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노수린의 소통팔달(疏通八達)] 감정노동과 디지털 혁명

발행일시 : 2017-06-28 00:10
[노수린의 소통팔달(疏通八達)] 감정노동과 디지털 혁명

남녀가 만나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사랑을 한다. 곁에 있어도 네가 그리운 그들. 열정의 도파민은 그들을 한시도 눈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게 만든다. 제도가 약속한 사회의 격려 속에 그들은 사랑의 완성으로 상징되는 결혼을 하게 된다. 이제 그들은 서로를 위해가며 정답게 가정을 이룰 것이다. 사랑의 결실로 귀여운 2세도 생길 것이다. 모든 가정이 다 이같은 형태를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이처럼 아름다운 사랑의 과정에도 불구하고 결혼이 사랑의 무덤이라는 슬픈 말이 왜 생겼을까.

물론 도파민이 분비된다는 열정의 18개월이 지나면 남녀 사이에 처음과 같은 미칠듯한 감정은 사라질 것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이것이 사람의 수명을 유지시키기 위한 본능적인 방편이라고들 한다. 계속 도파민이 분비되면 사람의 심장에 무리가 가기 때문이란다. 그리하여 도파민 분비가 줄어들고 나면 그 대신 옥시토신이 생성된다. 애착과 안정감을 강화시켜주는 호르몬이라고 한다.

다행이다. 살아보겠다는 인간의 생명 본능을 거두어 가는 도파민 분비 대신 옥시토신은 우리들을 안정적인 결혼과 가정을 지켜나갈 길로 인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수많은 행복한 가정들에서 넘쳐나야 할 옥시토신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그 증명은 높은 이혼율로 나타난다. 정말 결혼은 사랑의 무덤일까? 어떻게 해야 결혼이 사랑의 연장선 상에서 사람을 지속적으로 행복하게 해주는 제도가 될 수 있을까? 미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디지털 혁명은 이런 상황을 혹시 도와줄 수 있을까?

결혼에 대한 당위와 현상 속에서 각자의 위치와 주장에 따라 이 질문의 답은 여러 갈래가 될 것이다. 어쨌거나 결혼은 연애시절 둘 사이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노동이라는 경제 행위가 생활의 주요 영역으로 등장한다는 점은 분명한 현실이다.

사랑이라는 낭만적 감성과 노동이라는 경제행위를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이제 부부는 지금까지 연습 한 번 해 본적 없는 ‘생활'을 기획해야 한다. 아마도 대체로 이 생활이 결혼을 무덤까지는 아니더라도 낭만을 희석시키는 것은 분명한 듯 하다. 대체 무엇이 사랑을 무덤으로 만드는 것일까?

[노수린의 소통팔달(疏通八達)] 감정노동과 디지털 혁명

첫번째 우선 시간과 자원의 안배가 갑자기 필요해진다. 둘의 시간 자원은 제한되어 있고 결혼으로 늘어난 책임과 의무에 맞춰 이를 최적화하여야 한다. 경제란 태생부터 효율화가 본질이다. 그러나 사랑은 경제가 아니다. 이 두 가지 모순적인 상황이 한 공간 안에서 벌어진다. 이 둘을 아무리 최적화 해도 사랑에 대한 절대적인 시간은 부족해 진다. 일 때문에 줄어든 사랑의 시간은 더 질적으로 높아져 사랑 총량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둘은 서로 짧은 시간 더욱 집중하고 함께하는 시간 동안 더욱 알찬 구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쩌나. 사랑 역시 경제의 입장에서는 용역(서비스)인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은 경제 원칙에 끌려가는 모습이다. 이미 경험한 이벤트는 한계효용이 체감하고 노동과 스트레스로 인해 떨어져가는 체력은 집중력을 방해한다. 여기에 두 사람의 각각 다른 가치관과 우선순위의 차이라도 있다면 해결을 위해 시작한 대화는 갈등상황으로 치닫는다.

두번째 노동의 강도는 생각보다 힘겹다. 노동은 사람이 살아나가기 위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의무이자 권리이다. 심지어 신성한 것이지라지만 그래 솔직 해보자. 역사이래 노동 안하고도 경제력을 쥘 수 있는 여건은 모든 이들이 꿈꾸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잉여자본을 모으려 애쓴다. 미래의 어느 날에는 노동보다는 자본소득으로 생활을 영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부는 젊은 날 모두 최선을 다해 노동에 매진한다.

그런데 여기 생각지도 않은 노동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감정 노동이다. 이 감정 노동은 단순히 물리적 노동력과 시간을 투입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가진 기본적인 자존감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감정 노동이다. 사람을 소모시킨다. 이 감정 노동이 보상체계가 정립되어 있는 것들은 그나마 소모된 사람을 심적으로 달래줄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상사에게 쪼이는 부하직원, 갑에게 당하는 을 같은 경우이다. 그런데 전혀 보상체계가 없는 극심한 감정 노동도 있다.

바로 그것이 세번째 새로 정립되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감정노동이다. 사랑했던 둘만의 감정 관계는 분명히 노동이 아니었다. 서로의 자아를 상승시켜주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혼을 통해 나와 무관했던 관계들이 내 생활로 들어온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내가 익숙해 질 틈도 없이 어떤 정해진 롤 플레이가 주어진다. 개인보다는 관습적인 윤리 기준이 부각된다. 주로 자녀의 양육과 처가와의 관계가 주를 이룬다. "어째서?" 라는 질문을 허용해 본 적이 없는 관계이다 보니 개인의 자아, 개성, 독특하고 다양한 상황 등과 주어진 기준 사이에서 갈등이 본질처럼 자리잡기 쉽다. 나이가 어리고 위계가 낮으며 새로 유입된 일원일 수록 감정 노동의 강도는 강해진다. 이러다 보니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새로이 맺어진 가족관계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가족은 화목해야 한다 라는 전통적 윤리관은 이런 스트레스 구조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소통 방식에 매우 보수적이다.

[노수린의 소통팔달(疏通八達)] 감정노동과 디지털 혁명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AI와 로보틱스가 지금보다 노동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늘린 미래의 어느 날이 왔다고 상상해보자. 지금 한참 논란이 되고 있는 기본소득이 국민들을 만족시키는 충분한 잉여 생산이 가능한 시기가 온다면 우리는 더 이상 노동을 위한 시간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가족 구성원간의 옥시토신 분비가 충분할 정도의 적당한 노동 강도와 시간이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결혼은 더 이상 사랑의 무덤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한 가지 숙제가 더 있다. 지금 세대의 생전에는 실현되지 않을지도 모를 디지털 유토피아의 그날이 온다고 해도, 사람의 행복은 잉여 생산과 잉여 시간 만으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 목표달성과 자본축적의 구호에 급급해 지금은 어루만지지 못하고 있는 인간의 감정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덜어주기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사람을 향한 디지털 혁명의 시작 인지도 모른다. 이의 개선과 관련된 사회구조를 바꿔 나가지 않는다면 AI와 첨단 IT기술은 화려하게 빛나는 부분을 더욱 빛나게 하는 대신 사람의 그늘진 부분을 더욱 어둡게 만들 것이다.

디지털 혁명을 바라보는 시선은 현재의 구조를 기준으로 하는 경제적 변화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지금 어쩔 수 없이 놓치고 있는 인간성과 관련된 본질적 부분을 돌아볼 여유와 능력도 함께 줄 수 있는 것이 데이터와 AI기술이다. 욕망을 조절하고 인간을 바라는 미래를 위한 노력, 어쩌면 지금 우리 가족들 사이의 감정 노동을 살피는 것이 시작이 되지 않을까?

노수린 suerynnroh@gmail.com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 언론홍보 석사, MBN 기자, KTF 해외마케팅과 플랫폼 기획팀장을 거쳐, IoT스타트업 운영과 컨설팅 및 교육 강의를 해왔다. 현재 한림대 사회학과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IT는 사람의 행복과 가치추구를 위해 서비스와 콘텐츠로 관계를 연결하는 장치라 생각하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용한 오픈 IT를 기반으로 사용자UX가 주권처럼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며 많은 이들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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