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로버트 파우저의 공감만감(共感萬感)] 이제 한국은 ‘건축 외교’가 필요하다

발행일시 : 2017-07-26 00:30
[로버트 파우저의 공감만감(共感萬感)] 이제 한국은 ‘건축 외교’가 필요하다

2012년 여름, 뉴욕을 방문한 적이 있다. 무더위도 피하고 멋진 작품도 감상할 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갔다. 미술관은 크고 볼 것이 많아서 하루 종일 있어도 시간가는 줄 몰랐다. 관람을 마치고 미술관 내에 있는 한 카페에서 쉬고 있는데 창밖에 펼쳐진 센트럴 파크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초록이 펼쳐진 센트럴 파크에 멋진 한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필자는 서울 체부동에 있는 한옥을 수리할 계획이었고 조만간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라 한옥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미술관을 나섰다.

미술관을 나온 것은 늦은 오후였다. 센트럴 파크에 가고 싶어서 바로 지하철역으로 가지 않고 미술관 뒤쪽으로 걸었다. 걷는 도중에 한옥에 대한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센트럴 파크는 오래된 공원이라 나무들이 크고 멋지다. 공원의 언덕도 부드러워서 한옥을 잘 지을 수 있는 자리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부드러운 언덕 위해 멋진 누마루가 있는 한옥에서 거문고 연주를 들으면서 한국 차를 마시는 모습을 떠올리며 한 순간 젖어들었다.

그 후에 뉴욕에서 바쁜 일정을 보냈지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근처에 한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하게 됐다. 왜 그랬을까?

우선 한옥은 한국에서만 찾을 수 있는 독특한 집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특유한 건축양식이 적용된 한국의 대표적 문화 산물이다. 자국 문화를 외국에서 홍보하려면 특유한 문화 산물 중심으로 해야 다른 나라와 차별성이 생긴다. 차별성은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에 중요하다.

예를 들면 프랑스 ‘샴페인’이 유명한데 이는 ‘샴페인’이라는 지역에서 제작된 것으로 한정하기 때문에 그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예로 재즈를 들 수 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치열했던 1950-60년대에 미국 국무성은 미국 특유의 음악인 재즈의 해외 투어를 꾸준히 지원했다. 그 이유는 미국이 소련에 비해서 보다 ‘자유롭다’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다.

그런데 2012년 여름에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자 한국에서 K-pop을 내세우자는 논의가 활발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일반인들에게 한국은 ‘싸이’와 ‘북한’이라는 이미지만 떠오를 뿐 존재감이 약했다. 가수 ‘싸이’는 개인적으로는 독특하고 창의적 가수이지만 미국에서 한국 문화를 알리는데 도움이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미국인의 세계관에서 보면 싸이는 좋아하는 가수 중의 하나이지 그가 한국인인 것에는 관심 갖지 않기 때문이다.

2012년 여름이 끝날 무렵 다시 한국에 돌아가서 체부동 한옥 수리 공사를 시작했다. 6개월 동안 거의 매일 공사를 지켜보면서 그 기간 내내 한옥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있었기에 2012년은 필자에게는 그래야 말로 ‘한옥의 해’였다. 2013년 초에 완공된 그 한옥의 이름을 ‘어락당’(語樂堂)이라 짓고 이사했다.

밝고 따뜻한 봄날에 대청마루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센트럴 파크에서 떠올렸던 한옥이 생각났다. 필자가 한옥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어락당을 보러온 외국인 친구들은 모두 감동을 받고 돌아갔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한 때의 유행이었지만 한옥은 유행을 모르는 매력적인 문화 산물이자 유산이다. 물론 인구 밀도가 높은 대도시에서는 현실적 대안은 되지 못하지만 한옥은 미학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우수한 공간이다.

이렇게 매력적인 한옥을 센트럴 파크와 같은 눈에 띄는 장소에 짓게 되면 훨씬 의미가 커질 것이다. 짓겠다는 계획부터 지역에서 관심을 끌 수 있어 한국 문화에 대한 의식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장소가 되면 더 많은 관람객이 찾을 것이고 그들을 통해 더 많이 알려질 것이다. 바로 이것은 한국 문화에 대한 의식과 이미지를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일본 정원 찻집 <샌프란시스코 일본 정원 찻집>

이런 점에서 한국의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은 미국에 전통 건축물과 정원을 많이 만들어 그들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접할 수 있게 했다.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에 소재한 피바디에섹스 박물관(Peabody Essex Museum)은 유길준(兪吉濬)의 유물로 유명하지만, 2001년에 18세기 중국의 지방 상류층 고택 한 채를 매입해서 미국으로 옮겼다. 음여당(蔭餘堂, Yin Yu Tang House)이라고 부르는 이 집은 이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유물 중 하나이다.

피바디에섹스박물관 중국 고택 음여당 <피바디에섹스박물관 중국 고택 음여당>

또한 워싱턴에 있는 국립수목원에 ‘국립 중국 정원’이 2002년에 제안이 돼 드디어 2016년에 공사가 시작됐다. 이 정원 안에 누정(樓亭)과 같은 중국 전통 건축물들 몇 개 들어설 예정이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합의로 시작한 프로젝트인데 중국에서 예산을 주로 부담했다.

워싱턴 국립 중국 정원 지도 <워싱턴 국립 중국 정원 지도>

일본 정원은 몇 백 개가 있는데 이 중에 유명한 건축물이 있는 곳도 있다. 가장 오래 된 것은 189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원됐다. 일본 전통 건축물이 몇 개가 있고 ‘일본 찻집’(Japanese Tea House)을 카페처럼 운영해 일본차와 과자를 즐길 수 있다. 1915년에 브루클린 식물원에 일본 정원이 개원됐는데 훌륭한 건축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일본 전통적 건물은 필라델피아에 있는 쇼후소(松風荘, Shofuso)이다. 1876년에 미국 건국 100주년을 기념한 박람회의 일본 전시관이 있었던 자리에 지은 전통 가옥이다. 이 집은 1953년 나고야에서 지었고 미국과 일본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우호 관계를 상징하는 일본의 선물이었다. 일본 정부, 기업, 그리고 개인 기부자의 모금 운동으로 예산을 확보했다. 미국으로 보내 2년간 뉴욕 현대 미술관(MoMA)에서 전시되었고 1958년에 필라델피아 현재 자리로 옮겼다. 뉴욕에서 전시하는 동안 관심을 많이 끌었고 전쟁 후에 일본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필라델피아 일본 전통 가옥 쇼후소 <필라델피아 일본 전통 가옥 쇼후소>

그리고 또 다른 좋은 사례는 보스턴 어린이 박물관이다. 1979년에 보스턴과 교토 두 도시는 자매결연을 맺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교토 시가 100년이 된 교토의 전통 상가 주택인 마치야를 보스턴 시에 기증해 이 박물관 안에 옮겼다. 이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은 일본 전통 문화를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또한 역사적인 도시로서 인적 교류의 거점 중 하나가 됐다.

보스턴 어린이박문관 교토 마치야 <보스턴 어린이박문관 교토 마치야>

이렇게 보면 전통적 건축과 정원을 활용한 ‘건축 외교’의 역사는 길다. 외국에서 자국 문화에 대한 의식과 이해를 높이면서 상대 나라와 우호 관계를 강화할 수 있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필자는 더운 여름날 뉴욕 센트럴 파크에 있는 멋진 한옥 누마루에서 시원한 오미자차를 마시는 꿈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센트럴 파크가 아니라도 좋다. 워싱턴도 좋고 다른 장소도 좋다. 중요한 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수하고 특유한 한옥에서 한국 문화를 즐기고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면 좋겠다.

문화를 알리는 것은 일시적인 홍보나 전시, 행사 등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며 체험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이나 일본이 오래전부터 하고 있는 ‘건축 외교’는 한국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한옥의 멋진 모습과 그 속에 깃들인 철학은 분명 미국인, 아니 세계인들에게 큰 울림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로버트 파우저 robertjfouser@gmail.com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미시간대에서 일어일문학 학사 및 응용언어학 석사,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와 일본 교토대에서 영어와 영어교육을 가르쳤고, 일본 가고시마대에서 교양 한국어 과정을 개설해 가르쳤다. 한국 사회를 고찰하면서 한국어로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을 출간했다. 취미는 한옥과 오래된 동네 답사, 사진촬영으로 2012년 종로구 체부동에 ‘어락당(語樂堂, 말을 즐기는 집)’이라는 한옥을 짓기도 했으며, 2016년 교토에서 열린 ‘KG+’ 국제 사진전시회에 사진을 출품했다. 현재 미국에서 독립 학자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어로 ‘외국어 문화사’를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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