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그녀(Her, 2013)에는 주인공 테오도르가 이혼한 아내 캐서린과의 단란했던 순간을 추억하는 장면이 나온다. 남자는 창가에 앉아있고, 여자는 침대에서 막 잠에서 깬 듯 뒤척이다가 창가에 앉은 남자를 보자 부른다. “Rabbit, come and spoon me.” 그러자 남자는 토끼처럼 좋아하며 아내가 있는 침대로 간다.

남편을 토끼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것도 재미있지만, ‘와서 숟가락 해줘’ 라는 건 대체 무엇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남자는 옆으로 누운 여자 뒤편으로 가 여자와 같은 방향으로 누워 여자를 끌어안는다. 마치 스푼 두 개를 나란히 옆으로 세워 포개어 놓은 것 같은 자세를 스푸닝(spooning)이라 한다. 커플은 꼭 들어맞는 한 쌍의 스푼처럼 정답게 체온을 나눈다.

이 자세를 좋아하는 커플끼리는 그런 말도 한다. “I’ll be the little spoon (난 작은 스푼이 될게).” 통상 체구가 작은 여자들이 작은 스푼이 되지만 남자보다 덩치가 큰 여자의 경우도 작은 스푼이 되길 바란다. 우리말로는 이럴 경우 고목나무에 매미가 붙은 것 같지만, 영어로는 제트분사장치를 배낭처럼 등에 맸다고 말한다. 등에 매는 제트분사장치를 jetpack이라고 하기 때문에, 남자가 더 큰 여자 등에 붙어서 큰 스푼 역할을 하면 jetpacking한다고 표현한다.

큰 스푼 안에 작은 스푼이 포개어지면 어떻고, 제트패킹을 해서 여자 등에 매달린 것처럼 보이면 어떠랴. 중요한 건 두 사람이 따스한 체온을 나눈다는 것이다. 외로움은 상대에 대한 욕심이 채워지지 않아 생기는 감정이라지만, 가장 절절하게 그리운 건 체온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테오도르도 아내와의 과거를 추억할 때 키스나 정사가 아닌 스푸닝의 순간을 떠올린 게 아닐까 싶다.

신이 인간에게 채워줄 수 없는 한 가지가 바로 스킨십인 것 같다. 한껏 세상에서 지쳐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간절히 필요한 것은 기댈 어깨와 따뜻한 체온을 나누는 스킨십이다. 그렇게 외로울 때 신에게 기도하면 정신적인 위로는 받을 수 있으나, 기댈 어때 혹은 따스한 손의 터치 – 그런 원초적인 위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그래서 때로는 신보다 그 기댈 어깨 하나, 그 손짓 하나가 더 절실하다고 그렇게 외롭다고 울어본 사람은 아마 스푸닝이 왜 절절한지도 이해하리라 본다.

인간사이에는 사람의 체온으로 채워야 하는 거리가 그렇게 오롯이 있다. 때로는 그 거리가 너무도 아득하여 먼 우주만큼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더군다나 아무리 몸이 가까워도 정신은 아득히도 멀어서 거기서 느껴지는 배신감으로 더 지독하게 외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그게 영화 ET에서처럼 손가락 끝만 터치하는 그런 스킨십이어도, 그것만으로 온전히 사람과 사람의 사이가 더 메워지고 충만한 순간들이 삶에는 있다.

그래서 타인 (other person)이라는 말은 참으로 아득할 때도 있으나 그 앞에 형용사 하나를 붙여 어떤 타인과의 거리는 외려 모두 다 그리움으로 채워지는 것이라 본다. 같이 있어도 늘 그리운 타인도 있는 법이다. 여기에 붙이는 형용사는 significant이다. Significant other – 배우자 혹은 평생의 파트너를 가리키는 말로, 평생을 찾거나 평생을 함께 할 타인을 말한다. Significant는 ‘중요한’이라는 뜻이지만 ‘의미가 있어서 중요한’ 이라는 뜻이다. 상상해본다. 내게 의미 있는 그대 품에 작은 스푼으로 폭 안기는 그런 상상 – 일어나지 않을 일일 수 있으나 상상만으로도 삶은 촉촉해진다. 스푸닝의 힘, 아니, 교감을 원하고 믿는 힘이다. 이 힘으로 교감을 만들어가는 과정, 그게 살아가는 과정이라면 좋겠다.

Joyce Park rowanee@naver.com 필자는 영어를 업으로 삼고 사람에게 가서 닿는 여러 언어 중 영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한다. 현재 인천대학교에서 교양 영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영어 교재 저자이자 영어교수법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넥스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