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의 일이다. 핀란드의 게임 업체의 한 친구가 한국으로 출장을 왔다. 양재천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인 삼성동으로 내 차로 데려다 주는 길이었다. 10시가 넘은 시간 대치동 근처 한 4거리를 지나는데 30분이 넘게 걸렸다. 그 친구가 묻는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차가 이렇게 밀리다니 이 근처가 대단한 유흥가가 있는 것이냐고.

그래서 대답했다. 여기는 유흥가가 아니라 학원가라고. 이 근처가 대학입시를 위한 사설 학원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인데 지금 끝나는 시간이고 자녀들을 기다리고 태우고 하느라 차가 많이 밀린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건물과 차와 사람들을 살피던 그 친구가 물었다. 그럼 여기 보이는 학생들이 모두 내년에 대학을 가는 것이냐고. 꼭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다. 중학생부터 내년도 입시생까지 다양하게 섞여있다고 말했다.

그는 더욱 놀라는 눈치였다. 겨우 열 두세 살부터 이 늦은 시간까지 학교를 다닌다는 말이냐고 되물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너희 나라 다음 세대는 행복하게 크지 못하고 있네."

우리나라 교육과 입시제도의 문제점이 많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워낙 민감한 영역이라 쉽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쳐 지긴 해야하는데 머뭇거린다. 바뀌는 부분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신경을 곤두세우는게 현실이다 보니, 문제나 개선안의 발의가 갈등만 유도한다는 인식이 깊다. 그렇게 어찌어찌 통과의례를 마치고 나면 뒤도 돌아보기 싫어진다. 그간 지긋지긋했다며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교육은 제자리에서 같은 문제점을 수십 년간 논의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회 이슈들처럼 '안타까운 일이다 언젠가 개선되겠지. 누군가 고치겠지’ 하며. 그런데 앞으로 몰려올 상황을 떠올리면 이게 이렇게 안이하고 막연하게 놔둘 문제가 아니다. 이미 현행 교육제도와 사회 발전 속도가 서로 겉돌면서 ‘오포세대’나 청년 실업의 문제 등이 떠오르고 있다.

다보스포럼에서 4차산업혁명을 언급한 클라우드 슈밥이 3년 뒤에 50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한 것이나 보스턴 컨설팅 그룹의 보고서에서 지금의 중학생이 대학을 졸업하는 202년 경 한국의 노동시장은 40%가 로봇을 대치될 것이라고 이야기한 것에 대해 현실성 논쟁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언 시점에 과연 그것이 실현 되었는가가 아니다. 이것은 변화의 방향성과 그만큼의 속도에 대한 메시지이다. 이 메시지를 통해 4차 산업 혁명 혹은 IT 혁명이라 불리는 환경과 가치관의 혁명적인 변화에 준비하자는 것이다. 전반적인 직업군이 바뀌고, 산업의 우선 순위가 바뀌며, 인식의 체계가 바뀔 것이다. 삶의 방식이 지금과는 확연하게 달라진다는 의미이다.

이 시대를 이끌어갈 우리 다음 세대 교육은 이 같은 미래 변화를 주도하고 살아나갈 세대의 준비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걱정스럽게도 이러한 준비 과정은 학원에서 가르쳐 줄 수 없다.

상시 바뀌는 세상에서 의미 없는 선행학습
학원은 사실 학생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부모의 의지가 반영되어있다. 산업형 성장시대에서 이미 한 세대를 살아온 부모는 자신이 가진 것을 유지시켜 주거나 혹은 가지지 못해 아쉬웠던 것을 갖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부모의 경험상, 경쟁에서 앞서는 것은 무엇이든 조금 더 가질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자본이든, 명예든, 관계역량이든, 좀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앞서나가고 변해가는 상황에 대처하기도 훨씬 유리하다. 그래서 선행학습이 유리하다. 사실이다. 세상이 부모의 세대의 사회가 유지되고 변화의 방향이나 발전 역시 부모의 세대와 같이 유지된다면 그럴 것이다. 학원은 선행학습 효과에 대한 믿음을 가진 부모와 불안한 학생, 그리고 이를 산업화한 교육계의 3박자 무도회장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가올 30년 그리고 그 이후는 지금의 부모의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된다. 선행 학습은 정해진 규정과 범위 안에서만 효과와 의미가 있다. IT혁명하의 사회는 늘 변화 속에 있게 된다. 선행 학습을 할 수가 없다.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이 유리한 사회이다. 오히려 선행학습으로 성장기를 보낸 사람은 변화에 대한 대응이 심각하게 늦어지거나 심지어 변화를 거부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변화를 주도해야 할 세대 인데 현재는 변화 부적응자를 키우는 시스템이라니 걱정스럽다.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사용자 경험
식상한 이야기 같지만 인간의 본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IT혁명 사회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기본이다. ‘사람이 진짜 필요로 하는 영역'을 찾아내고 구현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용자의 경험(UX)이라는 개념이 그 영역이다. 모든 서비스는 이용자의 행복한 경험이라는 방향을 채택한다. IT 혁명의 출발이자 목표이다. 만일 이 같은 본질이 결여된 채 기술만 발전한다면 기술은 인류를 위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 공존, 그리고 사회가 추구해야 할 공통의 가치가 결합되어 기술로 구현될 때, IT 혁명 즉 4차 산업혁명은 완성된다.

IT가 우리의 사용 경험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성공한 혁명이 되기 위한 사회적 조건은 무엇일까.

행복한 ‘나’의 경험을 알기 위해서 나의 욕망과 본질을 솔직히 아는 것은 중요하다. 스티브 잡스와 실리콘밸리의 많은 서비스 기획자들이 인문학을 강조했던 이유는 그들이 이러한 키워드를 파악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사용자의 행복한 경험을 실현시키는 IT를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열정은 이제 특정한 사람만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미래는 누구나 IT 서비스의 사용자이고 어느 직업이든 IT와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IT에 기초한 미래사회에서 필요한 구성원의 가치, 즉 인문학적 자아의 발견, 협업을 위한 공감과 소통법, 이웃과의 공존을 통한 행복한 관계와 경험의 추구 이러한 것들 역시 학원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은 아닐 것이다.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만큼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생각의 근육을 키워야 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합리성과 협업의 경쟁
경쟁은 현행 입시 중심 교육제도의 핵심이다. 4차산업혁명 시대 역시 변화의 진행에 최적화된 경쟁주의를 채택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AI와 로보틱스가 도입된 미래의 경쟁은 지금과는 좀 다를 것 같다.

미래에는 사람과 AI가 협력을 하여 성과를 내는 것이 당연하게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지금의 경쟁은 제 3자로부터 주어진 기준에 따라 누가 더 빨리 성취를 하느냐가 관건인 개인 간의 경쟁이다. 입시, 취업, 고시 등 모두 부족한 직업과 기회의 분배를 위해 넘쳐나는 수요를 걸러내기 위한 경쟁인 것이다.

그러나 4차산업혁명 시기는 어떤 개인의 능력도 의도에 따라 무한대의 확장이 가능하다. AI를 위시한 IT 자원의 지원이 일상화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단선적인 경쟁이 무의미 해진다. 그렇다면 지금의 젊은 세대는 어떤 경쟁을 하게 될까.

이들은 기술과 사회의 혁명적 변화 수행 주체가 되어야 하는 과제를 담당해야 한다. AI와 로보틱스를 활용하여 생산성이 더욱 늘어나게 되면, 줄어든 직업의 종류와 수에도 불구하고 이를 기반으로 경제와 사회가 유지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물론 이것은 공정한 분배 중심의 경제체제로 발전해야만 하는 큰 흐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새 판을 짜는 주체가 되는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UX기반의 기술 발전을 위해 누가 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공존의 공감 논리를 제대로 수용하는지, AI에 적용할 알고리즘을 위해 누가 상황 객관화와 문제 해결을 위한 어젠다를 잘 도출해 내는지, 새로운 질서와 사회제도의 시행을 위해 누가 보편적 가치를 향한 접근에 도달하는 실천방법을 제시하는 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공감 경쟁이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역량 경쟁이다. 이는 IT 혁명 시대의 가치 기준을 정하기 위한 합리성과 협업의 경쟁이 될 것이다.

이 과제는 순위 경쟁이 불가능 하다. 품질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주체가 따로 있는 것도 정답을 채점해 줄 사람도 없다. 오로지 수많은 아이디어와 생산적인 토론을 통해 가능하다. 그리고 경쟁의 영역은 결론이 아니라 과정에서 나올 아이디어와 객관화 그리고 실천 능력이다. 학원은 이러한 능력을 배양해 주지 못한다.

2018년부터 코딩교육이 의무화 된다. 코딩교육은 프로그래밍 언어보다는 논리를 체계화 하는 능력이고 하나의 서비스가 나오기까지의 협업 과정을 충분히 체험해야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 코딩이 무엇을 위한 것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 서비스로 탄생할 것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IT혁명 시대를 위한 가장 기초적인 준비단계를 배우는 것이다.
이 과정이 결국 코딩용어를 외우고 획일화된 시험을 준비하는 식의 경쟁 변별력 수단이 되어 버린다면 우리는 커다란 사회적 비용을 들여 미래 부적응자를 키워내게 될 것이다. 입시와 학원교육의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공들인 취지의 IT교육 프로그램도 무의미해진다.

밤 10시 강남 학원가를 어두운 표정으로 바라본 핀란드 친구에게 걱정할 필요 전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 나라도 행복한 다음 세대를 위해 잘 준비하고 있다고. 언제쯤 그 말을 전할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진다.

노수린 suerynnroh@gmail.com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 언론홍보 석사, MBN 기자, KTF 해외마케팅과 플랫폼 기획팀장을 거쳐, IoT스타트업 운영과 컨설팅 및 교육 강의를 해왔다. 현재 한림대 사회학과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IT는 사람의 행복과 가치추구를 위해 서비스와 콘텐츠로 관계를 연결하는 장치라 생각하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용한 오픈 IT를 기반으로 사용자UX가 주권처럼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며 많은 이들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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