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 종일 비 맞으며 다녔더니 여행 자체가 먹구름 낀 듯 우울하다. 여행 내내 비가 올까 걱정이다. 날씨복은 있다고 자부했었는데 운이란 것이 믿을 것이 못된다. 다행히 밤새 내리던 비가 그쳤다. 130크바르탈의 양철지붕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내 마음에도 햇살이 드리운다.

어제와 비슷한 밥상을 받았다. 치즈가 든 만두는 희한한 조합인데 묘하게 자꾸 먹게 된다. 러시아 유제품은 포장은 초라한데 천연의 맛이 살아있어 먹을수록 맛있다. 러시아음식에 길들여진건지 내 입맛이 변한 건지 알쏭하다. 짐을 꾸리고 로비로 갔다. 체크아웃하고 버스 기사를 기다렸다. 버스터미널에서 직접 표를 사면 800루블인데 호텔직원에게 부탁하니 천루블이라 한다. 대신 호텔에서 픽업해주니 괜찮다.

9시가 넘어 기사가 와서 우리를 차에 태운다. 중고독일승합차인데 다행히 상태가 좋아보인다. 버스는 시내를 구석구석 누비며 손님을 태운다. 마지막으로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우리를 태운 채로 차도 정비하고 새로운 손님을 더 태운다.

앙가라강을 지나
앙가라강을 지나

차는 앙가라강을 따라 한참 달린다. 바이칼로 흘러들어가는 물줄기는 330개인데 바이칼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는 유일하게 앙가라강 하나란다. 앙가라강은 흘러흘러 예르세이강을 만나 북극으로 간단다.

초원마을도 지나고
초원마을도 지나고

점점 고도가 높아지더니 초원도 지나고 마을도 수없이 지나다 휴게소에 선다.

휴게소 도착
휴게소 도착

휴게소에는 영어메뉴가 없어서 외국인들은 대부분 스낵이나 아이스크림 등을 먹고 러시아말을 하는 사람들이나 제대로 된 음식을 주문해 먹는다. 우리도 케익 한 조각하고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아침에 호텔에서 삶은 계란하고 빵을 챙겨오길 잘했다. 휴게소화장실은 깊이를 알 수 없이 깊고 자연의 향내가 풀풀 난다. 6시간을 달려야 하는 일정이라 할수없이 두 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나무판자위에 올랐다. 아래를 내려보니 나도 모르게 다리가 후들거린다.

항구 도착
항구 도착

차는 다시 열심히 달려 항구에 도착했다.

다행히 기다리지않고 바로 바지선에 올라탔다. 우리 차를 실은 바지선은 알혼섬에 도착했다. 섬에 도착하자 기사가 우리 호텔 이름을 묻는다.

비포장길을 달려
비포장길을 달려

비포장도로 40킬로정도를 한시간 걸려 쿠찌르마을에 도착했다. 기사가 우리호텔앞에 내려준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호수의 알혼섬 숙소까지 6시간 걸렸다. 세계에서 7번째로 큰 바이칼호수는 깊이가 1640미터까지 깊은 곳도 있어 담수량은 세계최고란다. 세상의 담수량 중 22%를 차지한다니 대단한 호수다. 환웅을 포함한 13형제가 내려와 세상을 열었다는 곳이 여기란다. 우리 단군신화의 뿌리가 여기라 한다.

불한바위가 보이는 침실
불한바위가 보이는 침실

내가 이 숙소를 예약한 가장 큰 이유는 방에서 성스러운 불한바위가 바로 보여서이다.

숙소 도착
숙소 도착

우리 숙소에서도 내가 예약한 방에서만 이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이방을 예약하려면 한달 전에 신청해도 안된다는데 우리는 운이 좋게도 예약을 했다. 이 동네에서 가장 전망 좋은 방에서 2박을 한다니 뿌듯하다. 우리 방의 이름은 프로방스룸이다. 이름 그대로 프로방스한 느낌이 묻어 나온다. 방에서 바이칼호수와 불한바위를 바라보면서 라볶이를 끓여먹었다. 저녁시간이 7시라는데 점심이 허술해서 7시까지 참을 수가 없다. 전망을 즐기면서 라볶이를 먹으니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불한바위로 산책
불한바위로 산책

식후경을 즐겼으니 불한바위로 산책을 나갔다. 호숫가경치는 솔직히 대단한 것은 없는듯 하다. 경치로 치면 우리나라 동해 추암 촛대바위가 3배는 더 멋질 것이다. 하지만 바이칼의 성지라니 느낌으로 전해 오는 감동은 무한대다.

13샤먼
13샤먼

13샤먼에서 내려보니 아름다운 비치가 펼쳐진다.

불한바위로 내려가는 중
불한바위로 내려가는 중

불한바위로 내려가니 성지표시가 나오며 더이상 들어가지 못한다는 팻말이 있다.

더 이상 진입금지
더 이상 진입금지

뒷쪽으로 성스러운 동굴이 있다는데 출입금지다. 지상최고의 파워풀한 성지라는데 내가 둔해서 그런지 별 느낌은 없다. 호텔로 돌아오니 저녁시간이다. 식당에서 한국인부부를 두쌍이나 만났다. 오랜만에 한국말로 실컷 수다를 떨었다. 식사는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저녁보다 한국말수다가 더 맛있다. 저녁 먹고 예약해놓은 러시아식 사우나인 반야를 하러갔다. 핀란드식 사우나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장작불 때서 돌을 뜨겁게 만들어 열을 내서 찜질하는 식이다. 한번은 해볼만한 체험인 듯 싶다. 내일 또 하고싶을 정도는 아닌 듯 하다. 실내에 갇혀서 하니 답답하다.

방에서 보는 석양
방에서 보는 석양

사우나하고 나오니 해는 서쪽산뒤로 넘어갔다. 하늘에는 구름이 한점도 없다.

달이 떠오르고
달이 떠오르고

동쪽하늘에는 일그러진 달이 떠오르고 하늘은 점점 어두워진다.

방에 앉아 호수의 밤을 느껴봄
방에 앉아 호수의 밤을 느껴봄

그리고 별이 빛나기 시작한다. 은하수가 흐르는 밤하늘을 기대했는데 대형 여행자숙소의 불빛이 너무 밝다. 밤하늘은 꽝이다. 그래도 하루 종일 비 맞고 헤매던 어제보다 좋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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