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최성원의 시와와(詩와와)] 장석남, 배를 매며

발행일시 : 2017-07-26 00:00
[최성원의 시와와(詩와와)] 장석남, 배를 매며

아무 소리도 없이
무슨 신호도 없이
등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나는 깜짝 놀라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와 닿는다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
별 그럴 일도 없이 넋 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찌할 수 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

잔잔한 바닷물 위에
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
떠 있는 배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을 떠 있다

[최성원의 시와와(詩와와)] 장석남, 배를 매며

감상의 글
요즘은 결혼 상대를 고를 때 여러 가지 조건을 따진다. 세상이 하 수상하다 보니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려면 물질이 우선이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남녀 모두 상대방의 안정적인 직업, 상대방 부모의 재력이나 성향 등을 계산하게 된다.
이렇게 조건을 따지고 만나는 것과 달리 이성에의 감성적인 끌림은 계산 하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냥 그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한번 그 사람이 좋아지면 남들이 무어라고 해도 어쩔 수가 없다. 좀더 알아보고 교제하라는 말이 도통 귀에 들리지 않는다. 큐피트의 화살을 제대로 맞은 거다.

장석남의 ‘배를 매며’는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아주 멋지게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에서 ‘우연히’와 ‘어찌할 수 없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사랑은 특별한 사인 없이 우연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부부나 커플이 어떻게 만났는지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물론 아주 필연적인 만남이었다고 우기는 커플도 있을 것이지만. 대학의 강의실에서, 봉사 활동을 하다가, 은행에서 일을 보다가, 등등 들어보면 아주 신기하고 우연한 만남들이 많다.

그리고 또 사랑은 ‘어찌할 수 없’이 이루어진다. 시에 등장하는 인물도 부둣가에서 넋 놓고 있다가 던져지는 밧줄을 어찌할 수 없이 받아서 맸다고 한다. 그런 것이다. 그냥 자신의 마음 속을 헤집고 들어와 자리잡은 것이다. 사랑의 마음은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이성과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의 주변 요소에까지 매임을 경험하게 된다. 딱 그 사람하고만 모든 관계가 끝나지가 않는다. 배를 매기 전에는 그저 잔잔한 바닷물 위에 떠 있기만 했던 배일 뿐이었는데, 배를 매고 나니 배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함께 시야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온종일 인물의 마음을 울렁이게 만든 것이다.
이 멋진 시를 읽고 사랑을 시작하는 커플들이 하루 종일 상대방 생각에 가슴 울렁이고 살았으면 좋겠다. 다만 기혼자들은 시 감상으로 족하길 바랄 뿐이다.

최성원 기자 ipsi1004@nextdaily.co.kr 시인이자 칼럼니스트. 시집으로 「천국에도 기지국이 있다면」이 있다. 현재 서울 동부이촌동에서 국어와 논술을 가르치고 있으며, 저서로는 「7일 만에 끝내는 중학국어」 등이 있다. 또 ‘하얀국어’라는 인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시와와(詩와와)’는 ‘시 시(詩)’에 ‘와와(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웃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떠들어 대는 소리나 모양)’를 결합하였다. 시 읽기의 부흥이 오기를 희망한다. 100편의 시를 올릴 계획이다. 걷기와 운동, 독서와 집필, 사람 만나는 것, 그리고 야구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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