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고사로 대학을 갔던 80년대에는 이상하게 여학생들이 수학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들보다 수와 논리에 약하다는 가정을 누구나 진실처럼 믿었었다. 요즘에는 신체와 지능이 조금 빨리 성숙해지는 10대 여학생들이 또래 남학생보다 여러가지 면에서 조금씩 우월하다는 사실이, 이제는 주변에서 쉽게 관찰된다. 그래서인지 이같은 사실을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그런데도 수학만큼은 남학생들이 더 잘할 것이다는 믿음은 이상하게 사라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여학생들이 수능 수학점수'마저' 남학생들을 앞질렀다고 한다. 벌써 두 해전인 2015년에 매체에 기사화도 되었다.

한 세대 전 아니 불과 10 여 년 전과는 전혀 다른 현상이 여기저기서 참 많이 벌어지고 있다. 위의 예처럼, 여학생이어서 수학을 못한다는 일반화가 깨진 것도 그 중 하나다. 우리나라는 가장 최근의 대입 수험 데이타가 증명해주었으니 깨졌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일부 기사에서는 상위권의 수학 평균 점수는 그래도 아직 남자가 더 높다고 '굳이' 항변해주고 있다. 허나 그 말이 오히려 뭔가 애써 변명하는 느낌이다. 이 또한 묘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도 아직도 꽤 많은 사람들이 여자는 '수학과 논리에 약하고 문학과 감성 쪽에 더 재능이 있다' 라는 말을 믿는 모양이다. 호르몬이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도 그럴 듯 하다. 정말 수와 논리의 학문영역에 성별에 따른 수행능력 차이가 있을까.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실험이 두 가지가 있었다. 10년 전인 2008년 Guiso라는 학자가 동료들과 함께 사이언스지에 게재한 논문이 하나고, 바로 작년 미국 경제학회지인 AER P&P에 실려 많은 반향을 가져왔던 'The Math Gender Gap: The Role of Culture'라는 논문의 실험이 또 하나다.

우선 사이언스지 논문은 'Science'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공식적으로 요약되어 있다. '수학성적의 남녀 격차가 성별간 문화가 평등한 나라에서는 사라지고 있다. (Analysis of PISA results suggests that the gender gap in math scores disappears in countries with a more gender-equal culture.)' 사회적 문화적으로 성별 평등이 실현되고 있는 나라에서는 수학을 잘하는 학생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 논문은 각 국가에서 산출한 성평등 지수란 것과 그 나라 남녀 학생의 수학 점수 격차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설명을 했다. 그리고 나온 결론이 그러했다. 성평등 지수가 높은 즉 사회 문화적으로 남녀평등이 잘 이뤄지고 있는 국가에서는 남녀의 수학점수 격차가 적거나 오히려 여학생이 높다는 것이었다.
이 논문이 처음 나온 이후 오히려 논쟁은 가열됐고 한동안 계속됐다. 자존심이 상한 어떤 학자들은 이 논문에 즉시 반대하는 논문을 내기도 했다.

그러다 작년인 2016년 미국경제학회지 (AEP P&P)에서 발표된 논문 이후에는 '남녀간 수학재능 격차란 없다'란 명제가 인정되는 분위기다. Nollenberger 등이 발표한 " The Math Gender Gap: The Role of Culture' 라는 제목의 논문이었는데, 이 논문은 이전의 논문들이 가진 다른 변수나 일반화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각각 다른 나라에서 미국으로 이민온 부모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고 한다. 부모들의 성장지는 성평등 지수가 각각 다 다른 곳이고, 아이들은 문화적 공통 환경인 미국이 된 것이다. 실험군에 소속된 아이들은 부모와의 교육과 소통만이 변수로 작용하게 되었다.

결과는 예상대로(!) 부모의 출신국의 성평등 지수가 높을수록 여학생들의 수학성적이 높았다.

성평등 의식이 낮은 사회 문화적 배경의 영향을 받은 여학생들은 왜 수학점수가 낮았을까.

성차별이 존재하는 문화권에서 성장한 여성들이 '수학공포 호르몬'이 나온다고 주장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다행히) 없었고 어쨌든 이에 관해 완전한 증명까지는 아니어도 "아하!" 하고 무릎을 치게하는 실험이 캐나다에서 있었다.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학의 스티븐 하이네 교수팀의 실험이었다.

동일한 시험에 비슷한 시험 점수를 보인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비슷한 난이도의 시험을 한 번 더 치게 했다. 그런데 한 그룹에는 시험을 보기전에 유전적인 한계, 즉 자신이 어떻게 바꿀 수 없는 인종, 성 등에 대한 암시를 주었다. 열등한 DNA 때문에 아마도 시험을 잘 못치를 것이다 라는 암시를 주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고정관념에 의한 암시를 받은 그룹은 확실히 첫번째 시험보다 점수가 낮게 나왔다. 문화 환경에서 주는 고정관념에 사람은 영향을 받는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재미있었던 것은, 주변에 이 실험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수학과 관련된 많은 간증(!) 들을 수 있었던 점이다. 학원을 다녔다든가 누군가에게 특별한 지도를 받은 경험이 없는 40대 이후 성인 여성이면서 문과출신들의 한탄이 많았다. 여학교 문과반에서 수학은 아예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는 볼멘소리로 부터 다른 과목에 집중하기 위해 스스로 포기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90년대 들어오면서 부터는 대입을 위한 내신이 강화되면서 여학생들도 수학을 포기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학원과 인터넷 강의가 부상하면서 학교 외에서의 수학 학습이 가능해졌다. 고정관념을 깨줄수 있는 영역은 원래 상업적 영역으로 아주 좋은 재료가 된다. 인기 강사들을 앞세운 학원들은 수학점수에 발동동 구르는 여학생들을 흡수했다. 그리고 고정관념 없는 상업적 동기부여가 여학생들의 시험용 수학성적을 올렸다. 사실 학원에서 수학 강의를 듣는 학생 그룹 안에서 남학생과 여학생 구분은 필요 없었지만 혜택은 여학생들이 더 본 셈이다

종합을 해보자면, 한 세대 전인 약 30 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는 학교도 여학생들 스스로도 여자이기 때문에 수와 논리는 약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부족한 수학성적도 성적이지만 당시의 교육제도 하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여학생들이 다른 과목에서 떨어진 수학 점수를 만회하려는 의욕이 더욱 배가되었을 것이다. 어학과 암기과목이 그것이다. 남학생들은 또 남학생들대로 남자니까 수학을 잘해야만 하는 부담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더 많은 노력이 투입되기 좋은 상황이다. 여자는 어학이, 남자는 수학 성적이 더 좋을 수 밖에 없었다. 성취 의욕을 많이 저하시켰던 경향성은 고정 관념으로부터 시작되어 확산되는 고정관념으로 굳어지게 됐다.

사회의 전반적 인프라가 디지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이름하에 진행되고 있는 지금이다. 이름하여 디지털 혁명, 혹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조금은 논쟁적인 명칭으로 불리운다. 디지털 혁명의 중심인 AI의 알고리즘은 수학적 논리 기반이 매우 중요하다.

미래사회의 주요한 중심축이 되는 학적 기반에 어느 한 쪽의 성별이 특별히 강하거나 특별히 약하지 않다는 사실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오랫동안 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그 사실이 밝혀진 것은 감사할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밝혀진 사실이 전하는 보다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우선, 우리 사회가 성 역할 혹은 성별 '고정관념' 이라고 하는 위험한 요소로 인해, 인간이 보유한 에너지의 절반을 간과하는 것은 큰 손실이라는 점이다. 마치 수학의 경우처럼 말이다. (물론 남학생이 어학을 못한다거나 감성이 부족하다는 고정관념 역시 마찬가지이다)

더불어, 사람의 고정관념이 반영된 알고리즘이 적용되어 만들어진 AI는 사람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계가 가진 오류에도 불구하고 숫자로 된 데이타에 의존하게 되는 사람들의 경향성 처럼, AI가 사람의 유한성을 보완해 준다는 맹신이 나타날 미래의 어느 날이 오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인류가 가진 보편적 지향성을 상승시키는데 변화의 에너지를 활용하게 하는 것은 어느 세대이든 인류에게 주어진 숙제이다. 다소 거창할 지 모르지만, 디지털 혁명의 변화의 시대에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은 개인적인 가치관의 이슈를 넘어서서 인류 공영을 저해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노수린 suerynnroh@gmail.com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 언론홍보 석사, MBN 기자, KTF 해외마케팅과 플랫폼 기획팀장을 거쳐, IoT스타트업 운영과 컨설팅 및 교육 강의를 해왔다. 현재 한림대 사회학과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IT는 사람의 행복과 가치추구를 위해 서비스와 콘텐츠로 관계를 연결하는 장치라 생각하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용한 오픈 IT를 기반으로 사용자UX가 주권처럼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며 많은 이들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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