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서정화의 문화의 향기] 자연의 談 너머에는; 서울대 캠퍼스의 수목원과 나무 이야기

발행일시 : 2017-04-20 00:00
[서정화의 문화의 향기] 자연의 談 너머에는; 서울대 캠퍼스의 수목원과 나무 이야기

소란했던 겨울이 지나 봄소식이 벽을 장식한다. 연극, 뮤지컬 그리고 각종 공연. 젊음의 거리인 대학로의 마로니에 공원에는 공원의 역사를 상징하는 기념비가 있다. 1975년 서울대학교 문리대학과 법과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옮기면서 그 자리에 공원으로 조성된 곳이 바로 마로니에 공원이다. 이곳의 마로니에는 1929년 4월 5일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시절에 심은 것이다.

마로니에에 대하여 간단히 소개하자면, 서양 칠엽수로 손바닥처럼 생긴 커다란 잎을 가졌다고 하는데 내 생각엔 마치 크루아상(croissant) 다섯 개를 가지런히 달아 놓은 듯하다. 꽃은 5~6월에 피고 흰색이며 열매는 먹을 수 없다. 프랑스의 마로니에 공원으로 유명해진 나무라고 한다. 유럽에서는 오랜 전부터 이 나무의 종자를 치질, 자궁출혈 등의 치료약으로 사용해 왔다고 전한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동맥경화증, 혈전성 정맥염, 외상에 의한 종창(腫脹) 등의 치료와 예방에 사용되고 있으니 여러 모로 요긴한 나무이다.

서울대학교가 마로니에와 대학천을 두고 경성법학전문학교(1922)로 성장하던 당시, 우리나라 수목원에 대한 최초의 문헌이라고 할 수 있는 ‘수목원 안내서’가 1926년 수원고등농림학교(서울대 농생대 전신) 우에끼 박사에 의해 발표된다. 그는 당시 교정에서 자라는 내외수종 170종을 골라서 그 내용을 발표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농학캠퍼스에서 1907년 무렵부터 수목이 식재되었다.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 그리고 회화나무. 초창기에 심은 나무들은 리기다소나무, 양버즘나무, 아까시나무, 칠엽수, 신나무 등이다. 1907년 들여온 꽃개오동나무도 황금수라는 이름으로 수원시 서둔동의 명물이 되어 서둔동을 '카타루파CATALPA촌'이라고 부르던 때도 있었다. (http://arbor.snu.ac.kr 서울대 수목원 홈페이지 참고)

언제나 그렇듯이 처음의 시작은 외롭고 고되다. 많은 수종의 이름을 동록 하여 배치도에 따라 전산화를 시작하였다. 지금도 관악수목원은 엄격한 관리로 방문객들을 제한한다. 불편하고 불친절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수목원의 보전과 연구를 위해서라고 이해하자. 그 덕분에 수목원을 찾는 이들이 공부하기에 좋다. 그리고 초대수목원장으로서 관악수목원을 창설한 이창복 박사의 오랜 집념과 노력에 진심으로 경의(敬意)를 전하고 싶다.

서울대학교 한 연구소의 지인에게서 편지가 왔다. 필자가 요즘 관심 있어 하는 수목원과 나무에 대해 배울 기회가 생겼으니 참석하자는 내용이다. 주관은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학술팀이고 대학에서 교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강좌로서 선착순 20명이라고 한다. 4월부터 10월까지 5회에 걸쳐 진행이 된다. 무조건 참석하기로 하였다. 매년 숲 해설가가 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자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전문가들이 꽤 모였다. 입담 좋은 서울대학교 식물병원 이경준 명예교수는 나무의 생태와 특성을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했다.

캠퍼스가 들려주는 식물이야기(서울대학교 교정) <캠퍼스가 들려주는 식물이야기(서울대학교 교정)>

돌이나 시멘트를 대신하는 울타리용 식재(植栽)로 회양목을 많이 쓴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놀이터주변이나 화단 끝에도 회양목이 심어지기에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회양목은 납작하고 조밀한 둥근 잎을 가졌으며 목질이 단단하여 그늘이나 양지를 가리지 않는다. 공해에도 강하며 척박하고 건조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기특한 나무이다.

회양목의 꽃말은 ‘참고 견뎌내다’이다. 1년에 겨우 3cm 자라는데 더디게 자라다가도 윤달이 낀 해에는 그 한 치마저 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실제로 줄지는 않겠지만 지름 12cm의 굵기로 자라려면 적어도 80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참고 견디라는 인내(忍耐)가 꽃말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성장이 더딘 회양목은 단단한 목질 때문에 쓰임도 다양하다. 잘 알고 있듯이 조선시대 춘추관의 작은 글씨 목판활자와 호패 만드는 나무로 사용되었다. 점을 칠 때 필요한 산통의 산가지를 만들 때도 쓰였다. 근래에 와서는 도장과 바둑알, 참빗, 주판알 등의 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경기도의 세종대왕유적관리소 효종대왕릉 재실 내에 있는 회양목은 2005년에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459호로 지정되었다. 영릉 재실에서 300여 년 동안 자라온 나무로 생물학적인 관점에서도 회양목을 대표할만하다고 한다. 3-4월이며 희고 노란 불꽃모양 꽃이 핀다.

척박하고 거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가 또 있다. 소나무이다. 등산을 하다보면 거대한 바위를 뚫고 나오거나 벼랑 끝에 매달려 온갖 바람을 맞으며 자라는 소나무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소나무를 보게 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동요와 가곡이 있는데 요즘처럼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노랫말과는 달리 제일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 나무이기도 하다.

소나무는 병충해가 심하다. 솔잎혹파리와 솔껍질깍지벌레, 솔나방, 소나무재선충 등에 의하여 고사(枯死)한다. 소나무재선충은 단기간에 소나무를 시들게 하는 주범으로, 소나무뿐만 아니라 잣나무, 섬잣나무를 감염시키고 붉게 시들어 말라 죽인다. 소나무재선충은 스스로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솔수염하늘소와 같은 매개충의 몸속으로 들어가 이들이 건강한 소나무로 이동할 때 따라 간다.

조선시대 십장생도(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십장생도(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십장생도(이영숙 작가 제공, 민화협회회원) <십장생도(이영숙 작가 제공, 민화협회회원)>

그리고 솔수염하늘소가 소나무의 수피를 갉아 먹을 때 생긴 상처에 침입하는 것이다. 소나무재선충은 수분과 양분의 흐름을 방해하여 송진 분비를 멈추게 하고 물을 수송하는 관에서 비정상적인 물질이 코팅이 되어 수송관이 막히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소나무가 재선충에 감염되면 회복이 불가능하여 100% 고사한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동행했던 서범석 박사는 한 논문을 소개하면서 물 전도의 장애가 문제라면, 물을 보급하면 증상이 완화되지 않겠냐고 설명을 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환경은 소나무에게 물을 공급하기 어려운 가혹한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 소나무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는 재선충을 생각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였다. 과학자답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 필자는 소나무의 송화 가루로 다식을 만들어먹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생물학적인 생명력과 조상들의 지혜에서 내려오는 믿음이 생활과 예술로 표현되는 것을 그에게 전한다. 예전, 정월에 솔가지를 문 앞에 걸어 한 해의 운을 빌었고 제사를 지낼 때도 부정을 가시기 위해 금줄 사이에 푸른 솔가지를 꽂았다. 자식을 나았을 때는 금줄에 고추나 숯, 솔가지를 꽂아 나뿐 기운을 미리 예방하여 아기를 보호하였다. 이 모두가 소나무와 관련된 조상들의 지혜이다.

소나무는 불로장생, 영원을 상징하는 나무이다. 그래서 우리 민화의 십장생도(十長生圖)에 등장한다. 주된 내용은 불로초와 사슴·학·대나무·구름·해 등이며 커다란 암석에 웅장하고 아름다운 소나무를 배치한다. 소나무는 임금의 용상 뒤를 장식하는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에도 그려진다. 일월오봉도는 왕권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태평성대를 염원하는 의도에서 제작되는데 다섯 개의 산봉우리와 해, 달, 소나무, 물이 일정한 구도로 배치된다.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한 포스터. 일월곤륜장식도(日月崑崙裝飾圖 ; 일월오봉도)가 도안된 그림이 인쇄됨(국립민속박물관 소장)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한 포스터. 일월곤륜장식도(日月崑崙裝飾圖 ; 일월오봉도)가 도안된 그림이 인쇄됨(국립민속박물관 소장)>

회양목과 소나무는 고요한 인내와 모진 생명력, 그리고 강인함이 닮았다. 장자(莊子)는 ‘뜻을 깎아 세우며 고고하게 행동하는 것 보다 고요함과 비움,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이 천지자연의 고름(天地之平)이며 길의 본래 모습(道德之質)’이라고 이야기 했다. 즉 오랜 시간을 들여 노력하고 기다리다 보면 조금씩 변화하고 그 변화를 위해 조급해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일 게다. 장자의 각의(刻意)는 외연이 아니라, 고요함과 비움의 내면에서 시작되는 회양목의 더딘 성장과 같고 소나무의 영원한 본연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정화 fine0419@nextdaily.co.kr | 칼럼니스트 KBS방송국, 국립민속박물관, 국립생물자원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근무하면서 미디어와 박물관·미술관, 환경, 공예·디자인 관련 경험을 하였다. 현재는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전문위원이며 동화작가이다. 민속학, 박물관교육학을 전공하였고 다양한 기획과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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