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캄차카크루즈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데이투어인데 1인당 20만원 안되는 투어라서 그저 그렇겠지 했다. 대부분의 캄차카투어에 비해서는 싼 편이다. 마리아가 강추하고 딱히 할 것도 없어서 하기로 했다. 버스나 택시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마리아가 선착장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며칠 전 마리아 강아지가 바늘을 삼켜서 수술을 받아 걱정이었는데 활발하게 잘 논단다. 강아지나 신경쓰라고 했는데도 우리가 헤맬까봐 이른 아침시간에도 불구하고 데려다준다. 내가 입은 옷과 신발을 보더니 마리아가 걱정한다. 크루즈는 많이 해봐서 난 크게 흥미가 없다. 그냥 캐빈에서 적당히 놀망놀망할 생각인데 선착장까지 가는 내내 걱정을 한다.

마리아가 옷입고 가라고 벗어준다
마리아가 옷입고 가라고 벗어준다

결국 마리아가 입은 자켓을 벗어준다. 난 혹시라도 더럽히거나 옷을 상하게 할까봐 계속 사양하는데도 마리아가 막무가내다. 우리가 타고갈 배는 예전에는 일본해상에서 폼 잡았을 중형요트다. 중고를 일본에서 수입했는지 화장실에 일본말 안내문이 붙어있다.

캐빈안은 20명 정도 앉을 공간이 된다. 테이블에는 아침이 차려져 있다. 커피와 티도 원하는 대로 마실 수 있게 준비되어 있다. 우리와 함께 하는 손님은 핀란드에서 온 잘 생긴 데이비드와 러시안 5명이다. 데이비드와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여 주는데 남편이 눈치를 준다. 옆을 돌아보니 데이비드의 카메라렌즈가 내 다리통보다 더 크다. 큰 렌즈가 3개나 된다. 사진작가란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치마 자랑한 꼴이다. 캄차카에서 만나는 외국인 여행자들중에는 여행 경력이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 특히 솔로여행자의 경우 경지에 달한 사람일 확률이 크다. 시간과 돈 체력 인내심과 여유로운 마음까지 갖춘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그렇지않고서는 제대로 즐기기 힘든 동네다.

선장님
선장님

선장에게 삼형제바위에 서냐고 물었더니 15분간 선단다. 눈앞에 보이는 데도 굳이 항로지도를 보여주면서 자랑을 한다. 원래 택시타고 가볼 생각이었는데 배에서 보게되니 좋다. 러시안들도 좋은 사람들이다. 비록 말은 안 통하지만 우리에게 배려해주는 것이 느껴진다. 젊은 커플 중 여자는 영어를 잘해서 나한테 설명을 통역해주기도 한다. 테이블에 음식이 차려져있으니 수시로 손이 간다. 헬기투어 때마다 배가 고팠던 기억이라 먹을 것을 챙겨왔는데 꺼낼 필요가 없다.

대게를 배에 올려줌
대게를 배에 올려줌

중간에 작은 보트가 오더니 싱싱한 게들을 잔뜩 올려주고 간다. 선원이 손질해서 쪄서 먹을 수 있게 준비해준다. 캄치카투어 중 가장 배부른 투어다.

삼형제바위
삼형제바위

삼형제바위 뿐 아니라 아름다운 섬과 바위들마다 서 준다. 러시안펭귄도 보고 물개도 봤다. 내 카메라로는 제대로 찍기 어렵다.

망원렌즈 3개로 번갈아가며 찍음
망원렌즈 3개로 번갈아가며 찍음

데이비드의 망원렌즈가 완전 멋지다. 사진 찍는 폼도 예술이다. 3개의 카메라로 바꿔가면서 찍는데 아무리 봐도 이유를 모르겠다. 데이비드는 파타고니아도 여러 번 가봤고 뉴질랜드에도 3번이나 갔단다. 동물이나 새에게 특히 관심이 많다. 찍고는 바로 노트북에서 확인을 한다. 마음에 드는 장면을 얻어서 기분 좋아한다. 부리가 빨간 새인데 이곳에만 사는 새란다. 러시안 중 나이든 여자가 멀미를 한다. 자리에 쓰러져 드러누웠다. 멀미하는 사람들이 할 투어는 아니다. 바람이 심하지않아도 작은 배라 심하게 요동친다. 배의 여주인 수잔이 중요한 포인트마다 설명을 해준다. 영어로는 겨우 이름정도 알려준다.

수시로 먹을 것을 만들어 준다. 연어스프를 만들어 주는데 보기보다 맛있다. 스프를 먹고나니 선미에 대게를 먹을수있게 차려준다. 배터지게 먹었는데도 대게가 남았다. 게를 먹으면서 낚시를 할수있게 도와준다. 남편이 한 마리 잡았는데 힘이 장사인 고기와 씨름하다가 놓쳤다. 다음에 잡은 고기는 크지않아서 건져올렸다. 수잔이 뚝딱뚝딱 손질하더니 금방 튀긴다. 우리가 낚시하고 대게를 먹는 동안 데이비드는 사진찍느라 바쁘다. 선장님이 기막힌 곳에 배를 세워서 모두가 만족한다.

수잔이 바다표범 보라고 가르킴
수잔이 바다표범 보라고 가르킴

낚시하는 사람들은 낚시를 하고 대게먹는 사람들은 대게를 먹고 사진찍는 사람은 바다표범 찍느라 바쁘다.

바다표범과 물새들
바다표범과 물새들

바다표범은 무리 지어서 작은 섬위에 오글오글 모여있다. 한번씩 애무인지 싸우는건지 으르릉대다 또 잔다.

물놀이 중인 바다표범
물놀이 중인 바다표범

그러다 한 무리가 물에 들어가 자맥질을 하고 다시 기어오른다. 30분 정도를 서있는데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난파선
난파선

배는 다시 달려서 난파선에 도착한다.

난파선 연결다리
난파선 연결다리

난파한지 오래된 배인지 육지와 연결되어 배라기보단 요새로 변해있다. 난파선안에는 사우나까지 만들어 놓았단다.

반겨주는 견공
반겨주는 견공

난파선으로 올라서자마자 나만한 개가 반기며 달려든다. 어찌나 힘이 센지 넘어질 뻔 했다. 다같이 폭포로 걸어갔다.

은광에서 흘러나온 폭포
은광에서 흘러나온 폭포

폭포는 은광에서 흘러나온 물이라 몸에 좋단다. 먹어도 좋고 씻어도 좋단다. 사람들이 큰 병을 가져와서 떠간다. 미리 알았으면 빈 병을 하나 들고올 걸 그랬다.

배로 돌아오니 수잔이 떡 벌어지게 상을 차려준다. 샐러드와 감자 갓 잡아 만든 생선튀김 연어크로켓 등등을 내온다. 하루종일 한 것도 없이 엄청 먹는다. 먹는 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투어다. 러시안베이에서의 투어를 마치고 출발점인 아바차베이로 돌아오는 길은 멀다. 갈때는 잠들어서 지루한 줄 몰랐는데 돌아오는 길은 지루하다. 수잔이 팬케Ÿ揚구워준다. 비디오도 틀어주는데 캄차카의 겨울투어를 보여준다. 개 썰매 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4계절을 다봐야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을 듯 싶다. 드디어 페트로파블로브스크에 도착했다.

선착장 도착
선착장 도착

11시간이상 배를 탔다. 잘 먹고 많이 보고 즐거운 하루였다. 기대보다 훨씬 좋다. 수잔이 꼭 안아준다. 아이처럼 좋아하는 나를 바라보며 계속 흐뭇해하더니 말은 안 통해도 마음이 통했다. 다들 기분좋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마리아가 준 옷 덕분에 따뜻하게 하루를 보냈다. 하루종일 마리아의 마음을 느꼈다. 집에 오는 길에 마리아 강아지 줄 선물과 와인 한 병을 샀다. 마리아가 준 마음에 조금이라도 답하고 싶은데 캄차카에선 달리 방법이 없다. 캄차카의 마지막 밤에 비가 내린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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