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黎明)의 종이 울린다.
새벽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
깨진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른빛은 장마에
넘쳐 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서 황야에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섰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감상의 글
“여름에 수박, 겨울에 고구마.” 필자가 좋아하는 드라마의 한 대사다. 몇 년 전 ‘출생의 비밀’이라는 드라마에서 자살하려는 등장인물을 향해 유준상(홍경두 역)이 했던 말이다. “죽으면 안 된다. 여름에는 수박, 겨울에는 고구마, 가족들과 함께 먹으면 맛있는 것이 정말 많다”는 말로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리려는 인물의 마음을 움직인 후 달려들어 그의 자살을 막았다.

극 중 유준상이 했던 이 대사에는 일상의 행복이 담겨 있다. 무더운 여름에 가족이나 동료들과 함께 수박을 먹고, 추운 겨울에는 막 구운 고구마를 호호 불어가며 먹는 그 즐거움은 우리 삶의 소소한 행복거리다. 이 외에도 우리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시간들은 여러 모습들이 있다. 그런데 이 모든 행복한 순간들은 오직 살아 있을 때에만 느낄 수 있다. 죽으면 결코 느낄 수 없다. 수박도, 고구마도 먹지 못한다.

삶이 너무 힘들어서 삶 자체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는 ‘삶’을 간절하게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끔 병원에 가면 수없이 많은 환자들이 자신들의 질병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한다. 보다 빨리, 보다 완전하게 낫기 위해 여러 병원과 의사들을 수소문하고, 정 안 되면 민간요법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김광섭 시인의 ‘생의 감각’은 시인의 투병 생활을 바탕으로 쓰여 졌다. 시인은 1965년 4월에 서울운동장에서 벌어진 대학 야구 관전 중에 뇌출혈로 쓰러진 후 병마와 사투를 벌인 경험이 있다.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 병이 시 한 편을 선물하게 된 것이다. 1연에는 다시 깨어난 이후 맞이하는 첫 새벽을 노래하고 있다. 새벽의 모든 것들이 새롭게 다가온 것이다. 종소리가 들리고, 반짝이는 새벽별이 보이고,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거리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투병 전에는 그냥 그렇게 지나가던 것들이 투병 이후에는 너무 감사하고 분명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우리 속담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고생스럽고 힘들어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이 말을 정말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권유할 수는 없다. 그들이 처한 상황과 심적 고통을 모두 헤아릴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죽음 이후에는 일상의 모든 것들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다. 필자의 경험으로 봐도 나쁜 게 꼭 나쁘지만은 않으니, 삶이 힘들고 극한으로 내몰려도 ‘무더기로 핀 채송화’를 보며 참고 버텨야 한다. 수박과 고구마를 포기할 수는 없다.

최성원 기자 ipsi1004@nextdaily.co.kr 시인이자 칼럼니스트. 시집으로 「천국에도 기지국이 있다면」이 있다. 현재 서울 동부이촌동에서 국어와 논술을 가르치고 있으며, 저서로는 「7일 만에 끝내는 중학국어」 등이 있다. 또 ‘하얀국어’라는 인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시와와(詩와와)’는 ‘시 시(詩)’에 ‘와와(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웃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떠들어 대는 소리나 모양)’를 결합하였다. 시 읽기의 부흥이 오기를 희망한다. 100편의 시를 올릴 계획이다. 걷기와 운동, 독서와 집필, 사람 만나는 것, 그리고 야구를 좋아한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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