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대여섯 평 남짓 되는 작은 마당에 둘러 앉아 소금구이를 먹던 옛 추억을 떠올리면, 그때 그 정겹던 순간이 가슴에 내려앉는다. 초여름 밤, 친척들까지 출동해 서거나 앉거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상추와 깻잎 같은 쌈채소와 함께 쌈장까지 얹어 소금구이를 맛있게 먹었다. 경상도 지역은 삼겹살 구이를 소금구이라 부른다.

내가 어렸을 당시에 시장통 통닭집은 고객이 직접 살아있는 닭을 선택하면, 눈 앞에서 그 닭을 잡아 튀겨주었다. 어린 마음에 통닭은 맛있었지만, 통닭집 앞은 가기가 두려웠고, 엄마가 닭을 선택할 때면, 불편한 마음이 올라와 자리를 피했다 돌아오곤 했다.

바닷가 근처에 살았으니 어시장은 늘 싱싱한 해산물로 가득 차 있었고, 뼈째 먹는 붕장어 등을 제외하고, 해산물은 종류별로 가리는 것이 없을 정도로 좋아했는데, 20대가 되자 모든 게 달라졌다.

시골에서 자녀 교육을 위해 올라온 하숙집 주인이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미 누렁이를 우리가 학교 간 사이 잡아버렸다. 핏기 가득한 하숙집 마당만이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려줄 뿐. 몸서리치게 만드는 이 기억은 악몽 같은 과거의 또다른 기억을 끌어올린다.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늦은 밤까지 자율학습을 하던 때였다. 괴기스러운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결국 우리는 호기심을 참지 못해 교실 밖으로 우르르 나갔다. 엎드려뻗쳐로 단체 기합을 받아 엉덩이가 얼얼 했지만, 실상 더 쓰리고 아픈 쪽은 마음이었다. 나무에 누렁이 한 마리가 매달려 있었고, 두 명의 남자가 몽둥이로 그 아이를 때리고 있었다. 더 맛있는 개고기를 얻기 위해서.

나는 윤리적 이유와 건강상의 목적, 종교적인 신념으로 20대에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세미 채식주의자이다. 붉은 고기와 조류를 먹지 않으나 유제품과 계란 혹은 해산물을 먹는 락토 오버(Lacto Ovo)와 페스코(Pesco)를 넘나들며 채식주의자 범주 내에서도 비교적 자유롭게 선택하며 살아 왔다. 30대 이후, 임신과 육아로 상황이 주어지면 거부하지 않고 육식을 먹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이 되었고, 기간을 정해 락토 오버와 페스코 채식을 틈틈이 한다.

"To be a vegetarian is to disagree with the course of things today, nuclear power, starvation, cruelty."(채식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오늘날의 많은 문제들, 원자력, 기아, 학대 등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열렬한 채식주의자 아이작 바쉐비스 싱어(Isaac Bashevis Singer, 197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미국의 작가)는 그의 작품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채식주의자와 채식주의를 강조하고, 언급했다. 그의 말대로 채식주의는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동식물과 지구 환경, 생존, 존엄, 인간성, 연민, 사랑 등 포괄적인 주제에 대한 근원 사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건강과 윤리, 초기에는 이 두 가지 관점에서 채식주의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 채식주의를 지향하는 삶은 녹록치 않다. 사회적인 강한 거부감에 부딪힌다. 가족과 직장, 친구 등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이해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처음에는 이해를 구하는 굴욕적인 자세를 갖게 되지만, 사회적인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자각은 더 큰 각성으로 나아가는 강력한 단초가 된다.

채식 전에는 '장을 보고, 요리를 해서 맛있게 먹는다’ 의 식생활 과정이라면, 채식 후에는 시장이나 마트에 진열되기 전의 상황까지 즉, 어느 지역에서, 어떤 생육 환경을 거쳐서, 누구에 의해서와 같은 과정에 주목하게 된다. 이런 인식 과정은 채식주의자로서의 삶을 유지하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소가 소의 부산물을 포함한 사료를 먹고, 온갖 화학비료로 범벅이 된 토양에서 채소를 키우고, 닭이나 양식 어류에 항생제가 오남용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채식’ 이라는 단순한 목표에서 벗어나 지구별에서 벌어지는 무수히 불행한 삶과 차별적이고, 파괴적인 인간의 행동을 돌아보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어서다.

채식을 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매주 하루만이라도 채식을 한다면, 하루만 고기를 먹지 않는다면, 그 이득은 실로 엄청나다. 1년 동안 1인당 13만 2,400L의 물을 절약할 수 있다. 이를 하루로 계산해보면, 거의 363L에 해당하는 양이다. 샤워 15분에 180L를 소비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실제로 절약할 수 있는 물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5,000lbs 이산화탄소 방출량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곡물 낭비, 산림 훼손, 기아, 기후 변화 등에 개인이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인 셈이다.

내가 고통을 원하지 않으면, 남도 고통을 원하지 않음을 알고, 무릇 생명 있는 모든 것이 그와 같음을 생각해봐야 한다.

"지구의 자원은 모두의 필요를 충족해 줄 수 있지만, 사람의 탐욕을 충족시키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채식이 인간 성품에 미치는 물리적 효과는 인류 운명에 가장 유익한 영향을 줄 것" 이라고 채식주의자였던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플렉시테리언으로 사는 동안일 지라도 Meat Free Monday(월요일은 채식하는 날)만은 놓치지 않는다.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가 아니고, 매주 한번씩 '생명’ 과 '지구’ 에 봉사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장윤정 eyjangnz@gmail.com 컴퓨터 전문지, 인터넷 신문, 인터넷 방송 분야에서 기자로, 기획자로 10여년 간 일했다. 출판 기획 및 교정을 틈틈히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살면서 본 애보리진과 마오리족의 예술, 건강한 사회와 행복한 개인을 위한 명상과 실수행에 관심이 많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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