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말, 3개월간의 긴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독일에 들렸다가 미국에 돌아왔다. 독일 카셀에서 5년 만에 열리는 국제 미술 전시인 도큐멘타(documenta)와 뮌스터에서 10년 만에 열리는 조각 프로젝트(Skulptur Projekte Münster)를 보고 싶어서 20년 만에 독일에 갔다. 1990년대 초에 남산 독일문화원에서 배운 독일어를 연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독일어를 연습하면서 외국어 학습 그 자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4박 5일간의 짧은 기간 여행 동안 독일어를 열심히 연습했다. 첫 이틀은 어려웠다. 말이 빨라서 질문에 대한 답을 이해 못하고 영어로 설명을 부탁하곤 했다. 독일어 단어는 합성어가 많은 편이라 한 마디가 긴 경우가 많아서 독해가 부담스러웠다. 도착한 공항에서 카셀행 기차표를 기계에서 사려고 했는데 독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결제 시간이 종료되어 세 번 반복해서 겨우 표를 샀다.

그런데 마지막 이틀은 귀와 눈이 익숙해져서 그런지 부담을 덜 느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이해하고 대화가 가능해졌다. 독해하는 데도 시간이 덜 걸리고 책방에 가서 시사 잡지를 읽었는데 주제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독해 연습을 위해서 이미 아는 내용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 한국 관광 안내 책을 구입했다. 다행히 막힘없이 읽을 수 있어서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부담스러웠던 독일어가 즐거워질 즈음 떠나야했지만 독일어에 흥미가 생겨 앞으로 연습할 기회를 적극 찾겠다고 마음먹었다.

미국에 도착해 다시 영어 바다에 몰입되었다. 이틀 쉬고 미네소타 주 북쪽에 있는 ‘콘코디아 언어 마을’(Concordia Language Villages)을 방문하고 한국어 프로그램을 참관했다. 필자가 태어난 1961년에 시작한 여름 어학 캠프이다. 당시 미국과 소련의 치열한 냉전 와중에 “지구촌 사회에서 책임감 있는 시민을 육성”이라는 이상주의적 이념으로 시작됐고 그 후에 명성을 얻어 현재 15개 언어를 ‘언어 마을’에서 가르치고 있다.

‘숲 속의 호수’라는 한국어 마을은 1999년에 시작됐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한국어 마을에 같이 살면서 음악, 미술, 스포츠 등 다양한 활동하고 있다. 한국어를 처음으로 배우는 아이가 있는 반면 매년 여름마다 오는 아이도 있고 개인적으로 배우다 온 아이도 있다. 강사는 한국어 원어민과 비원어민이다.

아침 마다 하루 종일 한국어만 사용하겠다는 ‘세종 선서’를 같이 낭독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 종일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이에게 부담스럽겠지만 한국어 ‘학습’은 프로그램 중심이 아니다. 다른 여름 캠프에서 그렇듯이 자연 속에 다른 아이와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사회성과 책임감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다. 한국어를 엄격하게 배우는 것보다 즐겁게 활동하면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은 활동을 통해 모두 즐겁게 그리고 열심히 한국어를 사용하려고 했다. 비원어민 강사 중에는 ‘숲 속의 호수’의 즐거운 경험 때문에 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으로 유학을 떠난 강사도 있다.

‘숲 속의 호수’에서 있는 동안 독일에서 말이 통했던 즐거운 순간이 떠올랐다. 필자가 고등학교 3학년을 마치고 멕시코에서 두 달 홈스테이하면서 즐겁게 파티에서 스페인어로 대화했던 장면,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일본에서 일본어를 열심히 연습했던 장면,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와서 한국어를 배우면서 가졌던 좋은 추억들도 떠올랐다.

그런데 한국에서 보통 외국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즐거움보다 어려움과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어렵기 때문에 쉬운 방법을, 필요하기 때문에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다. ‘방법’은 교수법일 수 있고 학습법일 수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 선생님이나 다른 사람들이 학습의 길을 제시해 줄 거라 기대하고 소극적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러한 외국어에 대한 태도는 영어를 필수 교과로 여기는 교육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외국어를 잘 배우고 싶다면 이러한 소극적인 자세를 극복해야 한다.

그 첫 걸음은 영어 필수 교육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늘 정답만 요구하는 재미없는 외국어 학습 ‘방법’을 굳이 쫓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방법’은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사정, 성격과 취향에 맞게 임의적으로 만들 수 있다. 책상에 앉아서, 지하철을 타면서, 원어민과 대화하면서, SNS를 사용하면서 익힐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그리고 그 방법도 공부, 연습, 놀이 등 상황과 기분에 따라 바꾸어 보면 재미가 더해진다.

비록 짧은 독일 여행이었지만 필자는 독일어에 대한 태도와 감정을 바꾸도록 노력했기 때문에 어렵고 따분한 단계를 넘어 결국 즐겁게 연습하고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마찬가지로 ‘숲 속의 호수’에서는 한국어를 열심히 사용하는 아이는 처음에 어려웠지만, 같이 고생하고 서로 연대감이 형성되면서 즐겁게 한국어를 사용하고 계속 배우고 싶은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외국어 학습의 비법은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 안에 있으며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그 순간 외국어를 즐겁게 사용할 수 있다.

로버트 파우저 robertjfouser@gmail.com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미시간대에서 일어일문학 학사 및 응용언어학 석사,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와 일본 교토대에서 영어와 영어교육을 가르쳤고, 일본 가고시마대에서 교양 한국어 과정을 개설해 가르쳤다. 한국 사회를 고찰하면서 한국어로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을 출간했다. 취미는 한옥과 오래된 동네 답사, 사진촬영으로 2012년 종로구 체부동에 ‘어락당(語樂堂, 말을 즐기는 집)’이라는 한옥을 짓기도 했으며, 2016년 교토에서 열린 ‘KG+’ 국제 사진전시회에 사진을 출품했다. 현재 미국에서 독립 학자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어로 ‘외국어 문화사’를 집필 중이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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