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원(1960년대 껌 한 개 가격)

-1967년(현존하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껌인 롯데의 대형껌 3종(쥬시후레쉬, 후레쉬민트, 스피아민트) 출시연도)

-4조2000억원(1967년부터 2016년까지 판매된 롯데제과 껌 매출 총액)

-302억통·2010억매(1967년부터 2016년까지 생산된 껌을 쥬시후레쉬로 환산했을 때 양과 낱개 숫자)

-27회개·332바퀴(1967~2016년 생산된 껌을 지구촌 전체인구가 소비했을 경우 1인당 씹은 개수와 이를 일렬로 연결했을 때 지구를 도는 횟수)

1960년대 중반 국내 껌시장 현황을 살펴 본 1967년 1월 18일자 매일경제신문.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1960년대 중반 국내 껌시장 현황을 살펴 본 1967년 1월 18일자 매일경제신문.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해방 이후 미군 '붐'을 타고 들어와 우리 미풍양속을 해친다고 많은 시비를 받으면서도 소비층은 줄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이 애용되고 있는 미묘함이 있는 것이 껌이다. 미제 껌이 5·16 이후 외래품으로 정상 판로에서 뒤안길로 쫓겨나게 되면서부터 국산 껌이 각광을 받은 후 현재 구멍가게에서부터 일류 극장 안에서 한 개에 2원 내지 5원에 판매되고 있는 이 국산 껌의 제조는 이 땅에 또 하나의 재벌을 만들어 줄 만큼 무시 못 할 기업 중의 하나가 되었다.(후략)” 1960년대 껌의 현황을 알 수 있는 1967년 1월 18일자 매일경제신문의 기사다.

정확하게 껌의 역사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인류는 기원 후 2세기경 멕시코 지역에서 껌과 유사한 물질을 씹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추잉 껌의 형태는 130여년 전인 1860년 미국인 토마스 애덤스가 사포딜라 수액에 감미료를 섞어 상품화하면서 등장했다.

일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 기간 중에도 껌 생산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우리나라 껌 생산 역사는 이보다 10여년 늦은 19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해태제과가 순수 국내 기술로 선보인 '풍선껌'이 최초의 껌 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과거 신문을 찾아보면 이보다 오래 전부터 국내에서 껌 생산이 시작된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동성제과 주식회사의 껌제품 출시를 알리는 1956년 12월 8일자 동아일보 광고.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동성제과 주식회사의 껌제품 출시를 알리는 1956년 12월 8일자 동아일보 광고.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1956년 12월 8일 동성제과 주식회사는 동아일보에 '대망중의 진실품 '특제동성양(特製東盛洋) 껌' 드디어 등장'이라는 광고를 게재했다.

업체는 광고 문구 안에 “폐사는 삼십여년 전부터 일본 신고(新高) 등 추잉 껌 공장을 압도적으로 '리드'하였다함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온데 범람되는 외래품을 구축코저 금번 각종 주요 원료를 남미주에서 직수입하여 최신식 최고기계시설급 완전한 위생시설로서 정밀한 질적 생산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충치예방, 구취제거, 소화촉진 등에 삼대원리를 근본으로 하였음”이라고 적고 있다. 이미 1920년부터 껌을 생산했고 자체 시설을 갖춰 껌 제품을 생산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롯데껌 출시를 알리는 1967년 8월 26일자 경향신문 광고.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롯데껌 출시를 알리는 1967년 8월 26일자 경향신문 광고.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껌은 롯데제과에서 1967년 생산 판매한 대형 껌 3종(쥬시후레쉬, 후레쉬민트, 스피아민트)이다.

1947년 4월부터 일본 현지에서 껌과 초콜릿, 캔디, 아이스크림, 비스켓 등 제품을 생산하면서 가장 주목받는 제과업체로 롯데제과를 성장시킨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1967년 자본금 3000만원, 500명 직원으로 국내에 롯데제과를 설립한다.

롯데제과는 일본에서의 생산 경험에 바탕을 두고 설립 해부터 쿨민트껌, 바브민트껌, 쥬시민트껌, 페파민트껌, 슈퍼맨 풍선껌, 오렌지볼껌의 껌 제품 6종을 차례로 내놨다.

해태를 비롯해 오리온과 제과업계 3강 구도를 형성했던 롯데제과는 그해 3억8000만원 매출 실적을 거뒀다. 그 당시 껌 가격이 2~5원에 불과했으니 결코 적은 실적은 아니었다.

롯데는 껌 제품 인기에 힘입어 1969년 8월 국내 최초로 시흥(현 서울시 영등포구 독산동)에 껌 베이스를 자체 생산할 수 있는 중합관을 세웠다.

롯데제과가 대형껌을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1972년 2월10일자 동아일보 전면 광고. 신격호 현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모습이 이채롭다.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롯데제과가 대형껌을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1972년 2월10일자 동아일보 전면 광고. 신격호 현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모습이 이채롭다.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수많은 껌 제품이 시장에 나오면서 '춘추전국시대'를 맞은 국내 껌 시장은 1972년 롯데에서 야심차게 선보인 대형 껌 3총사로 인해 사실상 평정됐다. 대형 껌이라는 수식어는 그 당시 타 제품에 비해 크기와 볼륨 등이 월등히 컸기 때문에 붙여졌다.

1980년대 대형껌 3종. 사진=롯데제과 제공
1980년대 대형껌 3종. 사진=롯데제과 제공

대형 껌은 한국 사람의 구강 구조, 턱의 강도, 입맛 등 인체공학적 설계에 따라 개발된 제품들이어서 지금도 연매출 100억원 이상 올릴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쥬시후레쉬 껌은 1970~1980년대 단맛으로 서민의 배고픔을 달래 주고 심심할 때 즐거움을 주는 입 안의 동반자가 됐다.

1980년대 영등포공장 모습. 사진=롯데제과 제공
1980년대 영등포공장 모습. 사진=롯데제과 제공

1967년 회사 설립 때부터 2016년까지 49년 동안 생산 판매된 롯데 껌의 누적 매출은 4조2000억원에 달한다. 이 금액을 대형껌 3총사의 맏형격인 쥬시후레쉬로 환산하면 약 302억통에 달한다. 이를 낱개로 환산하면 약 2010억매다. 이는 지구촌 전체 인구 73억5000명이 약 27개를 씹을 수 있는 양이다. 또 이를 일렬로 늘어놓으면 약 1330만㎞로 지구 둘레를 332바퀴 돌 수 있는 길이이기도 하다.

국내 5대 기업으로 성장한 롯데는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총 매출액은 당시 8억원에서 지난해 말 92조원으로 성장했다. 그룹 성장의 일등공신은 출시 당시 2~3원에 불과했던 '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영일기자 wjddud@nextdaily.co.kr

저작권자 © 넥스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