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에 탄 사람들 모두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누군가에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행이지만 누군가에겐 지루하고 따분한 여행이기도 하다. 보편적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맞는 여행은 아닌 듯 싶다. 우리 8명은 35년이상 우정을 유지한 사이라 몰려다니는 것이 즐겁다. 여기 껴도 재미있고 기항지에 내려도 오글오글 같이 다니는 것이 즐겁다. 친구 중에는 미국에서 유학한 친구도 있고 어릴 적부터 미국에서 살아서 영어를 한국말보다 더 잘하는 친구도 있다. 8명 모두 영어로 의사소통에 큰 불편이 없다. 친구들 모두 특별히 도움 받을 일없이 크루즈안에서 독립적인 활동이 가능하다.

우리가 탄 크루즈는 플로리다에서 출발해서 대서양을 건너 지브랄타 해협을 지나왔단다. 크루즈를 20일이상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미국인이 많다. 전체 승객 중 미국인이 천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시스템이 미국인에게 맞춰져 있다. 복도에서 만난 한국 부인이 우울해보여서 안부를 물었더니 크루즈여행이 맞지 않는다고 한다. 영어를 잘하지 않으니 쇼나 공연을 봐도 재미없고 부부가 정찬테이블에 껴 앉아 있어도 외국인들과 대화가 되지않으니 심심하단다. 신혼여행이면 둘이서만도 즐거울텐데 크루즈는 군중 속에서 더 고독해진다. 아가씨인 듯 보이는 젊은 한국인 여자 둘이 보여서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무시를 한다. 그 이후로도 몇 번 만났는데 행복해 보이질 않는다. 사람들과 인사도 없이 둘이서만 다니는 모습을 자주 봤다. 말을 걸고 싶은데 표정이 심각해서 그 이후로 인사도 나누지 않았다.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는 행복해 보인다. 쌍둥이 딸 둘을 데리고 여기저기 바쁘게 다니면서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다. 할머니를 모시고 대가족이 왔다. 어린 아이들에게 크루즈는 재미있는 놀 거리 투성이다. 나에게 손주가 생긴다면 데리고 크루즈여행을 하고 싶다. 미국에서 온 재미교포 자매 두 분이랑 친해졌다. 자매가 각각 남편을 모시고 와서 4사람이 같이 다니신다. 그분들은 20일이상 크루즈중이시다. 볼 때마다 인사 나누고 정보도 나눈다. 자매가 항상 재미있게 붙어다니는데 남편들은 본적이 없다. 외국인들은 대부분 부부가 오거나 가족이 온 경우가 많다. 간혹 동성애커플이 보이기도 한다.

라스베가스에서 온 부부
라스베가스에서 온 부부

외국인들 경우는 정찬 때 함께 앉은 사람들끼리 친해지기도 하고 게임이나 수영장등에서 친해지기도 한다. 동네에서 단체로 온 경우도 있다. 나와 친해진 캐나다 울라울라 아저씨 팀은 일행들과 다같이 친해져서 나만 보면 다같이 인사하고 환호한다. 크루즈에서 친해진 팀 중에 가장 행복해 보인다. 평소에 친한 그룹이 단체로 와서 몰려다니면 딱 좋은 여행인 듯 싶다.

줌바삼매경
줌바삼매경

줌바강습시간에 옆에 선 산드라와 인사를 나누었다. 브라질에서 온 산드라는 성격도 화통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해서 나하고 손잡고 추기도 했다. 딸 가브리엘도 춤을 좋아하고 잘 춘다. 줌버 댄스 강습 받으면서 셋이서 신나게 흔들었다. 한국가면 줌바를 제대로 배워야겠다. 모녀가 같이 춤도 추고 제대로 논다. 예전에 크루즈를 탔을 때는 중앙에 데스크가 있어서 문제가 생기면 중앙데스크를 찾으면 되었다. 지금 탄 크루즈 배는 현대화되어서 그런지 중앙데스크가 없다. 전화로 교환을 통해 해당부서로 연결해서 해결하거나 각자 방의 담당에게 연락해서 해결해야 한다. 영어를 못하면 해결이 어렵다. 패키지로 온 팀을 보니 가이드가 아침마다 신문을 번역해서 나눠준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이드가 해결해주고 기항지관광도 선상투어보다 싼값에 하는듯 보인다. 영어를 못하거나 룸메이트를 구하지 못할 경우에는 패키지로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룸서비스로 먹은 그릇이 방문 앞에 놓여있다
룸서비스로 먹은 그릇이 방문 앞에 놓여있다

하루에 두 번 방 청소를 해주고 하루에 6번의 먹거리를 제공해준다. 기항지마다 제공받는 식재료가 다른지 메뉴는 싫증나지 않게 바뀐다. 별도의 지불을 하는 특별 식당도 있다. 술이나 생과일 쥬스 외에 차 커피 탄산음료는 무제한 마실 수 있다. 룸서비스를 편한 시간에 주문할 수도 있다. 방으로 음식이나 음료를 가져와서 먹어도 상관없다.

방열쇠 겸 신용카드
방열쇠 겸 신용카드

승선할 때 받은 개인카드로 모든 것을 지불한다. 배 안에서는 방 열쇠 겸 신용카드 겸 신분증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크루즈 곳곳에 바나 카페가 즐비한다
크루즈 곳곳에 바나 카페가 즐비한다

크루즈에서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지낼 수 있다. 크루즈안에서 지불하는 것들은 물가가 비싼 편이다. 상가의 물건들은 수시로 세일을 하기도 해서 쇼핑하는 즐거움도 있다. 카지노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오늘 하루는 기항지없이 항해하는 날이라 하루 종일 배에서 빈둥거렸다.

사파리클럽에서 공연
사파리클럽에서 공연

곳곳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제는 시들해서 줌바댄스시간에만 나갔다. 닐이 목이 아파서 말이 많지 않다. 우리들도 목이 좋지않다. 어제 아테네시내를 헤매고 다닌 탓이다. 공기 좋은 곳만 다니다 아테네에서 매연을 마시며 2층버스를 타고 다닌 후유증이 크다.

국기 퍼레이드
국기 퍼레이드

저녁먹기전에 직원들이 각 나라 국기를 들고 나와서 퍼레이드를 한다. 한국인직원이 없어서 한국을 호명하지는 않는데 태극기는 보인다. 퍼레이드를 마치고 정리하는 직원들이 지쳐보인다.

정찬디너를 위한 날
정찬디너를 위한 날

오늘 저녁은 정장을 입고 먹는 정찬이다. 차려 입고 다이닝룸으로 갔다.

정찬디너를 마치고
정찬디너를 마치고

다들 한껏 멋 내고 왔다. 서빙직원들도 다들 지쳐보인다. 매니저가 우리 테이블에 와서 내일이 어머니 날이라 스페셜 레스토랑을 20% 세일한다고 광고를 하는데 얼굴을 보니 다크서클이 볼까지 처져 내려왔다. 800명이 넘는 직원들이 2400명정도의 승객들을 위해 밤낮없이 일을 한다. 일년에 9개월을 바다에서 지낸다니 힘든 직업이다 싶다. 마지막까지 애쓰는 모습들이 짠하다.

내일은 드디어 마지막 날이다. 우리들의 여왕 놀이도 끝나간다. 저녁식사 후 11층데크에 모여서 와인을 마셨다. 배가 시실리 메시나를 지나고 있다. 우리가 첫 기항지관광한 곳이다. 배는 우리의 항로를 거슬러 로마로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의 여행은 앞으로 나아간다. 아쉬워하며 함께할 다음 여행을 꿈꾼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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