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호수 하나쯤 담아두고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비록 소유하진 못했으나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친구의 별장과 그곳에서 멀지 않은 호수는 마음의 평화와 일상의 경쟁으로부터 커다란 위안이 된다. 아침이면 동쪽 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으로 가슴이 뛰고 저녁이면 설악으로 지는 석양이 숙연한 영랑호의 평온함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의 한 가지일 뿐이다. 소유와 경쟁의 시대를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는 그 낭만의 호수에서 보내는 2~3일의 휴가는 수개월 혹은 1년의 도시생활을 견디는 힘이 된다.

살충제 계란과 닭, 그리고 발암 생리대 파동은 인류가 자초한 재앙의 새로운 발견일 뿐이다. 이 위험한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은 답답한 현실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시간이 멈춘 왕곡마을을 돌아 나와 영랑호에 도착했을 때, 북한의 철없는 독재자가 핵실험으로 도발했다는 라디오 뉴스가 흘러나왔다. 200년 전 태어난 소로우처럼 그 아름다운 호숫가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홀로 틀어 박혀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고백을 했다. 아내는 당장 그렇게 해보라고 했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정면 돌파, 그녀는 항상 지혜롭다.

“왜 우리들은 이렇게 쫓기듯이 인생을 낭비해가면서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배가 고프기도 전에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제때의 한 바늘이 나중에 아홉 바늘의 수고를 막아준다고 하면서, 내일의 아홉 바늘 수고를 막기 위해 오늘 천 바늘을 꿰매고 있다. 일, 일, 하지만 우리는 이렇다 할 중요한 일 하나 하고 있지 않다.” - 143쪽, 은행나무 · 강승영 번역

1845년 7월 4일은 70번째 미국 독립기념일이었다. 그 기념비적인 날에 사교성 없는 한 청년이 고향의 숲속 월든 호수(Walden Pond)로 들어갔다. 18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불꽃이 본격적으로 점화되던 시절이었다. 신생국가 미국은 의욕이 넘쳤고, 보스턴 주변 뉴잉글랜드의 울창한 숲은 고속 성장의 열망 속에 철로와 공단 설계 계획에 따라 거침없이 쓸려가고 있었다. 정직한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과 자연 속에서 버텨내는 인간의 길을 탐색하는 실험이 진지하게 시작되었는데, 무려 2년 2개월 2일 동안 지속되었다.

그보다 10개월 앞선 가을 날, 호숫가를 홀로 산책하던 중년의 에머슨은 호숫가 땅의 개발을 놓고 갑론을박 중이던 몇 사람과 우연히 마주쳤다. 사별한 전처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이 많았던 그는 발 빠른 흥정을 통해 그곳 13,000평 땅을 89달러 10센트에 구입했다. 내친김에 바로 옆의 땅 4,000평까지 추가로 구매한 다음 언제나 그곳을 동경했던 젊은 친구에게 마음껏 사용하라고 제안했다. 이듬해 봄, 목재를 준비한 가난한 청년이 소나무가 우거진 북쪽 언덕배기에 오두막 짓는 것을 돕고 본격적인 집필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

헨리 롱펠로우에게 독문학을 배웠고, 마거릿 풀러, 너대니얼 호손과도 교유했으나 정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과 가까이하지 못하는 등 관계에 서툴렀던 청년에게 에머슨은 최고의 스승이자 친구였고 후견인이었다. 하버드를 갓 졸업하고 일정한 직업 없이 방황하던 청년이 보스톤의 엘리트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던 ‘랠프 월도 에머슨’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무엇일까? 에머슨의 저서 ‘자연론’에 심취했던 스무 살 청년의 가슴을 뛰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미국 사상의 물줄기를 바꾼 이 만남은 우정과 경쟁, 시기와 질투가 뒤엉킨 채로 무려 25년간 지속된다.

주변 사람들은 소로우가 말투, 억양, 표현방식, 말할 때 망설이는 것, 숨을 쉬는 것까지 에머슨과 닮아갔다고 증언했다. 소로우가 스스로를 월든의 무단거주자로 소개했고, 에머슨의 존재를 애써 축소하거나 호의적으로 다루지 않았던 것은 그 글을 쓰는 기간에 사이가 나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월든에서 보내는 동안 손수 일해서 번 돈을 썼다고 꼼꼼하게 기록했지만 에머슨에게 돈을 빌린 사실은 감췄다. 반면, 에머슨은 자신의 집을 드나들며 도끼, 끌, 물통 등을 허락 없이 막 쓰는 청년에게 관대했고, 심지어 유언장을 고쳐 오두막이 있는 월든 땅을 그에게 상속했다.

오두막 생활이 1년쯤 되었을 때 노예제에 항의하며 주정부 세금을 거부한 채 자진해서 감옥에 간 소로우는 단 하루 만에 출소하여 김이 샜던 것 같다. 지방정부의 세금 문제로 연방정부의 노예제도에 미치지 못함을 설명하는 에머슨의 조언은 잔소리가 되어 더욱 짜증이 나게 했을 것이다. 이 때의 경험과 생각은 몇 년 뒤 ‘시민의 불복종’이란 글로 정리되어 유명세를 탔는데,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국가 권력의 개입을 성찰하는 명문으로 훗날 간디, 킹 목사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고, 톨스토이와 예이츠, 법정 스님 문학에도 감수성을 불어 넣었다.

흑인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반대한 그의 행동이 일으킨 파장은 기대 이상이었다. 에머슨이 인정한대로 소로우는 재능 있는 젊은이였고 인내심도 탁월했다. 월든 호숫가에서 소로우의 집필 활동이 탄력을 받자, 에머슨은 오두막 반대편에 두 배나 더 큰 땅을 구입해서 그 자신도 방해받지 않고 글을 쓸 작은 집을 짓기로 결심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에머슨이 해외 강연으로 명성을 쌓아가는 동안 소로우는 월든을 지키며, 꾸준하게 절제된 삶을 유지했다. 두 사람의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에도 매순간의 선택은 누가 옳고 그른지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일이다.

소로우는 아름다운 숲속 호수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방식으로 측량하고 그 방법을 글로 쓰고 지도도 직접 그려 넣었다. 월든은 800m 폭에 2.8km 둘레, 약 25만㎡ 면적으로 석촌호수 보다 작은 아담한 호수지만 중심은 약 32m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다. 소나무와 떡갈나무 숲의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영원한 샘물처럼 초록빛으로 의구하다. 호수로부터 100m 쯤 떨어진 명당에 자리한 오두막은 주변에 텃밭을 일구며 살았던 흔적과 함께 현대인에게 더할 나위 없는 위안의 순례지가 되었다.

소로우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의 수행자였고, 자유로운 인간의 길을 찾아가는 구도자의 모습으로 각인되었다. 에머슨으로 대변되는 초월주의자들과 다른 실용주의적인 노선의 이상주의적 행동가로 가슴 뛰는 삶을 살았다. 월든의 오두막에서 가장 의미 있게 집중한 일은 3년 전 요절한 형 존을 추억하는 만가와 자연 속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는 집필활동이었다. 그렇게 출간된 첫 책 ‘소로우의 강(원제: A week on the Concord and Merrimack Rivers)’에 혼신의 힘을 다 했지만 생전에는 거의 팔리지 않았다.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라.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인가?" - 482쪽, 은행나무 · 강승영 번역

21세기의 도시 문제를 그대로 꿰뚫어 본 19세기의 살아 숨 쉬는 지혜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월든 속에 창조된 소로우의 수행자적 이미지는 실존했던 소로우와 괴리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고, 관계에 서툰 소로우는 에머슨의 심기를 수시로 불편하게 했다. 하지만, 월든의 오두막에서 소로우는 꼭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만 고민하며 군더더기 없는 진실의 본질에 다가가고 싶었을 뿐이다. 남에게 보여주거나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닌 스스로 만족을 하고자 하는 삶,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인생의 정수를 뽑아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며 실천했다.

첫사랑 엘렌 시월에게 실연당한 이후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소로우는 여자와 섹스에 대해 결벽에 가까운 반응을 드러냈다. 소로우의 매끄럽지 못한 대인 관계는 주변 사람들을 늘 피곤하게 했으나 엄격한 이상주의자로 대립이나 조롱에 굴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첫 책의 실패 이후 1839년 4월부터 1854년 4월까지 장장 15년간의 일기를 바탕으로 8년의 역작 ‘월든’을 내놨지만 단지 에머슨의 아류작 정도로 치부되는 수모도 견뎌야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8년 동안 고작 2,000권 정도 팔렸지만 소로우는 흔들림 없이 저술과 강연을 이어 갔다.

대체로 우리는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거짓된 입장에 있으며 천성의 나약함 때문에 하나의 사정을 지레짐작하고 그것과 타협해 버린다. 어떤 진실도 거짓보다 낫다며 오직 진실만이 모든 것을 견디어 낸다는 소로우를 생각한다. 옷이든 친구이든 새로운 것을 얻으려고 애쓰지 말라고 말했던 그는 때때로 논어와 같은 동양 철학으로 현상을 인식했고, 사물은 변하지 않으며 변하는 것은 우리들이라고 비판했다. 그 어떤 권력도 자신을 막을 수 없는 길을 가고 싶어 했으며 수많은 영향력에 자신을 내맡기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 짓는 즐거움을 목수에게 넘겨주고 말 것인가에 대한 질문, 농장이나 형무소에 얽매이는 태도가 마찬가지일 뿐이라는 시선, 뉴스 보다는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 가십거리로 지적 능력을 소모시켜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 하느님 역시 홀로 존재하지만 악마는 결코 혼자 있는 법이 없다는 고독 예찬, 모두가 소박하게 살아간다면 도둑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확신, 오늘의 진리가 내일에는 거짓으로 판명될지도 모른다는 경계심은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쾌한 명문으로 끊임없이 재생산 되고 있다.

결국 ‘월든’은 저자가 죽고 100년쯤 후에 녹색의 고전으로 재평가 받으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소로우의 자연주의 철학에 영향을 받았다는 스코트 니어링, 베른트 하인리히는 물론 덕 파인, 실뱅 테송의 책을 읽으며 행복의 진화를 체험했다. 형식에 얽매이는 않는 오래된 글 속에서 미래지향적이고 감동적인 인간의 도전이 끊임없이 솟아났다. 가장 평범한 상식은 잠자고 있는 사람들의 상식이며, 우리는 보통 사람들보다 한 배 반쯤의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을 반편으로 치부해 버리는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꼬집었던 사자의 냉엄한 주장에 독자들은 압도당했다.

넘치는 부의 쓸모없음을 역설했고 검소한 생활을 예찬했던 소로우의 목소리는 이제 진리로 자리 잡았다. 순수성이란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안개 같은 것이며 세상에는 신기한 일이 끝없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우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지루함을 견뎌내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월든의 좁은 한계를 벗어나 멀리 나아가지 못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했던 그가 미래를 생각할 때 선을 그어놓지 말고, 그쪽의 윤곽을 희미하고 막연한 것으로 남겨두자는 신념의 아이콘이 되어 영생을 얻었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 보았습니다.
(중략)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면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피천득 번역 인용

소로우를 극찬했던 로버트 프로스트는 1916년에 발표한 시 ‘가지 않은 길’에 소로우의 정신을 담았다. 여러 글귀 중 직접적으로 영향을 줬을만한 글들이 다수 발견된다. 숲 속에서 생활한지 일주일이 채 안 되어 오두막에서 호수까지 그의 발자국으로 길이 났고, 월든을 떠난 후로도 오랫동안 그 길의 윤곽이 뚜렷이 남아 있었다는 기록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소로우의 월든 생활을 따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소로우는 꿈꾸는 방향으로 자신 있게 나아가라고 역설했고, 프로스트는 더 쉬운 방법으로 가능성의 새로운 길을 노래했다.

소로우의 죽음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웠다는 어떤 증언을 나는 여전히 믿지 않는다. 소로우가 자신의 이상을 완수하지 못하고 마흔다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떠난 것은 아쉽지만 그로부터 시작된 이상의 역사는 끊임없이 진보하고 있다. 인류의 문명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할 수는 있지만 문화적 긍지에 대한 까칠한 비판에는 모순도 있다. 이미 지구는 충분히 파괴되었고, 온전히 홀로 은둔할 수 있는 사색의 공간은 이제 우주 밖에서나 찾아봐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심장에는 소로우처럼 아름다운 호수 하나쯤 간직하면서······

안중찬 ahn0312@gmail.com 주)교보피앤비 기획실장 / 장거리 출퇴근의 고단함을 전철과 버스 안에서 책 읽기로 극복하는 낙관적이고 사교적인 생활인이다. 컴퓨터그래픽과 프로그래밍 분야 11권의 저서와 더불어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으로 한 권의 책에서 텍스트, 필자, 독자 자신을 읽어내는 서삼독의 실천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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