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과학융합기술 미래는 심리학·철학·컴퓨터공학 등 융합, 인간 기억·사고·학습 시스템 연구, 학계 교류로 산업계 활용 높이고 인재 양성·기술력 강화 지원해야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세계와 물리 세계의 접점에 있다. 흔히 인공지능을 핵심 요소 중 하나로 꼽지만 이는 사람을 닮은 기계를 만드는 시도에 불과하다. 즉, 디지털 세계에만 머문다. 하지만 인간 인지시스템처럼 자율적으로 기능하는 새로운 인공지능 아키텍처는 인간과 친숙한 물리 세계와 공존할 수 있다. 사람의 인지시스템을 연구하는 인지과학이 4차 산업혁명을 견인할 수 있는 핵심 요소로 부각되고 있는 이유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인지과학' 기술이 비즈니스가 되는 시대
1950년대 인공지능과 함께 출발한 인지과학은 인간의 지각과 행동, 사고 과정 등 인간의 마음을 구성하는 인지시스템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공지능이 사람을 닮은 기계를 만드는 공학적인 시도라면 인지과학은 심리학, 언어학, 철학, 신경과학, 그리고 컴퓨터과학(인공지능)이 융합됐다.

최근 인지과학은 마음 외 뇌와 몸, 그리고 환경과 결합된 인지 작용 지각과 행동, 기억, 사고, 학습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가 스마트폰, 가전제품, 무인차, 로봇 산업과 연계, 인공지능을 진화시키고 있다. 모든 사물이 센서로 연결돼 자율적 의사결정을 하는 초연결성, 초지능성을 지향하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이 깊다. 사물인터넷(IoT)을 하나의 인지시스템으로 보고, 인간 지각이나 행동, 사고를 모방한 자율적 인공지능 인지시스템 개발에 활용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인지과학에서 활발히 연구되는 사용자 인터페이스(UI), 사용자경험(UX)은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를 편하게 사용하는 연구의 바탕이 된다. 또 자동차 운전 시 사고를 최소화하는 공학적 설계나 사람의 뇌인지 시스템 구조와 기능 연구는 게임 시뮬레이션 시스템에 사용되는 인공지능 에이전트 개발에 활용된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간 인지시스템을 모사한 차세대 인공지능 기술이 필요하다. 또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모든 디지털 기기가 인간을 이해하게 하는 '인지과학 융합기술'은 비즈니스의 핵심요소가 된다.

◇국내 인지과학 융합기술의 미래, 학계·산업계·정부 공조에 달렸다
유럽연합(EU)에서는 2006년부터 인지시스템과 로보틱스 연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의 인간형 로봇 회사 '알데바란'은 페퍼라는 로봇을 개발했다. 이 로봇은 세계 가정과 상점 등에 판매될 계획이다. IBM은 DARPA의 지원으로 2009년부터 인지컴퓨팅을 연구한 결과 2011년 왓슨을 개발했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중반 '한국인지과학회'가 창립됐고, 1997년부터 서울대, 연세대, 성균관대 등에서 인지과학 협동과정이 시작됐다. 2014년 '한국인지과학산업협회'가 설립돼 학계와 산업계를 연결, 인지과학을 산업화하고 산업계 요구를 충족하는 인지과학 기초연구를 활성화하려는 시도가 시작됐다. 2015년부터는 한국정보과학회에서 인지과학과 인공지능 국제 심포지엄을 매년 개최하고 있다. 2016년에는 '한국인지융합과학기술포럼'이 결성돼 정부와 산학 협력의 장을 도모하고 있다.

국내 인지과학이나 관련 기술은 아직 이렇다 할 만한 산업적 성과가 없다. 인문·사회 과학자와 자연과학·공학자 협동 연구가 활발하지 못하고 특성에 맞게 지원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산업계도 인지과학융합기술의 장기적 플랜이 없는 상황이다.

왼쪽부터 한국인지과학회 및 한국인지과학산업협회 회장 서울대학교 장병탁교수, 한국인지과학융합기술포럼 공동의장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방송·미디어 연구소 안치득소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이상민의원
왼쪽부터 한국인지과학회 및 한국인지과학산업협회 회장 서울대학교 장병탁교수, 한국인지과학융합기술포럼 공동의장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방송·미디어 연구소 안치득소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이상민의원

'한국인지과학회'와 '한국인지과학산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서울대 장병탁교수는 “인지과학은 인문학과 자연과학, 순수과학과 응용과학, 학계와 산업계가 자연스럽게 협업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융합과학기술 분야로 4차 산업혁명에 새로운 에너지와 먹거리를 제공할 것”이라며 “한국인지과학회는 타 분야와 연계해 인지과학의 기초연구가 산업과 사회에 기여하도록 노력하겠다. 한국인지과학산업협회는 산업계에서의 인지과학기술에 대한 요구를 대변, 산학 협력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인지융합과학기술포럼' 공동의장인 안치득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방송·미디어 연구소장은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이 될 머신러닝과 지능정보는 모두 인간의 인지적 능력 한계를 정보통신 기술로 확장하는 것”이라면서 “인지융합과학기술 포럼은 개인과 기업이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환경 제공, 공공데이터 기반 창의적인 다량의 생태계 조성을 위해 정부를 비롯한 지자체, 공공단체와 공조하겠다”고 밝혔다.

인지융합과학기술을 오래 전부터 주창해온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는 개방과 공유, 융합이며 이는 인지융합과학기술 지향점과 같다. 민간과 공적기구가 함께 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마련해 활성화에 노력하겠다. 정부 각 부처에 인지융합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켜 가겠다”고 했다.

이제 인지과학 융합기술은 새 판을 짜야 한다. 학계에서는 각 분야에 산재된 전문가 및 타학문과의 교류, 가치 높은 선도형 연구로 산업계 활용성을 높여야 한다. 산업계도 장기적인 비즈니스 플랜으로 인지과학 융합기술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활성화를 목표로 둔 정부는 인지과학 융합기술 관련한 진흥법을 마련해 인재양성 및 기술과 산업 활성화를 주도해야 한다. 제대로 된 4차 산업혁명 먹거리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때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이향선 전자신문인터넷 기자 hyangseon.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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