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짐을 쌌다. 이번에도 역시 되도록이면 가볍게 떠나고자 다짐을 했다. 그런데 하나 둘 넣다보니, 어느새 들고 가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의 무게가 되고 말았다. 가방을 펼쳐 놓고 가만히 보니 모두 필요해 보이는 것들이다.

가방 안의 반은 옷이다. 계절이 다른 남반구로 떠나는 길이라 겨울 옷을 약간 챙기면서 옷의 부피가 늘어났다. 혼자만의 여행이라 여유롭게 독서하는 꿈을 꾸면서 두 권의 두꺼운 책을 챙겼다. 운동화 외에 로퍼 하나를 추가했다. 지난 해 우리를 보살펴 준 고마운 이들을 위한 약간의 선물을 사서 넣었다. 개인 위생용품 및 노트북, 잡동사니들이 들어있을 뿐인데, 가방의 무게가 17킬로그램에 이른다.

체류 기간이 한 달 이상이라 그렇지, 여기서 뺄 게 어딨어? 이건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챙겨가지 않으면 헛돈을 쓰게 되는 거야, 그러니 챙겨둬야 해… 머릿속에서 무거운 가방을 위한 핑계를 대느라 바쁜 틈에 동시에 내 뒤에 남겨진 것들, 또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왜?'라는 물음이 치고 들어온다.

가방에서 전해져 오는 묵직함은 내가 가진 것들로부터 거꾸로 당하는 강한 억압과 구속을 의미한다. 이것은 무거운 모래 주머니를 늘 발목에 차고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것 마저 익숙해지면, 우리는 달고 사는 그 존재를 잊어버리면서 한 개 두 개 모래 주머니를 덧대는 어리석은 짓을 반복할 것이다. 결국, 자진해서 나 이외의 것들로부터 통제를 받는 삶에 들어가는 셈이다.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주며, 또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 찬찬히 집안을 둘러보며,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씁쓸한 위로와 위안을 보낸다. 오래돼 낡고, 어디에서도 비싼 물건은 찾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

1년 내내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소외된 많은 것들 위에 먼지와 함께 서글픔이 쌓여 있다. 분명 '돈’의 가치를 떠나 내 손에 처음 들어온 순간에는 존재의 이유가 분명 넘쳐 흐르도록 있었을 것이다. 구입 당시의 그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 가치는 빛바래졌으며, 관심은 무뎌졌고, '혹시나’하는 미련으로 감싼 채, 잠시 쓰레기통 행을 연기했을 뿐이다. 미련은 용도나 관심을 상실한 물건에게 사치스럽고 불필요한 감정의 찌꺼기가 아닐까 싶다. 남는 것은 한 해 한 해 두꺼워지는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골치만 아픈 먼지 뿐이다.

소유는 허무하다. 소유는 '버림' 혹은 버려짐’으로 끝난다. 무거운 여행 가방에서 '혹시나’하는 미련을 남긴 몇몇을 빼버렸다. 약간 가벼워졌다. 대신 집에는 남겨진 것들이 늘어났다. '소유’로 남을 것과 '버림’으로 떠날 것이 무엇인지 당장은 알 수 없지만, 결국은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미련이라는 감정을 삭제한 채, 과감한 '버림’으로 가치 떨어진 내 소유물들의 가치를 높이는 기회로 삼고 싶다.

무소유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다. 도시를 떠나 저 멀리 오지에 살아도 필요한 것들이 있고, 크든 작든, 많든 적든 어떠한 것이라도 소유하게 된다. 옷 한 벌, 수저 한 세트라도 '소유’할 수 밖에 없다. 소유의 반복은 이 삶을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소유의 무게 만큼, 소유당하는 존재들의 가치를 놓고 의미있는 바라보기를 하면, 힘든 무소유보다 덜 소유함에 오는 만족을 느끼지 않을까?

장윤정 eyjangnz@gmail.com 컴퓨터 전문지, 인터넷 신문, 인터넷 방송 분야에서 기자로, 기획자로 10여년 간 일했다. 출판 기획 및 교정을 틈틈히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살면서 본 애보리진과 마오리족의 예술, 건강한 사회와 행복한 개인을 위한 명상과 실수행에 관심이 많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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