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 해님은 게으르기 짝이 없으시다. 일출 시간을 체크해보니 7시16분이다. 남편에게 해뜨기 전 산책 나가자고 하니 귀찮다고 이불 속에서 꼼짝도 안한다. 혼자 나갔다. 해뜨기전부터 시골농부들은 부지런도 하다.

삼발이차
삼발이차

밭에 나와서 일하는 모습도 보이고 아침부터 삼발이차를 몰고 나가는 모습도 보인다. 논두렁 밭두렁 길을 따라 걸었다.

해뜨기전이라 서쪽 하늘에 달이 아직도 걸려있다. 개천에 정겹게 걸려있는 다리도 두 번이나 건넜다. 그래도 해는 아직도 고개를 내밀 기색이 없다. 해대신 남편이 날 찾아서 나왔다. 내겐 해보다 더 감사한 남편이다.

아침을 7시30분에 달라고 주문해 놓아서 할 수없이 들어왔다. 결국 해를 영접 못하고 포기했다. 산이 첩첩이 둘러 쌓여서 해는 이 동네 찾아오기가 힘겨운 듯 하다. 내일은 아침을 천천히 먹어야겠다. 아래층에 나이든 여인과 젊은 총각이 묵고있다. 난 아들과 엄마라 주장하고 남편은 알게 뭐냐고 한다. 셔틀을 타고 시내로 나가는데 함께 탔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모자라 한다. 남편과 딸은 태국으로 여행가고 모자는 중국으로 왔던다. 지난 10월에 한국에 왔었단다. 스키 타러 평창에 간 적도 있단다. 한국이 좋다고 입에 침이 마른다. 아들은 17살인데 친구 중 이재용이라는 한국 친구가 있단다. 설마 삼성가의 이재용하면서 같이 웃었다.

시내에 도착해서 우리는 싱핑에 가기 위해 일단 터미널로 가는 택시를 탔다. 기사아저씨가 터미널까지는 20위안인데 싱핑까지는 백위안달란다. 싱핑으로 바로 가자고 했다. 싱핑 선착장에 도착하니 기사아저씨가 우리를 기다리겠단다. 우리는 걸어다닐거라 했더니 2시간이면 볼 거 다 본단다. 하여간 기다리지 말라고 했다.

계획대로라면 10킬로이상을 걸어야 한다.

일단 선착장으로 가서 양제까지 모터보트를 탈수 있는지 물어봤다. 갈수는 있는데 표를 사려면 싱핑시내에서 사야한단다. 물어 물어 알아보니 양제까지 가는 배는 따로 대절을 해야 하는데 선착장에서는 표를 살수가 없단다. 모든 모터배는 정해진 노선 외에는 개별행동을 할 수 없는듯하다. 보이지않는 손의 힘이 느껴진다.

계획을 바꾸어서 올라가는 길을 걸어가고 내려올 때 보트를 타기로 했다. 한참을 가도 지도상에 있는 하이킹 길 초입이 보이지 않는다. 아스팔트길에 지칠 즈음 3륜차가 오더니 유혹을 한다. 구마화산까지 타고 가기로 했다. 구마화산에 도착해서 바지선을 타고 도강을 했다. 건너서 모터보트를 알아보니 개인적으로 협상이 되지 않는다. 양제까지 얼마냐 물었더니 만위안달란다. 갈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곳 모터보트나 크루즈배들 모두 일괄적으로 통제가 되는듯 하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현실이 와 닿는다.

모터배는 대나무뗏목처럼 생겼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모터로 통통거리며 오르내리니 낭만도 없다. 기나긴 강변에 수없이 서있는데 개인적으로 협상이 전혀 되질 않는다. 그걸 모르고 몇 번이나 시도한 우리가 미련스럽다. 싱핑에 대해 기대를 하고 왔는데 실망이다.

싱핑은 중국화폐 20위안에 그려진 배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관광객이 몰리고 선박 요금은 터무니없이 비싼데다 개인적으로는 표를 사기조차 어렵다. 시내여행사에서나 투어에 합류해야 표를 살수 있단다. 거리에 호객꾼들이 붙잡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우리 같은 자유여행자들은 호객꾼들을 통해서 표를 살수 있는 시스템이다.

구마화산서부터 강변 길을 따라 걸었다. 지도에 나온대로 하이킹길이 있다. 한참 걸으니 그 경치가 그 경치다. 첩첩봉우리들도 자꾸 보니 감동이 덜하다. 내게는 우리 숙소 동네 논두렁밭두렁길이 더 좋다

그래도 오늘의 목적은 하이킹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걸었다. 모터보트는 못 탔지만 크루즈는 해보자 싶어서 크루즈를 알아봤다. 다행히 크루즈는 선착장에서 표를 살수 있다. 2시간 걸린단다. 크루즈는 출발 후 잠시 달려서 강변에 머문다. 이 동네 전통낚시법인 가마우지를 데리고 아저씨 한 분이 배에 올라탄다.

사람들이 가마우지를 데리고 사진 찍으며 즐거워한다. 우리는 구마화상에서 이미 호객을 당한뒤라 그다지 흥미롭지가 않다. 배는 다시 남쪽으로 달려 어느 동네에 도착한다. 가이드가 내리라고 하더니 골목을 걸어서 어느 집에 들어간다. 손문이 살았던 집이라 한다. 클린턴대통령이 다녀간 집이라 벽에 클린턴사진이 잔뜩 걸려있다. 다시 배로 돌아와 싱핑 선착장으로 배를 돌린다. 중년여인들이 단체로 타서는 요란하게 사진 찍고 먹고 웃고 떠든다. 배에서 찍은 사진들을 즉석에서 팔기도 한다. 우리는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올드스트리트를 걸어서 버스터미널로 왔다. 싱핑은 기대한만큼 예쁘고 아름다운 동네는 아니지만 중국 돈 20위안의 배경을 걸어다닌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호텔 셔틀 약속장소로 오니 다이아나모자가 서있다. 아침에 같이 차 타고 나온 지라 낯설지가 않다. 오늘 서로의 하루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정보도 주고받았다.
차 타고 호텔로 오는 길에 보니 모자간에 서로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아들은 아마 외국인학교에 다니는듯 하다. 호텔로 돌아오니 집에 온 듯 반갑다.

쇠고기스테이크와 가지 요리를 주문해놓고 방으로 와서 쉬었다. 식당에서 저녁 준비가 다 되었다고 전화가 왔다.
내려가니 다이아나모자와 외국인 한사람이 더 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방으로 와서 잠을 청했다. 내일은 유명한 관광지보단 이 동네 한적한 길을 걸어야겠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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