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추운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 신영복 ‘처음처럼’

작년(2016년) 7월 1일 ‘나만의 지도를 찾아라’라는 칼럼을 처음 삼아 매달 대략 두 편 정도의 ‘맵인사이트(Map Insight)’를 작성한 지 만 1년이 지났다. 넥스트데일리 측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칼럼 기고 요청을 받은 후 과연 10회나 겨우 채울 수 있을지 스스로에 대한 믿음마저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던 공간정보 관련 칼럼이었다. 그 칼럼이 어느덧 20회를 지나서 이제 25회 차 원고를 작성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맵인사이트’의 첫돌을 자축하는 심정으로 지난 1년을 돌이켜보고자 한다.

○ 새로운 ‘지.대.엷.얕.’으로서의 맵인사이트
초기에 설정한 칼럼 기획 의도는 매우 간단했다.
“일반인도 쉽게 접근 가능한 지도 및 GIS 분야에 관련된 이야기”를 월 2회 단위로 총 20회 정도 작성해 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애초 생각에는 공간정보업계 10년 근속 셀프 기념 차원에서, 고작 10년이라는 업력이 만족스러울 정도로 충분히 깊지는 않겠으나 아는 수준에서의, 그동안 직접 경험하고 깨달은 다양한 이야기를 차례차례 풀어나가볼 계획이었다. 공간 데이터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점, 선, 면’에 대한 것부터 시작해서, 방위, 측위, 지도제작, 다양한 속성정보, 지도와 위치정보를 활용한 서비스 등의 순서로 정리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다. 그래서 본격적인 칼럼은 ‘모든 것은 점에서부터 시작한다’로 문을 열었었다.
흥분과 기대로 많은 고민 끝에 설정했던 칼럼의 진행 순서는 고작 단 세 번째 칼럼에서 흐트러지고 말았다. 16년 7월, 공간정보업계뿐만 아니라 모든 ICT 종사자들, 그리고 게임 좀 해봤다는 플레이어들, 거기에 어릴 적 추억의 애니메이션을 기억하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깜짝선물처럼 ‘포켓몬고’ 게임이 등장했다. 칼럼 기획상 중반부 정도에 AR과 VR에 대한 내용을 담을 계획이었는데,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심정으로 급히 그에 대한 칼럼을 써내려갔다.(스마트폰의 지남철은 포켓몬을 향해 떨린다) 필자의 기획 의도보다는 독자들의 관심에 맞추어 방향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한 발 다른 방향으로 내딛었는데 본 궤도로 돌아오기에는 쉽지 않았다.

매번 칼럼을 작성하고 나면 항상 개인 운영 페이스북에 링크를 걸어 공유하고 이에 대한 지인들의 의견을 구하곤 했으며, 그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체계적이며 원론적인 ‘공간정보’ 개론이 아니라 삶 속에서의 ‘지도’ 이야기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 하나의 ‘지.대.엷.얕.’으로 다가서야겠다 싶었다. 채사장의 저서 ‘지.대.엷.얕.’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면, 내가 쓰는 ‘지.대.엷.얕.’은 ‘지도를 대하기 위한 엷고 얕은 지식’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 글을 통해 누구나 쉽고 친숙하게 지도와 공간정보를 대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가섰다.
칼럼 제목들을 봐도 상당히 의도적인 헤드라인 카피를 선정했다. ‘공간정보’라는 용어를 쓴 칼럼은 딱 하나(공간정보 기획자의 여행법) 뿐이고, 나머지 칼럼들은 죄다 ‘지도’라는 단어로 통칭된 것도 그 이유였다. 딱딱하고 어려워 보이는 사설을 벗어나서 말랑말랑하고 다가서기 쉬운 수필을 택하고자 했다. ‘지도’라는 단어가 ‘공간정보’라는 산업을 대변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물론 그렇게 보기에는 당연히 무리라고 대답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도’라는 것에 대해서 이미 ‘현대의 지도라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종이지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형태로 되어 있고 많은 정보가 담겨 있으며 마음대로 조작과 검색이 가능한 전자지도’라고 인식할 테니, 우리들의 앞선 걱정과는 달리 일반인들에게도 지도 형태를 빌린 공간정보에 대한 이해는 어느 수준 이상 공감되고 있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칼럼을 쓰는 과정에서 독자들에게 쉽게 공간정보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으면서도, 이와는 별도로 필자 스스로 ‘도대체 지도란 무엇인가’가 궁금해졌다. 글을 쓰면서 깊이있게 더 나아가지 못하고 어느 순간 ‘원점 앞에 다시 서다’와 같은 심정으로 지도와 공간정보 업계를 자꾸 돌이켜보고 자문자답하게 되었다. 칼럼을 쓰기 전까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조차 머리 속 한 켠에 똬리를 틀고 자리잡은 채 글로 풀리기 전까지 내내 머무르며 키보드 타이핑의 순간을 보챘다.

○ MECE하게 정리해 본 칼럼 목록
며칠 전 새로 알게 된 고객 한 분과 인사를 나누다가 기습질문을 받았다. 기획업무 담당이라는 소개에 대해서 ‘기획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을 받게 된 것이다. 나는 주저없이 ‘인사이트(Insight)’라고 대답했다. 기획은 나름대로의 시각으로 사실과 현상을 파악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업무라고 할 수 있겠다.
습관적으로 기획놀이를 즐기곤 하는데, 이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바로 고전적인 MECE 방법이다. MECE(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 즉 상호배제와 전체포괄의 원칙에 따라서 ‘겹치지 않으면서 전체를 빠짐없이 나누는’ 기획 방식이다. 회사 사원 명단을 놓고 이러저리 역할 그룹을 짜본다든지, 제안요청서에 있는 요구사항 목록을 나열해두고 시스템이나 사용자그룹이나 업무흐름 등으로 재정의해 본다든지, 책꽂이에 널려 있는 책들을 분류한다든지 하는 행위는 업무를 떠나서 놀이에 가깝다.

칼럼 1년, 스물 네 편의 글이 쌓이다 보니, 그동안 두서없이 기고했던 글에 대해서 또 다른 인사이트 잣대를 가지고 MECE하게 나눠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칼럼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읽는다면 작성순서와는 별도로 논리적인 순서가 필요해 보였고, 그래야만 하나의 큰 이야기가 완성될 것 같았다. 내심 이 글들을 재료로 단행본을 만든다면 어떤 방식으로 분류해서 정리하는 게 나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지도는 〇〇이다’라는 정의 형태를 빌어서, 지도는 권력이다(지도와 정치), 지도는 돈이다(지도와 경제), 지도는 어울림이다(지도와 사회), 지도는 생활이다(지도와 문화) 등으로 < 표 1>처럼 묶어보기도 했지만, 보는 바와 같이 그다지 깔끔한 분류결과가 도출되지는 않은 느낌이다. 결국 ‘지도는 지도다’ 형태의 의도가 명확하지 않은 미분류 항목이 남고 마는데, 이러한 시각으로 정리해보니 그동안 난삽하게 특정 주제에 대한 고려 없이 생각나는대로 글을 쓴 행위에 대한 반증 같기도 해서 부끄럽다. 정치·경제·사회·문화에 대한 지도의 매칭이라는 형태의 분류가 잘못 되었다기보다는 글 재료가 부실하다고 보는 게 맞겠다.

표1 .지도는 OO이다’라는 정의 방식으로 칼럼을 분류해 본 결과 목록
표1 .지도는 OO이다’라는 정의 방식으로 칼럼을 분류해 본 결과 목록

이와는 다른 방법으로 이러저러하게 분류를 시도해 보았으나, 그나마 가장 안정적인 분류방법은 기초적인 정의에서 출발하여 그것의 구성과 활용을 통한 미래상 도출 순으로 이야기를 정리해 가는 방식인 듯 했다. 지도의 정의 - 지도의 구성 - 지도 서비스 - 지도의 미래와 같은 형태로 분류하고 목록화를 하면 아래 <표 2>와 같이 구성해 볼 수 있다. <표 1>에 비해서 억지스럽지는 않은 듯 하나, 다소 밋밋해보이고 전형적으로 보이는 단점이 있다.

표2 . 일반적인 논리구성으로 칼럼을 분류해 본 결과 목록
표2 . 일반적인 논리구성으로 칼럼을 분류해 본 결과 목록

제목으로만 따진다면 분류가 어느 정도 어울려보일 수도 있지만, 칼럼이 작성된 순서와 칼럼이 작성되던 시점의 다양한 주변 정황에 따라 글 내용도 함께 변화무쌍하게 전개되다 보니 하나의 글로 묶어놓고 보면 어색한 부분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더라도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보고자 할 때 이 순서로 읽으면 어떨까 하고 권장해본다.
특히나 칼럼을 진행하던 1년이라는 길지 않은 기간동안, 개인적으로는 십여 년 몸 담았던 회사에서의 퇴사와 뒤늦은 직업정체성 혼란과 늦깎이 재취업의 과정을 거쳤으며, 국가적으로는 국정농단사태에서부터 보수와 진보 내의 분열, 뜨겁게 타올랐던 촛불혁명과 초유의 정권교체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한 역사적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상황이었다보니, 글마저도 이런 갖가지 상황에 따라 마구 널뛰었다. 경계 데이터(경계를 경계하다)와 동서남북 방위(둥근 지구 뒤집어 보기)를 생각하는데 자꾸 정치적 견해가 개입되고, 부끄러운 지도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쉬움을 잡문(지도가 알려주는 지도자의 일곱 가지 덕목)으로나마 달래고, 지도 안에서만이라도 하나가 되는 세상을 꿈꾸기(지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도 하면서, 공간정보 이야기는 단순한 빌미나 핑계에 지나지 않고 본질적으로는 속풀이용 칼럼으로 흐르는 경향도 없잖아 있었다.
이럴 때 즐겨 하는 이야기가 있다. 원래 지도라는 것이 큰 그릇과 같아서 이런 잡문이나 잡상마저도 모두 속성정보로 담을 수 있는 개념일 거라고...

○ 내 삶의 인사이트가 된 맵인사이트
전문 칼럼리스트도 아닌 필자에게 2주 단위로 돌아오는 칼럼 기고 마감은 상당히 부담되는 ‘글빚’이었다. 컴퓨터 매거진에 기고를 하고, 각종 워드프로세서나 운영체제 등에 대한 단행본 서적을 집필하는 등의 활동은 사실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부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20대 초반의 치기 어린 글과 30대 초반에 쓰던 상업성 기고문들과는 성격이 다른 꽤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글을 쓰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행위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왠지 모를 책임감마저 얹어져서 무게를 더했다.
칼럼 초반에 A4 용지로 서너 장 정도의 글을 쓰는 데에도 힘겨워하다가 어느 순간 그 분량이 예닐곱 장을 넘어서면서, ‘내가 그동안 참 많이 누르며 살고 있었구나’ 싶었다. 머리 속의 생각을 글로 풀어내어 컴퓨터 워드프로세서 속 빈 여백을 채우는 시간은 그다지 오래 걸리는 작업은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서너 시간, 짬을 내어 주말 반나절을 집중하면, 해치우는 느낌으로 숙제를 털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자기검열 시간이 문제였다. 아직도 자신있게 공간정보 분야의 전문가입네 말하기에는 스스로도 부족하다고 여기는 수준이다보니, 자칫 잘못된 정보나 근거를 토대로 칼럼이 나가지 않을까 우려되어 모든 내용을 검증하려고 드는 습관이 있다. 스스로의 글에 대한 애착도 한몫 한다. 여전히 오탈자나 비문이 종종 보이긴 하나, 평소 까탈스러울 정도로 읽히는 올바른 문장에 집중하다 보니 서너 번 정도는 곱씹어 봐야만 자신에게 원고 메일 발송 결재를 내리게 된다.
텍스트가 긴 편이고,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 글임에도, 주변에 있는 공간정보와 무관한 지인들이 내 글을 읽으면서 ‘신기하게 읽힌다’라는 평을 할 때 무척 뿌듯하고 행복하다. 글 역시 표현수단의 하나이므로, ‘읽히는’ 글이어야만 본연의 의미를 갖는다는 철학 때문이다.

1년 동안의 칼럼을 통해서 많은 분들을 알게 되었고, 연락이 끊겼던 사람들과 다시 연결되었으며, 무엇보다 내 속에 있는 나를 다시 되찾게 되었다. 분야 전문가들의 피드백은 늘 따끔하고 따스한 조언이 되었으며, 지인들의 애정 어린 응원은 지금까지 칼럼을 끌어오는 힘이 되어주었다. 업무분야의 정체성 혼돈 속에서 선언적 자기규정처럼 ‘나는 공간정보기획자다’라는 말을 건넬 수 있도록 만들어준 기회가 이 칼럼이었으며,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게 하고 다방면의 사람을 만나게 하고 갖가지 이야기를 나누게 하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만든 것 역시 이 칼럼이었다. 어쩌면 ‘맵인사이트’라는 칼럼은 나의 삶에 새로운 신선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역할마저 수행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제, 그런 기회를 제공해주었던 맵인사이트 칼럼을 잠시 내려두려고 한다. 벅차고 과분한 소임을 어느 정도 해냈다는 안도감, 스멀스멀 찾아드는 동어반복과도 비슷한 느낌의 매너리즘, 결정적으로 차분히 칼럼을 준비하고 집필하는 데 필요한 절대적 시간과 정신적 여유의 부재 등이 겹쳤다. 칼럼을 통해서 부족한 지식의 한계를 깨달았고, 미처 보지 못했던 분야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으며, 사고의 성숙 과정이 없으면 파닥거리는 날글들이 그대로 활자 형태를 빌어서 도망가겠다는 우려도 한몫 했다.

그동안 보잘 것 없는 글에 관심과 격려로 큰 힘을 실어보내주신 많은 분들께 이 글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조만간 다시, 마치 ‘처음처럼’, 하지만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지도와 공간과 우리네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길 바라며 맵인사이트 칼럼을 맺는다.

임영모 0duri@naver.com 연세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였다. 컴퓨터잡지사 기자로 시작하여, 애니메이션, 출판, 모바일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 GIS 업계에 종사한 지 10년이 넘었다. 현재는 ㈜지오투정보기술에서 인문학 기반을 활용한 다양한 공간정보 기획을 맡고 있다. 본 칼럼에서는 일반인들도 쉽게 공간정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지도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공간정보의 다채로운 활용에 대해 이야기한다. 개인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duri022 을 통한 담론을 언제든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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