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들에게 캄차카오지여행은 고통스러울 수 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않은 자연의 속살을 보려면 불편함은 감수해야한다. 편하게 좋은 경치를 즐기려는 사람은 캄차카에서는 헬기투어나 하고 크루즈투어로 만족해야 한다.

3박4일 딸바화산트레킹을 다녀왔다. 인터넷은 커녕 전화조차도 안되는 곳이라 세상사 완전히 잊고 지냈다. 캄차카 화산고원에서 태초의 모습을 만난 경험은 힘들고 불편했던 모든 것에 대한 넘치는 대가다. 투어 시작일 아침 7시 호텔 입구로 우리를 데리러 왔다. 러시안 짚차일까봐 걱정했는데 바퀴가 내 허리까지 오는 랜드크루저다.

출발
출발

가이드 겸 기사인 안드레아를 포함해서 5명이 타고 출발했다. 함께하는 윌과 스베타는 작년에 결혼한 신혼부부다. 수시로 껴안고 좋아 죽는다. 스베타는 윌이 입만 열면 코맹맹이소리를 내며 웃는다. 상페테르부르그에서 왔단다. 전형적인 도시남녀다. 첫날은 페트로파블로브스크호텔에서 출발해서 에소까지 간다. 에소에서 민속공연등을 보는 일정인데 휴일이라 안한단다.

소박한 민박
소박한 민박

숙소는 소박한 민박집이다. 히말라야산장 롯지보다 좀 나은 수준이다. 음식도 러시안 전통식인데 주린 배를 채우기 적당한 수준이다. 스베타는 시골민박집이 맘에 안 드는지 안드레아한테 계속 컴플레인을 하더니 근처 리조트숙소로 옮겼다.

에소민속마을
에소민속마을

우리는 캄차카 시골마을 민박집이 새롭고 좋다. 민박집주인도 우리네 시골 사람들 같아 정겹다. 우리까지 옮기면 안드레아 입장도 곤란할것같기도 하다. 이정도 숙소를 불편해하는 도시 남녀가 텐트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마을 온천 수영장
마을 온천 수영장

동네산책하고 마을온천수영장에서 수영하는 것은 완전 좋다. 마을아이들이 우리를 신기해하며 말을 건다. 어설픈 영어로 거미를 먹냐고 물어본다. 중국하고 헷갈리는 모양이다. 캄차카반도의 북쪽에 위치한 에소마을에는 여러 부족들이 산다는데 카레야키부족도 산단다. 왠지 카레이스키와 연관있을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안드레아가 영어를 제대로 못해서 궁금한 내용을 자세히 알 수가 없다. 여름성수기 영어가이드투어에 조인하려면 지난 겨울에 예약했어야 한단다. 우리처럼 현지에 와서 투어하려면 선택의 폭이 좁다. 우리는 화산트래킹이 주목적인데다 하도 굴러다닌 덕분에 눈치가 백단이라 큰 어려움은 없다.

강을 넘어
강을 넘어

다음날 아침 도시남녀를 태우고 딸바화산으로 출발했다. 차도녀 스베타는 한국에 일 때문에 4번 왔었단다. 한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않은건지 원래가 차도녀 스타일인지 우리한테도 호의적이지 않다. 영어를 잘하는데도 필요한 말 이외에는 안한다. 윌은 영어를 거의 못하지만 우리한테 호의적이다. 딸바화산으로 출발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화산고원가까이 갈수록 비가 점점 세게 온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해 텐트 설치
베이스캠프에 도착해 텐트 설치

안드레아를 도와서 함께 셸터와 텐트를 쳤다. 도시 남녀는 아무것도 할수없어서 도움이 안된다. 내가 셸터 안에서 둘이 쉬라고 했더니 좋아라하면서 쏙 들어간다. 우리는 도시남녀가 잘 텐트치는것을 도와주고 슬리핑백 두개를 하나로 엮는 것도 도와줬다. 남의 도움을 받기 싫어하는 전형적인 차도녀도 할수없이 받아들일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차도녀답게 형식적인 쌩큐를 잊지는 않는다.

비가 오는데다 구름이 고원에 깔려있으니 시야가 완전 막혀있다. 점심먹고 날씨봐서 돌아보기로 했는데 보이는게 없으니 말짱 꽝이다. 도시남녀는 비속의 텐트에서 도저히 견딜수없는지 텐트를 셸터안으로 옮겼다. 텐트안 슬리핑백안에 둘이 누워서 날이 개기를 기다렸지만 저녁 먹고 자는 동안에도 계속 비가 내렸다. 자는 동안에 추워서 몇번을 깼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 비가 그쳤다. 도시남녀가 텐트에서 나오면서 투덜댄다. 스베타는 평생 동안 최악의 밤을 보냈다고 넋두리한다. 아침 먹으면서 내가 위로해줬다. 우리가 산에서 고생했던 이야기를 해주면서 지나고나면 좋은 추억이 될거라고 했다. 스베타는 삐죽거리면서 그런 일 없을거란다. 도시남녀가 텐트생활을 포기하고 마을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모양이다. 안드레아가 우리보고 돌아가겠냐고 묻는다. 어렵게 온 캄차카의 딸바인데 포기하고 싶지않다고 했다. 안드레아가 좋아한다. 도시남녀하고 어떻게 타협했는지 우리로서는 모를 일이다.

하룻밤을 지내고나서야 도시남녀는 우리한테 관심을 보이고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나는 두사람에게 위로가 될만한 이야기위주로 해주었다. 산속 생활이 처음이라니 측은하기도 해서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낭만적인 산속을 꿈꾸며 캄차카의 트레킹 여행에 온 도시남녀에게 해줄수 있는것이 많지않다 안드레아가 난감해보인다. 안드레아는 우리를 위해서 김치와 김까지 준비한 사려 깊은 가이드다. 도시남녀때문에 지쳐보인다. 산에 처음 온 사람들이니 우리가 다같이 힘을 모아서 도와주자고 위로했다. 나중에 산을 알게되면 안드레아한테 감사할거라고 덧붙였다.

데드포레스트 가는 길
데드포레스트 가는 길

다행히 날이 개여서 데드포레스트에도 가고 전망분화구에도 올랐다. 데드포레스트는 40년전의 화산폭발당시 연기로 인해 숲이 죽어서 화석화된거란다.

다양한 색의 화산광물
다양한 색의 화산광물

나무가 연기로 인해 돌이 되어가는 중이다.

전망분화구위에서 바라본 화산공원의 광활함이 놀랍다.

나무만 갖다대면 불이 붙음
나무만 갖다대면 불이 붙음

핫도그 만들어주는 안드레아
핫도그 만들어주는 안드레아

안드레아가 화산에서 나오는 열기로 소시지를 구워 핫도그를 만들어 주었다. 완전 맛있어서 남기지않고 다 먹었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저작권자 © 넥스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