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안중찬의 書三讀]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 바다, 여자, 술 그리고 노동!

발행일시 : 2017-09-29 00:00
[안중찬의 書三讀]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 바다, 여자, 술 그리고 노동!

이것은 쫄딱 망한 사업에 대한 이야기지만 결코 슬프지 않은 실패담이다. 그릇으로 바닷물을 떠올 수는 있지만 그 물이 바다는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준 지중해식 그리움이다. 마음 가는대로 행동하는 영혼에 대한 이야기지만 무책임하지 않았던 자유인에 의한 에게식 만남과 사랑의 철학이다. 어떤 독자는 마초들의 거드름이 불편할 수도 있겠으나 100년 전 지구 반대쪽에서 불쌍한 여자들을 그나마 감싸줬던 영감탱이의 이야기다. 책과 명상에 빠진 형이상학적인 젊은이가 여자와 노동에 해탈한 형이하학적 늙은이를 통해 속박의 줄을 끊어가는 지혜의 기록이다.

아테네 인접 항구도시 피레에프스(Πειραιάς)에서 크레타(Κρήτη)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 이방인이 있다. 우정의 끝자락에서 자신을 책벌레라 조롱하며 떠난 친구를 추억한다. 볼셰비키혁명으로부터 처형당할 위기에 놓인 15만 그리스인들을 구하기 위해 떠난 그의 친구는 화자의 또 다른 분신이다. 고뇌가 깊어진 그는 어떤 깨달음을 얻고자 노동자들 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산다는 건 감옥살이와 같고, 그것도 종신형이라는 민초들의 고단함과 푸념의 토로가 넘치는 지저분한 술집에서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머리 가득 잉크를 뒤집어 쓴 지식인이 지중해 한복판 섬마을에 들어가 탄광의 인부들과 어울리며 그 곳 사람들의 텃새를 잘 견디고 적응할 수 있을까? 생각이 복잡한 순간 왁자지껄 산만한 인파 속에서 납작한 보따리를 든 키 크고 깡마른 노인이 다가온다.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거침없이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알렉시스 조르바였다. 아무 때고 연주할 수 있는 산투르 하나를 들고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당당하고 매력적인 사내는 자신을 크레타로 데려가 주지 않겠느냐며 럼주를 시킨다.

[안중찬의 書三讀]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 바다, 여자, 술 그리고 노동!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오직 조르바만 믿지. 조르바가 딴 것들보다 나아서가 아니오. 나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요. 조르바 역시 딴 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그러나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내가 아는 것 중에서 아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조르바뿐이기 때문이오. 나머지는 모조리 허깨비들이오. 나는 이 눈으로 보고 이 귀로 듣고 이 내장으로 삭여 내어요. 나머지야 몽땅 허깨비지. 내가 죽으면 만사가 죽는 거요. 조르바가 죽으면 세계 전부가 나락으로 떨어질 게요. (중략) 어쩔 수 없어요, 두목, 사실이 그러니까. 내가 콩을 먹으면 콩을 말해요. 내가 조르바니까 조르바 같이 말하는 거요.” - 82쪽


서른다섯의 늙은 젊은이는 예순여섯 젊은 노인을 고용한다. 끊임없이 생각하는 골치 아픈 오그레가 두려움 없이 행동하는 조르바에게 반했기 때문이다. 단테의 신곡을 길동무 삼아 자기 안의 욕망과 싸워 나가는 붓다적 윤리에 베르그송과 니체의 비극적 철학으로 점철된 피곤한 젊은 두목이 미소 짓는다. 술, 춤, 여자, 노래 등에 거침이 없는 노인은 단순명료한 열정으로 강한 흡인력을 보였다.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의 노인이 고뇌하는 젊은 사업가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이다.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사는 거나, 금방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사는 것이 똑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젊은이에게 조르바라는 정체불명의 천사가 찾아온 것이다.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전쟁과 노동,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었다. 원시적인 배짱으로 잔뜩 부풀어 있는 가슴과 세상 복잡한 문제들의 핵심을 단칼에 자르듯이 풀어내고, 엉킨 실타래들도 거뜬하게 풀어낼 것 같았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두 발로 대지를 밟고 숨죽이며 목표를 겨냥하는 조르바는 그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방황하던 젊은이는 거침없는 마케도니아 늙은이의 타당성 있는 자유에 매료된다. “당신의 그 많은 책 쌓아 놓고 불이나 싸질러 버리시구랴, 그러면 알아요? 혹 인간이 될지?”라고 도발하는 조르바가 밉지 않다. 아프리카 열풍 리바스가 불어 감싸는 해안에서 젊은이는 제 멋대로 살아가는 듯한 조르바의 법칙에서 유쾌함을 발견했고 행복했다. 바다, 여자, 술, 그리고 노동! 일과 술과 사랑에 자신을 던져 넣고, 하나님과 악마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젊음의 경전! 조르바라는 학교에 너무 늦게 입학한 것은 아닌지 억울할 정도였다.

신영복 선생에게 충격을 줬다는 목수 문도득이 생각났다. 감옥에서 만난 그 노인은 땅바닥에 주춧돌부터 그리기 시작하여 맨 나중에 지붕을 그렸던 것이다. 일하는 사람의 집 그림은 집 짓는 순서와 같았고, 책과 교실에서 생각을 키워온 우리들은 무심하게도 정반대였던 것이다. 세상에 지붕부터 지을 수 있는 집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비현실적인 학습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을 반성하게 된 이야기다. 책으로 세상을 배운 젊은이가 발로 세상을 배운 최고의 스승을 만난 충격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Carpe Diem! 머리로만 생각하는 보스에게 가슴으로 생각할 것을 주문하며, 게으른 일군들을 적절하게 몰아 부치고, 한 눈 팔지 않고 일에 집중하는 조르바도 항상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광산에 필요한 부품을 사러 칸디아(Ηράκλειο)에 나갔다가 어린 매춘부 롤라를 만나 공금을 몽땅 유흥비로 탕진했을 때는 당혹스러웠지만 결코 둘러대지 않는다. 주저리주저리 그 여자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으로 정면 돌파하는 모습에는 헛웃음이 나오는 묘한 설득력이 있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영원한 리듬에 충실할 수 있도록······

[안중찬의 書三讀]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 바다, 여자, 술 그리고 노동!

“여자란 지갑을 보면 돌아 버립니다. 착 달라붙어 자유고 뭐고, 에라 모르겠다, 모조리 남자에게 주어 버립니다. 왜? 마음 한구석에서 지갑이 반짝거리니까요. 그러다가 정신이 돌아오면······. 에이, 이 따위 이야기는 집어치웁시다. (중략) 이제 케이블도 구했으니 빨리 수도원으로 올라가 돼지 새끼들에게 땅문서에 서명이나 하게 합시다. 우리 계획을 알고 딴마음 처먹기 전에······.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두목, 시간이 없어요. 잘했느니, 못했느니 따지고 앉아 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됩니다. 착수해야 해요. 긁어 들여야지요. 써버린 만큼 배에다 퍼 실어야 한다는 겁니다. 칸디아 여행으로 돈이 작신 부수어졌어요. 그 썩을 년이······. ” - 258쪽


욕망에 충실한 바람에 까먹은 돈을 보충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며 세상의 일반적인 윤리의식을 넘어서는 높은 자존감의 조르바다. 그가 젊었을 때, 세레나데를 기다리던 팔순의 할머니를 놀려 먹다가 그녀의 눈물을 통해 여자를 깨우쳤다는 고백도 애절하다. 동네 처녀만큼이나 사랑받고 싶었던 할머니를 무심하게 조롱했던 젊은이는 여자에게 낫지 않는 상처가 있다는 것을 깨우치고 세상 모든 여성을 사랑으로 구원하는 바람둥이로 거듭난 것이다. 슬픈 전설이 있는 ‘우리 젊은 아가씨의 무화과나무’의 마을에서 조르바의 환희가 싹튼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조르바가 여자를 호칭하는 방식이나, 펑퍼짐한 과부의 엉덩이를 수시로 탐하는 것에 대해 21세기의 페미니스트들은 분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18세기 중반에 태어난 노인은 그 시대의 일반적인 마초들을 초월하는 여성배려자다. 마을 사람들이 경멸하는 안짱다리 이방인 오르탕스 부인을 존중하는 태도는 경이롭다. “오, 나의 부블리나!”처럼 그리스 독립전쟁의 여걸의 이름으로 숭배하며, 지켜보는 젊은이가 ‘늙은 사이렌’이라 부를 만큼 최고의 여자로 만들어 내는 저력이 있다. 조르바는 결국 오르탕스의 소원대로 결혼하고 죽을 때까지 사랑해준다.

갈탄광을 전세 내어준 마을 장로 마브란도니의 아들 파블리가 오렌지나무집 과부를 짝사랑하다 자살한다. 그의 청혼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과부를 조리돌림하는 마을 남자들에 맞서 그녀를 보호하는 오그레의 모습은 금욕적 수행자다운 용기였다. 롤라에 허우적거리던 스승이 부재했던 시절에 위험을 무릅쓴 그 행동은 조르바학의 모범생다웠다.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과부의 환심을 사는 바람에 오렌지 나무 아래에서 마주치며 시작된 뜨거움으로 불이 붙었고, 하얀 쾌락의 밤으로 그녀와 함께 후끈 달아올랐다.

[안중찬의 書三讀]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 바다, 여자, 술 그리고 노동!

“내 존재의 심연에서 전날 밤에 느낀 즐거움이 솟아올라 필경은 흙으로 빚어졌을 내 육체라는 대지에 물을 대어 주는 것 같았다. 누워서 눈을 감고 있노라면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눈을 뜨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영혼이 곧 육체, 다소 변화무쌍하고 투명하고 더 자유롭긴 하지만 역시 육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소 과장되어 있고 긴 여행으로 지치고 물려받은 짐에 짓눌려 있기는 하나 육체 또한 영혼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얼핏 그림자가 내 앞을 지나치는 것 같아 눈을 떴다. 조르바가 문께에 서서 느긋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일어나지 말아요, 일어나지 말아요, 이 엉큼쟁이······.」”-343쪽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지혜로운 조르바와 묘한 시선으로 부담을 주는 마을 바보 미미코, 기존의 철학들을 하나씩 망치로 깨부수는 니체에 심취했던 젊은이에게 진정한 현장실습이 시작된 걸까? 흰뼈로 만든 십자가를 품고 초라하게 죽어가는 오르탕스와 구슬픈 만가를 부르면서도 집안 살림을 훔쳐가는 동네 여자들의 부조리함, 무화과 나무에 앉은 까마귀들을 쫓아내며 부인의 죽음에 오열하는 조르바는 숙연했다. 미모의 과부를 끝내 공개처형하는 수준의 마을에서 두 사람은 무기력했고, 집단적 광기를 견디며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벅찬 일이었다.

황혼의 무법자는 타락한 종교의 상징인 수도원을 태워버리도록 땡중 자하리아를 부추긴다. 그에게 법이란 별다른 의미가 없으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망설이지 않았다. 종이로 만들어진 젊은이의 언어와 달리, 조르바는 의미가 풍부하고 묵직한 흙냄새가 나는 말들을 주로 내뱉었다. 카잔차키스가 젊은 날의 경험을 정리하여 황혼에 완성시킨 이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작가 자신의 성장소설로 보아도 무방하다. 안소니 퀸 주연의 영화는 조르바를 더욱 널리 알렸다. 두 사람이 함께 춤을 추며 자유를 만끽하는 마지막 장면은 특히 압권이다.

“종이와 잉크는 지옥으로나 보내 버려! 상품, 이익 좋아하시네. 광산, 인부, 수도원 좋아하시네. 이것 봐요. 당신이 춤을 배우고 내 말을 배우면 우리가 서로 나누지 못할 이야기가 어디 있겠소!” 섬에 처음 들어왔을 때, 넋이 나간 사람처럼 행복한 표정으로 함께 춤을 추자던 노인의 손을 뿌리치며 거부하던 그 체면을 조절 못하던 추억과 완전히 대비되는 소설 속 명장면이기도 하다. 조르바에게 엄숙하고 끈기 있게 춤을 배우는 젊은이는 차츰 대담하게 손뼉을 치면서 맨발로 자갈밭을 짓이긴다. 집착을 버리고 무소유가 승리하는 환희의 순간이다.

[안중찬의 書三讀]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 바다, 여자, 술 그리고 노동!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돈, 사람, 고가선, 수레를 모두 잃었다. 우리는 조그만 항구를 만들었지만 수출할 물건이 없었다. 깡그리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그렇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엄청나게 복잡한 필연의 미궁에 들어 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놀고 있는 걸 발견한 것이었다. 나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놀았다.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그 인내와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보이지 않는 강력한 적(혹자는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혹자는 악마라고 부르는)이 우리를 쳐부수려고 달려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부서지지 않았다.” - 417쪽


사업이 실패하고 빈털터리가 되지만 낙담 없이 버틸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에서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한 첫 번째 인물로 대학을 졸업하고 그리스 본토 순례를 떠나며 생각했던 고향의 전설 호메로스를 꼽았다. 고대의 전설이 끝난 지점에서 다시 시작되는 장편의 철학시 ‘오디세이아’는 그렇게 집필되었다. 터키와의 전쟁에서 그리스가 참패했을 때 민족주의를 버리고, 공산주의적 행동주의와 불교적인 체념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은 위대한 희곡 ‘붓다’를 창조했다.

조국 그리스 문학의 위상을 한참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린 이 위대한 작가는 호메로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채워준 붓다, 베르그송, 니체, 조르바를 통해 종교를 뛰어 넘는 세계관을 보여줬다. 오랜 영혼의 편력과 투쟁으로 완성된 여러 작품들을 통해 그리스도에 대한 매우 독창적인 해석을 표출한 것은 그리스 정교회와 교황청의 노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거듭된 노벨문학상 수상에 실패하고 독일에서 생을 마감했을 때 슈바이처의 배웅을 받으며 고국의 수도 아테네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리스정교회는 받아주지 않았다.

카잔차키스는 결국 본토에 입성하지 못하고 이라클리온에서 영면했다. 이제 우리는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라클리온 국제공항’을 통해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 크레타로 들어갈 수 있다. 새로운 세기를 맞아 현대화되고 확장된 공항 이름이 위대한 작가에 대한 헌사로 이어진 것이다. 에게해에 인접한 그 도시에 평화로운 언덕이 있고, 그곳 거대한 나무 십자가 아래 드러누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에는 이렇게 써져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조르바가 떠난 뒤 옛 친구가 돌아왔다. ‘엉덩이 펑퍼짐한 아내와 눈살이 매운 새끼를 거느린 수천 명의 부지런한 그리스 지성인들을 데리고 마케도니아와 트라케로 돌아간다’는 엽서는 너무도 조르바적인 귀환이다. 재회한 두 친구는 모두 작가의 분신이다. 서른넷 카잔차키스가 펠로폰네소스에서 실존하는 ‘조르바’를 만나 함께 탄광사업을 했고, 6개월 만에 말아먹은 것은 실화다. 현실과 소설 속의 조르바 모두 수많은 엽서와 편지로 교유하지만 두 번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조르바는 많은 것들에 향수를 일으키는 이름이다. 바다, 여자, 술, 그리고 힘든 노동!

안중찬 ahn0312@gmail.com 주)교보피앤비 기획실장 / 장거리 출퇴근의 고단함을 전철과 버스 안에서 책 읽기로 극복하는 낙관적이고 사교적인 생활인이다. 컴퓨터그래픽과 프로그래밍 분야 11권의 저서와 더불어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으로 한 권의 책에서 텍스트, 필자, 독자 자신을 읽어내는 서삼독의 실천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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