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인 줄 믿었던 사실이 알고 보면 행운인 경우가 있다. 세상만사 알고 보면 신의 깊은 뜻이 있는 법이다. 힘들다고 투덜댈 일도 없고 잘나간다고 기뻐할 일도 없다. 범사에 감사하며 살 일이다. 우리가 묵는 숙소에 10일째 머무는 한국인부부가 있다. 여름이면 시원한 바이칼에 와서 지내신단다. 식당에서 아침 먹으며 여러 정보를 주신다. 얼마전 바이칼주변에 산불이 많이 나고 가물어서 먼지가 많았단다. 이틀 전 비가 오는 바람에 공기가 달라지고 하늘색이 달라졌단다. 우리가 이르쿠츠크에서 하루 종일 비 맞으며 고생한 날이다. 바이칼 도착 선물로 단비를 받은 셈이다. 덕분에 알혼섬에 머무는 동안 환상적인 공기와 하늘색과 호수빛을 선물받았다. 이틀 전 퍼붓던 비가 바이칼신의 선물 같아서 감사하다.

알혼섬 북부투어 출발
알혼섬 북부투어 출발

아침 먹고 알혼섬 북부 투어를 출발했다. 매니저 마샤한테 앞자리에 앉아도 되냐고 물으니 앉으란다. 기사가 순하고 착하게 생겼다. 이름이 뭐냐고 물으려는데 깍바스만 생각이 난다. 뒤에 와야 할 단어가 도저히 생각나지않는다. 그래서 '야 미경 깍바스'라고 물었더니 세르게이라고 한다. 우리 차에는 중국 여자 2명 브라질남자 1명 캐나다 여자1명 한국인 5명이 탔다. 앞자리에 앉은 바람에 졸지에 기사 조수가 되어서 중국인에게는 중국말로 백인에게는 영어로 한국인에게는 한국말로 통역했다. 대단해보이지만 실상은 간단한 단어 몇개로 잘난 척 하는거다. 세르게이는 얌전하고 순한데 운전은 과격하다. 모래밭 진흙탕 길 오르막 내리막을 마구 달린다. 추월도 하고 풀밭 길로도 간다. 러시안짚차가 아니면 달리기 어려워 보이는 길이다.

짚차 투어로드
짚차 투어로드

세계 최강의 짚차다. 힘이 좋아서 못 가는 길이 없다. 구조는 단순해서 문제가 생기면 금방 해결한다.

악어모양 섬
악어모양 섬

제일 먼저 악어바위와 사자바위에 갔다.

악어가 사자를 쫓아가는 듯 보임
악어가 사자를 쫓아가는 듯 보임

물속에서 악어가 사자를 쫓아가는 모습이다. 다음에 도착한 비치휴게소에서 잣을 사먹었다. 다른 차에 탄 한국학생 2명을 만났다. 알혼섬에서만 한국인을 10명 이상 만났다. 중국인은 떼를 지어 단체여행을 주로 다니는데 한국인은 2명씩이나 혼자 자유여행을 즐긴다.

우리나라사람들 여행 문화가 많이 달라진 듯하다.

차는 달려서 알혼섬의 북쪽 끝에 도착했다. 기사가 피크ˆ테이블에 점심을 차려준다. 볶음밥과 닭볶음 치즈샌드위치다. 다들 맛있다면서 배불리 먹었다. 한국아가씨들이 모두 대학생이다. 친해져서 개인이야기도 거리낌없이 이야기해준다. 다른 차에 탄 총각도 알고보니 혼자 온 대학생이다. 북쪽 끝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또 경치 좋은 곳에 내려준다. 마지막으로 승마장 겸 기념품가게에 내려주면서 자유시간을 준다. 혼자 여행 온 대학생이 3명이다. 우리 부부를 스스럼없이 따라줘서 고맙다. 투어 끝나고 간식으로 우리방에서 짜장떡볶이파티를 했다. 대학생들을 불렀는데 2명이 늦게 오는 바람에 내가 너무 많이 먹었다. 저녁 먹으러 식당으로 가니 밥하고 생선이 맛있다. 과식했더니 배가 터질 지경이다. 선셋크루즈를 타러갔다. 부른 배를 움켜쥐고 배에 올랐다.

선셋크루즈를 타고 본 부르한바위
선셋크루즈를 타고 본 부르한바위

배는 선착장을 출발해서 부르한바위의 뒷모습을 돌아 북쪽으로 올라가 악어바위와 사자바위까지 돌아 내려온다.

바이칼호수위에서 석양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석양을 보고 선착장에 도착하니 마을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카페에서 라이브연주를 한다. 하늘의 달이 어제보다 뚱뚱해지고 더 밝아졌다. 바이칼신께서 화려한 자태를 하루 종일 보여주심이 감사하다. 이르쿠츠크에서 하루 종일 비 내리고 고생시키신 큰 뜻에 감사드리는 하루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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