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톡 공항
블라디보스톡 공항

남편과 나는 한번씩 문명을 떠나는 훈련을 한다.

지금의 인간이란 존재가 문명의 혜택을 뺏기는 경우 얼마나 생존이 가능할까? 인간이 만든 편리함이 언제까지 존재 가능할까?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은 문명의 혜택을 계속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도시의 편리함과 인류문명의 혜택은 바벨탑에 불과하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인간의 위대함을 뽐내기 위해 이룬 업적들이 지구의 하품이나 기침에 한낮 모래성이 되어 허물어지는 것을 많이 봤다. 그래서 자꾸 고개를 숙이게 된다. 3주간 도시의 안락함을 떠나 자연에 순응하는 여행을 했다. 그리고 돌아와 고급 호텔의 안락함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역시 인간이 만들어놓은 편리함이 좋다. 화려한 도시의 불빛이 좋고 엘리베이터타고 올라가서 누리는 호사가 좋다. 변기의 비데가 깔끔해서 좋고 자동으로 온도와 습도가 조절되니 좋다. 푹신한 침대가 좋고 침대에 누워서 조명과 방 온도를 조절하니 천국이 따로 없다.

이르쿠츠크
이르쿠츠크

도시의 빌딩숲에 익숙한 우리들이 어쩔수없이 자연으로 돌아가야할때 견딜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걱정이다. 당장 우리의 2세 3세들이 걱정이다. 문명이란 것이 끊임없이 발전해서 우리 후손들이 계속 더 편해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우리가 블라디보스톡에 머무는 동안 아시아 선수권대회가 열려서 한국 선수단일행을 시내에서 만났다. 블라디보스톡 부산주간까지 겹쳤다. 한국인을 시내에서 수시로 자주 만난다.

블라디보스톡은 지금이 성수기인 듯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텔은 썰렁하다. 스카이라운지도 썰렁하고 한식당도 한가롭다. 3층 연회실의 웨딩파티행사가 없으면 호텔이 음산하게 느껴질 정도다. 엘리베이터안에는 룸렌탈 문의광고까지 붙어 있다. 공항까지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더니 1700루블을 기사한테 주란다. 올 때는 1500루블 줬다고 했더니 호텔가격이라서 직원은 어쩔 수 없단다. 인터넷에서 읽은 정보로는 공항갈 때 호텔에서 불러준 택시 가격이 천루블이라 감동받았다는데 일년도 안되어서 가격이 터무니없어졌다.

차가 특별히 나은 것도 없다. 내가 일기를 쓸 때 자세한 가격을 쓰지않는 이유기도 하다. 자칫 거짓말쟁이가 되기 일쑤다. 인터넷상에서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정보 중 가장 못 믿을 정보가 가격 정보다. 계절이나 상황에 따라서 수시로 변할 수 있다. 투어내용이나 품질에 따라서도 몇 배씩 차이가 나는 것이 돈 문제다.

인천공항 도착
인천공항 도착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다시 새롭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공항이다. 우리나라만큼 편하고 좋은 나라는 세상에 드물다. 최신기술을 놀랍게 받아들이고 구현하는 나라다.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몇배나 잘사는 나라도 우리나라보다 편한 경우가 많지않다. 유럽의 경우만 해도 전통을 지키면서 지극히 보수적으로 첨단기술을 전통에 적응시킨다. 일부 신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전통과 현재를 잘 섞어서 살아가고 있다. 당장 현대문명의 편리함이 사라진다해도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을 듯 보인다.

입국장을 나오는데 소녀들이 와르르 몰려간다.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니 위너가 귀국한다고 마중나왔단다. 부모님 마중은 저리 열광적으로 할까싶은걸 보니 나도 어쩔수없는 쉰세대다.

집으로 돌아오니 거실에어컨이 문제가 생겼다. 침실에어컨으로 집 전체를 버틸려니 힘겹다. 시원한 곳에서 지내다가 폭염주의보속으로 오니 지옥이 따로 없다. 서비스센터에 전화하니 하루종일 통화조차 안된다. 겨우 연결된 에어컨 서비스기사님이 긴급조치를 전화로 처방해주신다. 바쁘긴 바쁜 모양이다. 고층건물에 살면서 에어컨이나 자동시스템이 망가지면 난감하다. 서울의 고층건물 밀집지역은 지역적으로 문제가 생길 시에 대혼란일 듯 싶다. 자동화와 최신화로 내달리고 있는 우리의 현주소가 걱정이다. 작은 나사 하나가 틀어져서 대혼란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서울 강남의 사람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낸다면 적응하고 살수 있을까?

Lava River
Lava River

수시로 자연적응훈련을 하는 나조차도 돌아가고 싶지않다. 에어컨 틀고 소파에서 리모컨 돌리고 있는 내 모습이 나의 현주소다. 불편해지는 것은 한번씩의 나들이로 만족하고 싶다. 러시아의 자연 속에서 지낸 3주간의 사진을 돌아보며 춥고 배고픈 시간은 추억이 되었다. 역시 남은 건 사진이다. 경치는 좋지만 불편함과 모기 소굴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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