이후, 적극적인 사업 확장과 해외 진출 가속화를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갖춰오고 있다.

주력 사업인 석유화학 부문에서 잇달아 1조원이 넘는 대규모 M&A를 성공시키며 핵심 사업 경쟁력을 강화했으며, 중국 및 러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지역에 현지 진출한 사업을 안정 궤도에 올려놨다. 또 기타 지역으로의 진출을 지속적으로 모색하며 글로벌 롯데의 기반을 더욱 확대해 나가고 있다.

롯데그룹은 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응과 거버넌스(governance) 강화를 중점전략으로 삼고 미래성장 준비를 철저히 하는 한편 사업부문별로 옴니채널, AI 기술 도입 등 4차산업 혁명 대비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그룹사간 사업연계를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정영일 기자 (wjddud@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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