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안중찬의 書三讀] 오카다 다카시의 어쩌자고 결혼했을까 - 불안한 아내, 회피하는 남편

발행일시 : 2017-08-04 00:00
[안중찬의 書三讀] 오카다 다카시의 어쩌자고 결혼했을까 - 불안한 아내, 회피하는 남편

이른 나이에 백발이 성성한 친구와 식사를 하면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잘 살아야 한다.’던 상투적인 주례사의 모순을 이야기했다. 변화하는 결혼 풍습과 함께 주례 문화도 많이 바뀌어 까마득한 추억의 은유가 되어가는 파뿌리와 해로의 미담을 곱씹던 즐거운 만남이었다. 마흔 살 무렵부터 백발이 도드라진 친구는 하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이젠 내 머리도 파뿌리가 되었으니 결혼생활 청산해도 되겠지?”

인간은 연습 없이 태어나, 연습 없이 결혼하고, 연습 없이 늙고, 연습 없이 죽어가는 역사를 반복한다. 보편적인 삶의 궤적을 따라 앞서 간 사람들의 길을 밟다보면 대세를 거스를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만만한 선택지이다. 결혼을 지탱하는 힘은 무엇일까? 결혼이 단지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부를 에워싼 수많은 만남과 다양한 관계 속에서 피어난 꽃이라지만 궁극에는 두 사람의 문제다. 스스로 선택해야하는 심각하고 심오한 사랑과 골 깊은 갈등이 공존하는 세계다.

동네 극장을 다녀오던 길에 새로 문을 연 반디앤루니스에 들렀다. 책 한 권을 골라잡은 아내가 심각한 얼굴로 내용을 살피더니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잠시 후 그녀는 예의 장난스런 표정으로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떠난다고 상상해봐. 그럼 겁나?” “아니, 겁날 게 뭐 있어? 그저 두렵지.” 현대인들은 잘 산다는 기준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평가하는데, 우리 부부는 관계적인 관점에서 잘 산다. 결혼생활 15년 동안 매우 잘 살아서 더러 질투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만큼 잘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

[안중찬의 書三讀] 오카다 다카시의 어쩌자고 결혼했을까 - 불안한 아내, 회피하는 남편

“사랑의 형태는 한 가지가 아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삶은 예전의 사랑 형태와 맞지 않아 새로운 사랑 형태를 모색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영원한 사랑이라든가 변치 않는 결혼이라는 하나의 사랑 형태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비혼, 만혼, 이혼, 재혼, 어느 것이나 저마다 의미가 있다. 어느 것이 좋다든가 나쁘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 잣대로 바라봐서는 결코 답을 찾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 259쪽


이 책의 일본어판 원제는 ‘夫婦という病 夫を愛せない妻たち’(부부라는 병: 남편을 사랑할 수 없는 아내들)이다. 오래 전 ‘불륜이 경제를 살린다’라는 일본 책이 참으로 재미없는 한글제목으로 번역되어 실패한 기억을 놓고 볼 때 이 책은 원제를 압도하고 있다. 얼굴을 감싸 안은 표지의 여인은 분명 결혼을 후회하는 모습이지만 그녀는 혼자가 아니다. 나란한 책날개를 펼치면 숨어 있던 남자가 등장한다. 무책임한 남자의 표정이 다소 편파적이지만 심오하고 철학적이다. 밋밋했던 표지마저 ‘당승근’이라는 디자이너를 통해 새로운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빛났다.

이미 많은 심리서적을 통해 우리에게도 친숙한 오카다 다카시는 일본 최고 명문대 철학과를 중퇴하고, 의과대학에 들어가 정신의학과 뇌 과학 분야 전문가로 자리를 잡은 정신과 전문의다. 현대인의 정신적 위기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면서 다양한 가족 관계 병리 분야의 권위자 반열에 올랐다. 우리나라에도 전문가는 많은데, 굳이 50대 후반의 일본인의 책을 번역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읽다보니 각 사례들이 문화적으로 우리와 너무도 친숙하다. 자신이 경험한 19가지의 문제 사례를 서술하고 현상을 분석한 뒤에 적절한 처방을 내렸다. 마지막 두 장은 불세출의 여걸이 밟고 간 사랑과 결혼에 대해 물 흐르듯 잘 요약하여 메시지에 매력이 넘친다.

핵심 키워드는 회피와 불안이다. 이 책이 불편한 결혼생활의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겠지만 작은 이해의 불씨를 지피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당신은 침묵 속에서 성가신 일을 거부하는 회피형인가? 아니면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불안형인가? 스스로의 근원적 유형을 고민하는 것이 이 책의 기본 독법인 것이다. 모든 부부 문제를 극도로 단순화시켜 모두 네 가지의 애착 유형으로 규정하여 처방하고 있다.

1. ‘안정-회피형’은 관계를 소중히 여기지만, 더 깊은 유대감이 부담스러워 상대방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귀찮아 하고 피하는 애착 유형이다.
2. ‘안정-불안형’은 상대방에게 헌신하며, 매사 자신감이 없어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상대방에게 매달리고 결단력이 없다.
3. ‘불안정-회피형’은 표면적인 관계만 가능한 애착 유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신뢰나 유대감을 찾아보기 어렵고, 질투심이나 의심이 많다.
4. ‘불안정-불안형’은 항상 자신을 향한 환호를 갈구하기 때문에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한다. 조금이라도 상대방의 애정과 관심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곧바로 문제 행동을 일으켜 고통의 가해자가 되는 애착 유형이다.

[안중찬의 書三讀] 오카다 다카시의 어쩌자고 결혼했을까 - 불안한 아내, 회피하는 남편

“설거지를 거들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면서 막상 해주려고 나서면 손대지 말라고 난리를 친다. 이런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미리 헤아려 100% 만족시키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무엇을 하든 문제만 생길 뿐이다. 이는 아이를 학대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패턴으로, 그런 관계가 파트너에게도 일어난 것이다. 엄한 어머니 밑에서 잘한 것을 칭찬받기보다 잘하지 못한 것을 지적받으며 자란 R씨는 결벽 증세나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흠만 들추는 성격이 어머니를 쏙 빼닮았다.” - 57쪽


누구나 자신만의 애착 유형을 안고 살아가지만 신혼기와 같이 부부 사이가 좋을 때는 크게 문제되지 않다가 사사로운 엇박자로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위기가 밀려온다. 배우자의 비위를 맞추는 일이 한계에 다다르고, 목소리, 숨소리조차 듣기 싫어질 수 있다. 바로 그때 서로에게 도사린 애착 문제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남편의 사사로운 잘못이었지만 호르몬의 변화가 주요 원인일 수도 있다. 하루 한 알의 신경안정제가 갱년기로 인해 생긴 울화증을 개선시킨다는 합리적 조언이 따르는 사례다.

부부관계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을 경우, 어긋난 애착 유형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부부 관계에서 잘못 끼워진 단추를 풀고 다시 끼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만약 남편이 자신의 힘든 상황을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았다는 사실을 아내가 알았더라면, 신세한탄 하는 아내의 속뜻이 자신을 탓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가 듣고 싶어서였다는 사실을 남편이 알았더라면 부부의 사이가 심하게 어긋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깨우침을 알기 쉽게 전달한다.


“최근 아스퍼거 증후군과 자폐증 스펙트럼이라는 용어가 세상에 널리 회자되고 있다. 어른의 발달장애라는 표현도 자주 듣는다. 발달장애에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지만, 근래에는 아스퍼거 증후군 같은 자폐증 스펙트럼이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와 마찬가지로 급증하고 있다. (중략) 아스퍼거 증후군인 사람의 배우자나 파트너는 우울증이나 스트레스성 질환이 생기기 쉬운데, 이를 ‘카산드라 증후군’(감정 박탈 증후군)이라 부른다. 정확히는 아스퍼거 증후군뿐만 아니라 공감 능력과 감정 인지에 문제가 있는 파트너와 함께 생활하면 이런 증상이 나타날 위험이 있다. 파트너가 회피형 애착 유형이거나 자기애성 인격장애 같은 인격장애와 심한 뇌기능 장애를 앓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 98쪽


배우자의 애착 유형을 이해하면서 스스로의 유형을 찾아 간다면 부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 반복된다. 심각하지 않지만 모든 유형들 속에 잠재되어 있는 스스로의 문제점도 느껴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유대감이 바로 애착인데, 어릴 때 부모로부터 혹은 충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자라면 안정 애착 유형,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불안정 애착 유형이 되기 쉽다는 것은 누구나 알만한 사실이다. 부부 마음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면, 바로 그 근원을 찾아 어긋난 단추를 제대로 끼우고 다시 시작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혼은 많은 경우 성 문제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밭쥐의 사례는 불편한 문장이지만 전문가다운 적절한 사례였고 책 전반을 관통하는 의미 있는 키워드다. 아메리카대륙에 서식하는 밭쥐는 평원에 서식하는 초원밭쥐와 산악지대에 서식하는 산악밭쥐로 나눈다. 쌍을 이뤄 가족을 만드는 초원밭쥐는 옥시토신 수용체가 많이 분포되어 있지만, 단독으로 생활하는 산악밭쥐는 옥시토신 수용체가 별로 분포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산악밭쥐는 옥시토신 분비를 촉진하는 스킨십이나 글루밍에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고 오래 지속되는 애착이 형성되지 않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인간은 초원밭쥐와 비슷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이 아니라서 문제다.

이혼율 10퍼센트를 넘어선 이 나라에서 어른들의 전통적인 조언은 무의미하다. 어쩌면 어른들이 원인 제공자일 수도 있다. 독신인 여자 사람 친구에게 ‘미혼’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자신은 ‘비혼’이라며 ‘미혼’이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당장 사과하라는 날선 비난을 들은 적이 있다. 악의가 없었더라도 상대를 자극하는 표현은 피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이혼’을 대신하는 ‘졸혼’도 낯설지만 듣는 빈도가 점점 늘고 있다. 최근에는 선배의 이혼 파티에도 초대받은 일이 있었다. 결혼 했느냐는 질문도, 아이가 몇이냐는 질문도 실례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안중찬의 書三讀] 오카다 다카시의 어쩌자고 결혼했을까 - 불안한 아내, 회피하는 남편

"완벽주의가 강한 사람은 무심코 자신의 기준을 상대방에게 밀어붙인다. 그러면 상대방은 갑갑함을 느끼고 마음의 자유를 빼앗긴 듯한 기분을 느낀다. 이는 사랑이 아니라 미숙한 자기애다. 상대방은 이런 감정을 민감하게 감지한다. 사랑은 구속하려고 들면 도망친다. 통제하려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마음도 편하게 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칭칭 얽어맨다. 자신도 모르게 기쁨과 즐거움을 금한다. 불행한 인생이 아닐 수 없다. 상대방을 그만 통제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자신을 풀어주고 본래의 자신을 꽃피우는 일이기도 하다." - 160쪽


이 책은 기혼자들의 고민을 이야기하되 예비 신랑신부나, 비혼, 미혼 모두가 생각해야할 관계의 매뉴얼이다. 재미있는 표지가 많은 것을 이야기하듯 주로 여성이 피해자인 듯싶지만 매 맞는 남편, 아내에게 시달리는 남편의 사례도 다수 포함하고 있다. 부부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은 대개 평소보다 정신적인 부담이 커졌을 때의 일이다. 부부 관계가 안정적이면 위기 상황일수록 유대감이 강해지고 서로 힘을 합쳐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겠지만 애착 관계가 불안정하면 다르다. 돌이킬 수 없는 폭발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여성의 지위가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지만 결혼 문제는 여성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할 문제가 태반이다. 대부분의 결혼은 여성의 희생이 더 큰 결합이라는 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무거운 사례들을 가볍게 풀어서 진행하는 이야기의 백미는 이 책의 마지막 두 장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서 프리드리히 니체,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연인이었던 자유롭고 당당했던 루 살로메의 뜨거웠던 사랑과 거듭된 결혼 실패에도 속으로 삭히며 지고지순한 마음으로 견뎌내며 봉사활동으로 말년을 불태웠던 오드리 헵번의 일생을 압축한 서사만으로도 책값이 아깝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좋은 주례선생님을 만나 꾸준한 관심 속에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남의 결혼식에 가서도 주례사 듣는 재미를 누리며, 진심을 다한 주례사를 통해 마치 우리가 그 결혼의 주인공인 양 감동을 받기도, 반성을 하기도 한다. 주례 없는 결혼식의 사회를 맡아본 기억과 조용한 레스토랑을 빌려 소규모로 진행되는 조촐한 결혼식을 몇 차례 경험하며 시대의 변화를 느낀다. 더러는 재혼식에, 때로는 리마인드 웨딩파티에 초대되어 함께 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해결 방법을 찾는 것보다 평화로운 시절에 즐거운 마음으로 이 책 <어쩌자고 결혼했을까>를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결혼하면서 아내와 다짐한 일 중 가장 잘했다고 생각되는 것이 이른바 ‘불효자 전략’이다. 두 형님의 지극한 효심이 결혼 생활을 망쳐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습득한 반면교사다. 결혼 후, 부모님께 연락을 거의 안 하는 전략인데, 아내가 수시로 전화해서 시부모님을 챙긴다. 반면, 처갓집 일은 나의 몫이다. 서로의 집안 사정을 배우자를 통해 들으며 살아간다. 아버지는 며느리만도 못한 아들이라며 나를 꾸짖지만 집안은 평화롭고 화목하다. 장모님은 누구보다 자주 연락하는 사위를 동네 자랑으로 삼는다. 당신도 더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렸으면 좋겠다.

안중찬 ahn0312@gmail.com (주)교보피앤비 기획실장 / 장거리 출퇴근의 고단함을 전철과 버스 안에서 책 읽기로 극복하는 낙관적이고 사교적인 생활인이다. 컴퓨터그래픽과 프로그래밍 분야 11권의 저서와 더불어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으로 한 권의 책에서 텍스트, 필자, 독자 자신을 읽어내는 서삼독의 실천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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