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안중찬의 書三讀] 장 자끄 상뻬 '진정한 우정' - 고독으로 교유하는 벗님들

발행일시 : 2017-07-21 00:00
[안중찬의 書三讀] 장 자끄 상뻬 '진정한 우정' - 고독으로 교유하는 벗님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아무에게나 친구는 아무에게도 친구가 아니라고... 성 제롬이 말했다. 우정을 끝낼 수 있다면 그 우정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록펠러가 말했다. 사업하다가 생긴 우정이 우정으로 하는 사업보다 낫다고... 이탁오가 말했다.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좋은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고... 알랭 드 보통이 말했다. 더 행복해지고 싶다면 동창회에 나가지 말라고... 장 자끄 상뻬가 말했다. “나는 혼자이고 싶습니다. 주변엔 사람이 그득해야겠지만 말입니다······.”

[안중찬의 書三讀] 장 자끄 상뻬 '진정한 우정' - 고독으로 교유하는 벗님들

“경쟁심은 늘 존재합니다. 인간관계가 다 그렇듯이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관심이 이겨 버릴 테니까요. 친구인 두 여성이 아침에 길에서 마주칩니다.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서로 입은 옷을 비교합니다. 물론 나쁜 감정이 없더라도 말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정에는 거의 언제나 이해관계가 깃들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친구가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모두 성자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남자건 여자건 우리 모두는 사회적 성공을 추구하고, 잘 나가는 동료와 잘 차려입은 동업자를 부러워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매 순간 그런 증거를 찾아낼 수 있지 않습니까?” - 71쪽


춘추시대 제나라의 관중은 자신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며 헌신적이고 무한한 신뢰를 보내준 죽마지우 포숙과의 우정을 통해 관포지교(管鮑之交)의 교훈을 남겼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은 친구를 꿈꾸며 지란지교(芝蘭之交)를 소망한 수필의 인기는 수십 년째 사그라지지 않는다. 냉혹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의 안위를 위해 친구의 헌신과 희생을 정당화시키며 우정이란 보호막으로 미화시킨다. 헌신짝처럼 희생양 삼는 관계 보다야 낫겠지만 그렇게 이기적인 관계가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일방적인 우정의 한계를 경험하며 살다보니 남자의 우정이나 중년의 우정, 영원한 우정에 관한 개똥철학이 꼼지락거릴 때가 있다. 우정에 대한 생각은 동서고금 남녀노소의 관점에 따라 많은 문화적 차이점을 드러낼 수 있어서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겠지만 요즘 들어 한 프랑스 노인의 관점이 끌린다. ‘좀머 씨 이야기’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삽화가 상뻬는 지란지교와 관포지교의 틀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새로운 시대에 적절한 우정을 이야기한다. 약속 시간에 늦는 친구, 친구 간에 돈거래, 험담하는 친구, 허영심을 가진 친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격의 없이 털어놓는다.

우리가 조용필이나 아이유, 바비킴의 노래에서 찾아내는 우정에 깊이 빨려드는 것처럼 미레유와 장 노앵이 부른 프랑스 대중가요나 기 베아르, 갱스부르의 노래 가사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랑과 우정의 철학을 찾아내는 따뜻한 사람이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그림들은 현대 사회에 대해 사회학 논문 1천 편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는 평가에 어울리는 재치와 유머도 있다. 관심과 통찰력을 갖고 현명한 거리를 두는, 꿈처럼 아름다운 우정의 정의가 전혀 이질적이지 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읽는 이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안중찬의 書三讀] 장 자끄 상뻬 '진정한 우정' - 고독으로 교유하는 벗님들

“안녕하세요!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표현하고자 한 겁니다. 좋은 기분, 형제애와 우정, 그리고 사회적 관습도 함께 담으려 했습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거개가 서로들 싫어하죠. 내가 보기엔, 코믹합니다. 완전히 코믹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코믹한 것은 사실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 64쪽

상뻬와 오랜 세월 교유한 언론인 마르크 르카르팡티에는 황혼의 신사가 생각하는 우정에 대한 생각들을 부드럽게 끄집어낸다. 르카르팡티에는 아무런 의심 없이 이 책의 표지로 선택된 삽화를 보며 악수하는 사람들이 상대방에게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의 시대상을 질문하고, 이에 대해 상뻬는 인맥이랄까, 예의상의 우정 따위는 믿질 않는다고 답한다. 다양한 번역서로 눈에 익은 양영란 선생은 어색함 없이 우리 정서에 맞는 편안한 글로 옮겨 편안한 독서를 유도한다.

‘나는 우정을 두 차례 거부한 적이 있다. 한 번은 자기 얘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또 한 번은 내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거부했다.’와 같은 샹포르의 재치 있는 경구를 활용하는 것처럼 모든 이야기가 상뻬만의 창조물은 아니다. 수상에서 물러난 처칠에게 조지 버나드 쇼가 무대에 올린 희곡의 초대장을 보내면서 ‘표를 두 장 보내드립니다. 친구와 함께 오시면 될 테지요. 아직도 당신에게 친구가 남아 있다면 말입니다.’처럼 했다는 인용은 익살스런 우정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소박한 일상 속에서 맞닥뜨린 기적의 순간들을 스케치해 온 작가는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 속에서 열광과 환희의 순간들을 잡아 설득력 있는 삽화로 표현한다. 드넓은 풍경 속에 상대적으로 아주 작은 인물이나 동물의 동작들을 절묘한 감탄과 찰나의 관찰력으로 포착해서 풍부한 표정과 몸짓으로 담아낸다. 우정이란 결코 투명함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며, 친구라도 넘지 말아야할 선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심의 세계에서 벗어나 예의와 규칙을 바탕으로 한 어른들의 관계로 우정을 격상시켰다.


"연애 소설에서는 사람들이 무지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우정은 침묵을 먹고 자랍니다. (중략) 어차피, 모든 걸 다 말할 수 없는 노릇이지요. 하지만 우정을 나누는 사이에서라면, 친구한테 비밀을 털어 놓을 때 느끼는 달콤함도 있겠지요. 예컨대 피구뉴가 따뷔랭에게 자기는 움직이는 피사체를 찍을 줄 모른다고 털어놓고, 따뷔랭은 피구뉴한테 자기는 겁이 나서 여태껏 자전거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저는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60쪽


작가의 그림 소설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에서 표현했던 우정은 어쩌면 지금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가장 핵심적인 동력일지도 모른다. 마을 자전거포의 따뷔랭과 새로 이사 온 사진사 피구뉴의 짧은 대화 속에 녹아난 말이 필요 없는 우정의 깊은 맛을 들려준다. 작가의 우정은 매우 엄격하고 예의 바르지만 상대적인 관대함으로 독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예를 들어 내일 월드컵 축구 결승전 시합과 친구의 생일 파티 중에 무엇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심각한 거짓말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거짓말로 둘러대겠다는 속내 같은 것 말이다.

[안중찬의 書三讀] 장 자끄 상뻬 '진정한 우정' - 고독으로 교유하는 벗님들

“내가 보기엔 사람들이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되도록 상대와 말을 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아주 조심조심 주의를 기울이면서 말을 하면 오해를 피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런데 대체로 사람들은 퉁명스럽게 행동해서 공든 탑을 무너뜨리죠. (중략) 우정과 관련해서는 약간 감상적일 필요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감상적이어선 안 되죠. 지나치면 그건 재앙이 되어 버리니까요.” - 50쪽


그의 단짝이었던 저명한 여류 저널리스트 ‘프랑스아즈 지루’가 어느 책에서 언급한 친구와 놀이동무의 정의를 언급하는 것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에 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에 의하면 놀이 동무 부류를 ‘조만간 봐요’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헤어지면서 조만간 보자는 인사는 말은 그렇게 해도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어에는 잠시나마 애정과 호감 혹은 관심을 동시에 잡아끄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데 ‘조만가 봐요!’라는 분류법이 그 의미를 충분히 담아준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약속 없이 형식적으로 뱉게 되는 의례적인 인사말에 우리들은 얼마나 둔감하던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조만간 보자거나 언제 한 번 보자는 인사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어떤 우정을 기대할 수 있을까. 진정으로 아끼는 벗이나 존경심을 담은 경우는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상뻬는 오직 노력만이, 설사 아주 미미하고 상대방이 눈치조차 채지 못하더라도 부단히 기울이는 노력만이 우정을 지속시킨다고 이야기한다. 거저 주어지는 것이 없다는 그런 생각이 이 책 전반을 관통하는 진정한 우정론인 것이다.

“클레르와 나는 친구 사이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친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그 애가 니콜과 놀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나는 마리크리스틴을 찾아가서 우리 둘이 아주 재미있는 놀이를 하자고 말했지요. 그 놀이란 우리가 정말로 친한 척함으로써 클레르와 니콜의 화를 돋우자는 것이었어요. 우리는 내가 제안한 놀이를 했습니다. 날이 저물 무렵 나는 무척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주 재미있게 놀았기 때문이지요. 그 다음 날 클레르가 와서 나에게 말했습니다. 자기는 니콜보다 나를 더 좋아한다는 얘기였어요. 자기는 니콜과는 별로 친하지 않으며 그냥 친한 척을 했을 뿐이라더군요. 나는 무척 기분이 좋았습니다.” - 131쪽


남자들의 이야기인 듯싶으면서도 여자들의 우정에 대해서도, 어른들의 이야기인 듯싶으면서도 아이들의 우정이 있고, 남녀 간의 우정도 적절하게 담아 놓은 책이다. 자신을 여러 차례 인터뷰했던 언론인과 격의 없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도 느껴지는 그들의 우정은 풍부한 삽화들로 참 예쁘다. 빛이 바랜 듯 옅은 미색 표지에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악수를 나누는 수많은 비즈니스맨들의 상투적인 모습은 진정한 우정이 필요한 사회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수작이다. 우리와 다른 문화권 노인의 이야기가 정답은 아니겠지만 많은 것들에 좋은 생각의 구실을 남겼다.

무려 120점이나 실려 있는 그림 때문에 술술 읽힐 것 같지만 작고 꼼꼼한 텍스트는 좀처럼 빨리 읽어지지 않는다. 소설보다 시집 읽기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거장의 세심한 그림을 읽는데 소모되는 뇌의 활동 또한 적지 않은 시간을 자극하여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다. 일시적인 관계, 익살스러운 관계, 세상을 떠난 인물과의 관계에서 느꼈던 다양한 양상의 우정이 흥미롭게 구술된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삶에서 경험하는 우정의 다양성이 그에게는 기적이었노라 회고된다.

[안중찬의 書三讀] 장 자끄 상뻬 '진정한 우정' - 고독으로 교유하는 벗님들

“우리는 서로에게 감탄하고 서로를 존경하는 사이였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우정은 더욱 높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한 끊임없는 선의의 경쟁이 되었다. 그가 어떤 선행을 하면, 나는 기어이 그보다 더 착한 일을 한 다음 그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직정이 풀렸다. 그 사람 역시 오기가 대단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지 며칠도 안 돼서, 그는 내가 행한 것보다 훨씬 더 착한 일을 하고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어느 날 나는 더 이상 그를 따라갈 수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 다음 날, 나는 홧김에 우리의 약속 장소에 조금 늦게 나갔고, 또 그 다음 날에는 두 시간 넘게 지각을 했다. 그 다음 주에는 그를 바람 맞혀 종일토록 기다리게 만들고도 나 몰라라 하였다. 그 다음 달에 그는 나에게 알리지 않고 여행을 떠났다. 그에 질세라 나는 일언반구도 없이 이사를 가버렸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그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생각하니 기분이 별로 나쁘지 않았다.” - 122쪽


이쯤에서 관계의 최고 형태에 대한 선생님 말씀이 떠오른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이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하다, 입장의 동일함이 관계의 최고 형태다.’라던 그 말씀이 떠오른다. 아픔의 비가 내릴 때, 우산을 씌워주는 우정보다 더 큰 위로는 쏟아지는 그 속에서 ‘함께 맞는 비’의 연대를 실천하는 것이라 말씀하시던 그 목소리가 그립다.

깊은 밤 홀로 전화번호부를 뒤적인다. 일 없이도 만나는 친구와 일부러 시간을 내서 만나는 친구, 항상 베풀어 주는 친구와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하는 친구,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친구, 이유도 없이 멀어진 친구와 말 못할 사정으로 소식이 끊긴 친구들을 그리워한다. 지금 나를 설명하는 조건들은 유유상종의 진리 속에서 내 모든 친구들의 평균값으로 구성된 것이다. 나는 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굳이 더 좋은 친구가 될 필요는 있을까? 나는 혼자이고 싶다. 주변에 친구들이 그득하지만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교유하고 싶다.

안중찬 ahn0312@gmail.com (주)교보피앤비 기획실장 / 장거리 출퇴근의 고단함을 전철과 버스 안에서 책 읽기로 극복하는 낙관적이고 사교적인 생활인이다. 컴퓨터그래픽과 프로그래밍 분야 11권의 저서와 더불어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으로 한 권의 책에서 텍스트, 필자, 독자 자신을 읽어내는 서삼독의 실천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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