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 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世上事)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 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都市)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 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 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 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감상의 글
대부분의 사람은 한방을 꿈꾼다. 그래서 로또도 사고, 주식 매매도 하고, 부동산 등에도 투자한다. 하지만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한방이 생기지 않는다. 로또는 엄청난 확률을 뚫기가 힘들고, 개미들은 주식 시장에서 패배자일 가능성이 아주 높고, 부동산은 소수를 제외하고 쓴물을 마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특히나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 상황을 이겨내려고 한방을 꿈꿀 수가 있는데 거의 대부분 실패하여 한 단계 하락한 삶의 조건을 갖게 된다.

필자도 오래 전에 ‘묻지마 투자’에서 쓴잔을 마신 경험이 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신문에 있는 복합상가 광고를 보게 되었다. 광고의 핵심은 종로에 있는 저명한 영화관을 복합상가로 바꾸게 되는데 투자하면 꽤 쏠쏠한 수익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같으면 전화조차 안 하겠지만 당시에는 워낙 지식이 부족한 편이어서 호기심에 전화를 걸어 보았다. 어떤 결과가 나오겠는가. 상담사의 노련한 상담에 걸려들고 만 것이다. 아니, 상담사는 평범했는데 필자가 노련하게(?) 걸려들었다고 해야 맞는 표현일 것이다. 아내의 강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잔금에 대한 고려조차 없이 투자를 하였는데 결론적으로는 당시 신혼 살림으로는 꽤 큰돈을 날리게 되었다. 이 무모한 투자는 한동안 가정 경제를 힘들게 했고, 결혼 생활 내내 아내의 얘깃거리가 되고 있어, 이 이야기가 나올 때면 얼른 화제를 돌리고 만다.

필자가 김준태 시인의 시 ‘참깨를 털면서’에서 순리의 교훈을 미리 얻었더라면 그런 낭패를 겪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이 시는 어떤 결과를 급히 얻으려는 현대인들에게 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시에는 손주와 할머니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산그늘이 진 밭 귀퉁이에서 참깨를 털고 있다. 조금 있으면 날이 어두워질 것이다. 두 인물은 시에서 대조적인 행동을 보인다. 젊은 손주는 마음이 급했다. 어서 마을로 내려가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참깨 터는 일을 빨리 마치고 싶어 한다. 막대기로 힘있게 내리친다. 참깨를 털다 보니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한번 털 때마다 참깨의 흰 알맹이들이 마구마구 쏟아진다. 참 세상일도 이렇게 시원하게 되는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참깻단을 내리친다. 갑자기 할머니가 제동을 건다. 모가지까지 털면 안 된다고 하신다. 할머니는 여지껏 막대기질을 슬슬 하셨다. 그런데 할머니는 대충 하신 게 아니고 모가지를 다치지 않게 살살 터신 것이다. 참깨는 한번 털고 또 말렸다가 다시 털어야 수확물을 많이 거둘 수 있다. 모가지까지 털어버리면 수확물이 적어진다. 손주는 그것까지는 몰랐다.

참깻단을 거꾸로 잡고 막대기로 슬슬 치는 할머니에게서 우리는 배울 게 있다. 순리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일을 너무 몰아쳐서 급하게 서두르다 보면 항상 탈이 생긴다. 돈을 벌거나, 결혼을 준비하거나, 어떤 일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순리를 따르면 뒤탈이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4차 산업혁명의 길에서 순리에 따르는 것을 고리타분하게 볼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것도 사람이 추진하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급박하게 몰고 가면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최성원 기자 ipsi1004@nextdaily.co.kr 시인이자 칼럼니스트. 시집으로 「천국에도 기지국이 있다면」이 있다. 현재 서울 동부이촌동에서 국어와 논술을 가르치고 있으며, 저서로는 「7일 만에 끝내는 중학국어」 등이 있다. 또 ‘하얀국어’라는 인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시와와(詩와와)’는 ‘시 시(詩)’에 ‘와와(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웃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떠들어 대는 소리나 모양)’를 결합하였다. 시 읽기의 부흥이 오기를 희망한다. 100편의 시를 올릴 계획이다. 걷기와 운동, 독서와 집필, 사람 만나는 것, 그리고 야구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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