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여행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바타의 배경인 장가계나 센과 치히로의 배경으로 알려진 봉황 고성이 사실은 실제 배경은 아니란 사실이다. 사진을 보고 영감을 얻어서 만들어진 영화와 애니메이션이라 한다. 실제로 와보지 않고도 실제에 가까운 세트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누군가 내 사진을 보고 영감을 얻어서 사진이나 실제보다 더 훌륭한 창작물이 나온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이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누군가에게 도움만 된다 해도 나의 기쁨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졸작이지만 사진을 여기저기 마구 뿌려댄다. 내가 뿌린 사진이나 글들이 누군가에게 무상의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은 아무것도 예정할 수가 없는 날이다. 원래 계림을 가려고 한날이다. 근데 계림가는 차가 오늘도 없고 내일도 없다.

봉황 고성이 예쁘고 재미있긴 하지만 6일씩 빈둥거리고 놀 게 없다. 활동적인 남편은 지루해서 몸부림을 치는 중이다.

짐을 싸서 1층 가게로 내려와 아버지사장에게 방 열쇠와 영수증을 주면서 열쇠보증금을 돌려달라고 했다.

아들사장한테 전화로 보증금이 얼마였냐고 물어보더니 할 수 없는 표정으로 돈을 내준다. 상점을 겸하는 아버지 호텔이라 아침 첫 손님을 받기도 전에 돈을 내줘야 하니 기분이 좋을리가 없다. 나도 그 사실을 알긴 하지만 할 수 없다. 택시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갔다. 다행히 화이화로 가는 버스가 있다. 버스표를 사고 타서 몇시 출발이냐 물으니 모른단다. 사람이 다 차면 출발한단다. 기사아저씨한테 화장실과 먹을거 좀 사와도 되겠냐니까 다녀오란다. 아침을 못 먹어서 제대로 뭐라도 사려는데 마트에는 과자와 음료수정도밖에 없다. 할 수없이 군것질거리를 잔뜩 샀다.
화이화까지는 1시간남짓 걸렸다. 가는 내내 군것질을 했더니 입에서 단내가 난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계림가는 표를 알아보니 오후 2시에 있다. 일단 표를 사고 제대로 된 식당부터 찾았다. 화이화는 꽤 큰 도시인지 대형 백화점이 보인다. 백화점으로 들어가서 식당가 중 괜찮아 보이는 식당으로 갔다. 11시가 되자 식당매장에서 직원들이 단체로 춤을 춘다. 단체의식고양을 위한 춤인 듯 싶다. 주문 방식이 재미있다. 전시된 음식들을 보고 음식에 해당하는 죽편을 모아서 주문하면 된다.

우렁이부추요리가 맛있어보여 녹두즙과 함께 주문했다. 관광지가 아닌 일반 도시라 내 어설픈 중국말이 국적을 잃고 방황한다. 관광지상인들은 외국인임을 고려해서 쉽고 간단하게 말해주는데 지방도시에선 그런 요령이 없어서 의사소통이 어렵다. 그래도 굳세게 부추도 더 추가해달라고 하고 매운맛으로 주문했다. 종업원을 부를 때마다 떼로 몰려와서 같이 의논하며 주문을 받는다. 내 어설픈 중국말해독을 다같이 의논하며 받아준다. 나 역시 이 동네 아가씨들이 마구 쏟아내는 중국말을 해독하기 어렵다. 심하게 맵긴 했지만 맛있게 먹었다.

녹두즙이라고 시킨 것은 녹두라떼수준이다. 이른 점심을 먹고 식당가를 돌아보니 한국식당이 많다. 비빔밥과 떡볶이가 주류를 이룬다. 가격도 15위안정도로 싸다. KFC에서 우리 부부가 백위안정도 먹는데 KFC가 중국에서 비싼 식당인 것이 실감이 난다. 한국 비빔밥이 중국의 서민음식인것이 재미있다. 김밥을 파는 가게에 가서 김밥 2줄을 싸달라고 했다. 아가씨가 한국말을 한다. 심천에서 한국말도 배우고 김밥 싸는 것도 배웠단다. 한국말이 듣기 좋아서 배웠단다. 한국인손님이 오냐고 물었더니 거의 없단다. 그냥 한국이 좋단다. 우리를 위해 준비된 김밥가게인 듯 반갑다. 김밥 싸는 모습이 예뻐서 사진 찍으려하니 오늘 화장을 안해서 안 예쁘다며 손사래를 친다. 김밥도 준비하고 오늘 계림 호텔도 예약하니 마음이 뿌듯하다.

터미널에 맡겨 놓았던 가방을 찾아서 화장실로 갔다. 중국지방도시에 온 것을 실감했다. 화장실 문이 없다. 할 수없이 문도 안 달린 화장실에 앉아서 볼일을 봤다.

화이화에서 계림까지는 6시간넘게 걸린다. 중간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한번 쉰다. 국도로 들어서니 꼬불탕 산길을 가는데 뒤에 앉은 아이가 토하는지 시큼한 냄새가 난다. 다행히 내 창문은 열수 있어서 열고 달렸다. 중간에 차를 세우는데 남편이 나갔다 오더니 중국전통 화장실이라고 신기해한다. 화장실 놔두고 버스 앞에 앉아서 토하는 아줌마도 있단다. 안 내리길 잘했다. 세계첨단으로 달려가는 중국의 지방도시는 아직도 과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미래와 현재 과거가 공존하는 대국이 확실히 맞다. 6시감넘게 같은 자세로 버스에 앉아 왔더니 온몸이 쑤신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왔다. 강변에 자리잡은 대형호텔이다. 며칠 동안 전통목조건물에서 불편하게 지내다 오니 다시 감회가 새롭다. 짐을 풀고 나니 김밥 먹고는 허기져서 안되겠다며 남편이 채근을 한다.

다행히 호텔 뒤에 먹자골목이 있다.

호텔근처에는 고급레스토랑도 보인다. 호텔을 나서니 강변에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를 구경한다. 가보니 플라스틱통과 잡동사니로 연주하는 청년을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다. 젊음이라 아름답다. 신선한 감동이 느껴진다. 먹자골목으로 들어서니 구미를 당기는 음식들이 많이 보인다. 일단 국물 있는 국수를 찾았다. 알루미늄호일을 그릇 삼아 만드는 해물 국수가 문에 뜨인다.

학생 5명이 앉아서 음식을 앞에 두고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다. 5명이서 동시에 하는 게임인 듯 함께 마치니 국수를 먹는다. 우리나라 학생들과 다를게 없다. 맛있어 보여서 우리도 같은 것을 시켰다. 맛있다. 아무래도 먹자골목이 우리의 단골 식당이 될 듯싶다.

한국식 스시와 닭 튀김집도 보인다. 여행의 질이 달라지는 느낌이다.

호텔로 돌아오니 로비에서 중국여자들이 날보고 뭐라뭐라한다. 왜그러냐니깐 내 옷이 예쁘단다. 봉황고성에서 샀다니깐 자기들도 거기 갔었단다. 80위안에 건진건데 예쁘다니 기분이 좋다. 잘 보면 구석에 하자가 있다. 80위안에 하자 없기를 바라는 것이 우습다.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한국사람이 3층을 눌러야하는데 못 누르고 있다. 방 키를 갖다 대야 누를 수 있는데 키가 없나보다. 내가 눌러줬다. 대형 호텔이라 한국인단체도 이용하나보다.

오랜만에 만나는 고국 사람이라 반갑다. 새로운 시작의 느낌이 좋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 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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