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남자들이 변했다. 아니 이태리전체가 변했다. 일곱번째 오는 이태리인데 내가 기억하는 이태리와 많이 다르다. 이태리 남부는 두번째인데 완전히 편해졌다. 추근대던 남자들이 점잖아졌다. 내가 늙어버린 탓도 있고 옛날보단 가격적으로 비싼 숙소에서 묵는 탓도 있겠지만 습관적으로 던지던 추파가 덜해졌다. 그래서 편하다. 운전하기도 편해졌다.

예전에는 규정속도로 달리는데도 마구 끼어드는 차때문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내가 과격한 운전자가 된 듯 싶을 정도로 다들 편하게 운전한다. 각자 페이스에 맞게 운전하고 천천히 간다고 뭐라 하지도 않고 빨리 달리는 차를 방해하지도 않는다. 묘하게 질서가 잡혀있다. 나는 평균 시속 120에서 130사이로 운전하는데 160 넘는 속도로 질주하는 차를 자주 본다. 내가 추월차선에서 얼쩡거리지만 않으면 상관없다. 추월선에서 멋모르고 한참 달리다보면 뒤에서 쌍심지를 켜고 달려오는 차를 수시로 만난다. 예전 도로상태 좋던 아우토반을 달리는 기분이다. 가끔 바퀴벌레처럼 뒤집어진 차도 눈에 뜨인다. 무료 도로는 상황이 다소 다르다. 무료 도로는 퀼트조각천처럼 너덜거려서 고속으로 달리다 보면 토할 것 같다. 로마근처에서는 가끔 성질 급한 운전자도 만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예전보다 운전도 편해지고 남자들도 많이 점잖아져서 좋다.

카시노라는 마을은 이름도 처음 듣는 곳인데 이상하게도 호텔이 많다.

산위건물에 이끌려
산위건물에 이끌려

마을 중심의 산꼭대기에 성같은 것이 보인다. 체크아웃하고 꼬불꼬불 지그재그길을 올라갔다.

꼬불랑 길을 올라가본 수도원
꼬불랑 길을 올라가본 수도원

너무 꼬부랑 길이라 괜히 올라왔나 후회했지만 차를 돌릴 수가 없어서 끝까지 올라갔다.

드디어 도착
드디어 도착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보니 수도원이다. 분위기가 엄숙하다.

성스러운 곳이니 조용하라고 여기저기 적혀있다. 규모를 보니 엄청난 크기다.

채플 내부는 바티칸 못지않게 웅장하다. 타일 모자이크가 섬세하고 아름답다.

박물관 내부
박물관 내부

대충 산꼭대기에서 경치나 보고 가려했는데 박물관까지 제대로 다봤다.

성물도 많고 성화도 많은데다 보관상태가 좋다. 이런 곳이 왜 알려지지 않은지 의아하다. 이태리사람들만 오는 곳인지 이태리말로만 되어있다.

한적하고 성스런 분위기가 좋다. 차를 몰고 로마로 향했다.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어가니 전에 친구들과 같이 점심 먹은 곳이다. 같이 먹은 곳에서 혼자 먹으려니 맛이 없다. 반 이상을 남겼다.

참피노 공항 렌터카 사무실에 도착해서 차를 반납했다. 2천킬로이상을 함께한 피아트500은 혼자 다니기에 딱 좋다. 반자동이라 순간 가속에 문제가 있어서 추월하기 어려운 것과 변속 때마다 부르르 떠는 것을 빼고는 다 좋다.

다빈치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알아보니 5번에서 타란다. 한 백인남자가 서있다. 얼마나 기다렸냐고 물으니 한시간을 기다렸단다. 한시간 동안 두 사람이 달랑 기다리는 버스가 언제 올지 기약이 없다. 남자에게 떼르미니역으로 가서 버스를 갈아타는 것이 낫겠다고 하니 그냥 기다리겠단다. 내 자식도 아닌데 강요할 이유가 없다. 떼르미니역으로 가는 버스에 타고 출발하는데 한참이 걸렸다. 버스가 출발할 때 5번 플랫폼을 보니 아직도 그 남자 혼자 달랑 서있다. 부디 비행기를 놓치지 않기를 속으로 기도했다.

택시들이 바로 옆에서 하이에나처럼 대기중이니 다소 비싼 대가를 치르겠지만 놓치진 않을 듯 싶다. 떼르미니역으로 가니 바로 다빈치공항편이 연결된다. 버스는 로마 시내를 복습이라도 시켜주듯이 돌아준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전력질주해서 공항에 도착했다. 대한공항카운터가 3시간도 되기 전에 열려있다. 공항쇼핑시간을 넉넉히 주기 위한 배려일까 싶다.

체크인하고 들어갔다. 보안검색하고 나가자마자 택스리턴데스크가 보인다. 이태리에서 산 것은 스탬프 받을 필요없이 세금을 환급 받고 타국에서 산 것은 물건 확인하고 스탬프를 받고 세금을 환급 받는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보세구역에 들어서니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다. 신세진 분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것이 시중에서는 찾아도 없더니 면세점에 있다. 원하던 것을 사서 기분이 좋다. 라운지에 가려고 보니 멀다.

공항 이태리식당에서
공항 이태리식당에서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이태리음식을 먹고 싶어서 이태리식당으로 갔다. 와인리스트를 보니 시실리 에트나와인이 있다.

친구들과 함께한 에트나의 추억이 떠올라 에트나와인과 치킨요리를 주문했다. 라운지안가고 이태리식당에 오길 잘했다.

이태리에서의 미지막정찬이 대만족이다. 와인과 치킨 요리를 미지막으로 나는 먼지가 되어 나의 청소기에게로 날아갈 것이다. 차오! 이태리...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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