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로버트 파우저의 공감만감(共感萬感)] 독일에서 본 ‘풀뿌리 통일’을 생각하며

발행일시 : 2017-10-18 00:20
[로버트 파우저의 공감만감(共感萬感)] 독일에서 본 ‘풀뿌리 통일’을 생각하며

지난 10월 2일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를 타고 드레스덴 시에 가서 오래된 건물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렀다. 주인이 관광 지도를 보면서 친절하게 도시의 볼거리를 설명해주었다. 게스트하우스 근처에서 1990년을 기념하는 축제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다음 날인 3일은 ‘독일 통일의 날’이라는 공휴일로 시내에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아 박물관을 관람하기 좋은 날이었다. 하루 종일 관광하느라 바빠 밤이 돼서야 독일 통일에 대해서 인터넷에 알아보면서 한국에 대한 생각이 많이 떠올랐다. 남는 인생에 한국의 통일을 과연 볼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드레스덴은 정말 아름다운 도시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끝에 폭격을 많이 받아 거의 모든 문화재가 큰 피해를 입었지만 구동독 정부와 현재 독일 정부의 지원을 받아 거의 다 복원이 되었다. 역사적 도심도 거의 다 복원이 되었지만,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인 건물들도 보였다. 드레스덴은 15세기부터 1867년까지 작센 주이라는 작은 왕국의 수도였기 때문에 궁궐, 성당, 그리고 문화 시설이 많다.

드레스덴에서 1994년부터 2005년까지 복원한 교회 <드레스덴에서 1994년부터 2005년까지 복원한 교회>

그런데 드레스덴은 오래된 문화적인 도시로만 상징되지는 않는다. 아름다운 거리를 걷다보면 1989년 민주화운동에 대한 안내판을 만나게 된다. “이 거리에서 민주화 시위가 있었다, 이 성당 앞에서 민주화 시위가 있었다”와 같은 식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가장 흥미롭게 봤던 것은 ‘우리는 시민이다(Wir sind das Volk)’라고 써진 당시의 민주화 운동의 구호였다.

드레스덴 성장 앞에 1989년 민주화 운동에 대한 안내판 <드레스덴 성장 앞에 1989년 민주화 운동에 대한 안내판>

드레스덴은 구동독에 세 번째 큰 도시인만큼 중요한 도시였다. 동독은 시민을 감시하기 위해서 국가보안부(Stasi)이라는 기관 주도로 비밀 감시원 제도를 운영했다. 시민이 서로 감시하고 보고 했는데 드레스덴에 중요한 사무실이 있었다. 이 사무실 밑에 구소련의 KGB의 시설도 있었다. 현대 러시아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이 1985년부터 1990년까지 드레스덴에서 활동했다. 현재 국가보안부의 건물과 소련의 지하 벙커가 전시와 자료관으로 변해 공개되어 있고 같은 건물에 옛 사무실은 주택으로 변해 일반인이 살고 있다.

드레스덴에 있는 구소련의 KGB 벙커 <드레스덴에 있는 구소련의 KGB 벙커>

드레스덴에서 한 시간 조금 넘는 거리에 1989년에 민주화 시위가 시작했던 라이프치히 시가 있다. 라이프치히에도 민주화 운동에 주요 장소를 안내판으로 표시하고 있다. 1989년에 첫 민주화 촛불 시위가 10월 9일이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촛불 축제’가 열린다. 당일 촛불 기념행사 이외 시내 곳곳에서 관련 행사가 열린다. 그리고 시내 한복판에 독일 분단의 역사, 구동독의 역사, 그리고 민주화 운동과 통일 과정을 다루는 박물관이 있다.

라이프치히 1989년 민주화 운동에 대한 안내판 <라이프치히 1989년 민주화 운동에 대한 안내판>
라이프치히의 1989년 민주화 운동 기념하는 '촛불 축제' 홍보물 <라이프치히의 1989년 민주화 운동 기념하는 '촛불 축제' 홍보물>

이처럼 드레스덴과 라이프치히는 당시 독재를 반대했던 용감한 사람들을 존경하며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고 있다. 독일은 유대인 학살을 포함해 제2차 세계 대전에 지은 많은 죄를 반성하고 후세에 가르치고 있듯이 구동독의 독재와 인권 침해에 대해서도 반성하고 후세에 가르치려고 하고 있다. 자기 나라의 흑역사를 피하고 미화하려고 하는 나라가 많은 가운데 독일의 냉철한 반성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구동독을 여행하면서 독일의 통일은 성공했음을 피부로 느꼈다. 언론은 당연히 동쪽과 서쪽의 경제적 격차에 대한 보도를 하지만 지역 간의 격차가 더 큰 선진국들도 많다. 젊은 인력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다른 선진국도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9월 말 총선에 극우 정당이 동쪽에서 표가 많이 나온 것은 이 지역의 소외에 대한 반발이라는 분석이 있는데 지역 소외에 대한 반발은 다른 선진국에도 쉽게 찾을 수 있다.

1990년에 통일되면서 구동독의 경제 기반이 서쪽과 경쟁하지 못해서 무너졌다. 그리고 건강을 위협할 정도의 공해와 환경 파괴가 심했다. 주택도 낡았고 시설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동쪽을 여행하면 서쪽과 거의 차이 느끼지 못할 만큼 시설들이 좋다. 라이프치히에서 에어비앤비를 통해 오래된 아파트에 숙박했는데, 부엌과 화장실이 다 새로 리모델링해서 서쪽과 차이가 없었다. 동쪽을 끌려 올리기 위해 막대한 투자가 필요했지만 결과가 좋았다.

라이프치히에서 리모델링한 구동독 시대에 지은 아파트 <라이프치히에서 리모델링한 구동독 시대에 지은 아파트>

여행하면서 또 다른 나라의 통일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나의 조국 미국이다. 미국은 1861년에 남부가 독립하려고 하다가 북부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아 전쟁이 시작했다. 1865년에 남부가 패하며 치열한 전쟁이 끝나고 미국은 다시 통일됐다. 그런데 남부의 독립을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세력이 남았고 해방이 된 흑인 노예를 다시 억압하기 시작했다. 이 억압은 거의 90년 동안 계속 되었고 1960년대 중반에 흑인 인권 운동의 영향으로 끝났다. 그런데 아쉽게도 8월 버지니아 대학교가 소재한 샬러츠빌 시에서 남부 장군의 동상을 지키려고 하는 시위에서 보았듯이 아직까지 남부에 대한 애착을 갖는 사람들이 있고 남아 있는 구조적 인종 차별이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이 독일처럼 과거에 대해 충분히 반성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현실이다.

시대가 달라서 독일과 미국의 통일을 비교하는 것은 한계가 있겠지만 한국의 통일은 좀 더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은 구동독이 붕괴하면서 평화를 향한 움직임이 가능했고, 그 시작은 드레스덴과 라이프치히 길거리에서 ‘우리는 시민이다’를 외쳤던 민주화 운동이었다. 반면에 미국은 남북 전쟁에서 남부가 패했지만 흑인 노예가 허용됐던 남부 사회에 대한 미련이 있었다. 쉽게 말하면 독일은 밑에서 시작된 자발적으로 통일이었다면 미국은 무력에 의한 통일이었다.

라이프치히 1989년 첫 민주화 시위의 장소를 기념하는 조각물 <라이프치히 1989년 첫 민주화 시위의 장소를 기념하는 조각물>

한국의 통일은 또 다른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질 테지만 독일과 미국을 비교했을 때 밑에서 부터의 민주화, 즉 ‘풀뿌리 통일’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통일이후에 망한 국가에 대한 애착이나 부활에 대한 기대가 없어 사회 통합이 훨씬 쉬울 것이다.

현재 북한의 핵무기 개발 때문에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하고 있는 가운데 전쟁을 피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가 북한의 민주화이다. 현재 불가능할 것 같이 보이지만 1980년대 말에 구동독의 민주화, 독일의 통일 그리고 소련의 붕괴를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지금이야 말로 길게 보고 남한에서 북한의 민주화를 촉진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신중하게 검토할 때가 왔다. 그 와중에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남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계속 발전시켜 가야 할 것이다.

로버트 파우저 robertjfouser@gmail.com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미시간대에서 일어일문학 학사 및 응용언어학 석사,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와 일본 교토대에서 영어와 영어교육을 가르쳤고, 일본 가고시마대에서 교양 한국어 과정을 개설해 가르쳤다. 한국 사회를 고찰하면서 한국어로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을 출간했다. 취미는 한옥과 오래된 동네 답사, 사진촬영으로 2012년 종로구 체부동에 ‘어락당(語樂堂, 말을 즐기는 집)’이라는 한옥을 짓기도 했으며, 2016년 교토에서 열린 ‘KG+’ 국제 사진전시회에 사진을 출품했다. 현재 미국에서 독립 학자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어로 ‘외국어 문화사’를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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