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이 IT혁명을 체감하기 시작한 것은 애플사의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면 아직 10년도 채 되지 않은 지난 2009년에 아이폰은 우리나라에 공식 출범했다. 물론 우리나라뿐만은 아니겠지만 당시 우리에게 데이터 소비 시장이 존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다른 나라보다 더 위축된 이유는 법으로 정해진 소위 '한국형 모바일 기술 플랫폼 위피(WIPI)를 의무적으로 탑재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 우리나라가 만든 자랑스러운 우리만의 모바일 플랫폼을 딱 깔고 그 위에 각종 서비스를 올리고 이용자가 사용하는데 왜 그게 시장을 만드는데 문제가 된단 말입니까."
"우리가 국내 시장은 작지만 이동통신 단말기 제조기술만큼은 세계 최고 아닙니까. 여기에 위피를 깔아 글로벌 표준으로 만들 노력을 해야 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아닙니까"

뭔가 반박하면 안될 것 같은 말이었다.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국가적 대표 상품을 만들어 내는데 당연히 노력하고 협력한다는 큰 원칙.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간과한 것이 있었다. 시장과 서비스는 고객의 선택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이다. 우리, 우리 경제, 그리고 산업이 걸어온 길은, 원칙에서 살짝 벗어나더라도 조금 더 빠른 지름길이면 더 좋았다. 문제는 원래 가야할 길을 모른채 지름길에서 지름길로만 가다 보면 대체 방향이 어느 쪽인지,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향했던 것이었는지 개념을 잊기도 한다. 결국 시장과 고객 그리고 상품과 서비스가 원칙에서 벗어나기 쉬워진다.

아이폰이 등장하기 전 까진 망 사업자인 통신사가 단말기에 무슨 서비스를 넣을까 골라 이 기능을 가진 단말기를 주문하여 선택했다. 단말기의 특징적 기능(feature)를 통신사가 주문한다고 해서 통상 '피처폰'이라 불렸다. 이같은 형태의 초기 데이터 시장은 'Walled garden'이라고 불리웠다. 오로지 통신 월 정액을 내기로 약속한 고객만이 단말기를 갖고, 주어진 메뉴 구조에 따라 얹어진 서비스만을 써야했다. 그리고 그 기반은 WIPI라는 플랫폼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선택은 없었다.
통신사가 정해준 업체들이, 통신사의 위피 규격에 따라, '절대 실수가 없는' 안정적인 서비스만을 공급했다. 당연히 고만고만한 상품들이 뻔한 메뉴구조안에 자리잡았다. 메뉴의 상단은 매출 보장, 메뉴가 밀리면 매출은 마이너스. 몇 안되는 서비스 제공업체들은 통신사의 메뉴 권력에 목숨을 걸었다. 명분상 메뉴 상단을 차지할 수 있는 근거는 '매출'이었다. 지금은 뜻이 좀 변했지만 속칭 '자뻑'이란 행위가 횡행했다. 상단 메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공급자 스스로가 자신들의 서비스를 돈을 주고 사는 형태였다. 그렇게 시장은 점점 기형화 되어갔다.

그러나 단조롭고 선택에 제한된 서비스 종류나 품질보다 더 큰 문제 문제는 요금이었다. 'Walled garden'시장에서는 이미 월 정액을 낸 사용자만을 대상으로 그들에게 '줄' 서비스를 마음대로 고르고 만들어 '피처폰'에 얹었다. 데이터 서비스만을 이용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면 그 서비스만을 쓸 수 없다. 한 달치 통화 요금을 우선 내야지만 그 다음에 추가 요금을 내고 데이터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어 있었다. 다운로드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사용되는 데이터의 금액은 일반 소비자 기준으로 깜짝 놀랄 만큼 예상치 못할 고액이었다. 지금보다 용량과 속도가 낮은 2G통신망에서 패킷 기준의 요금제를 적용했다. 꽤 오랫동안 문자나 텍스트는 패킷당 6.5원, 동영상은 1.5원 정도를 부과했다. 이게 어느 정도의 가격이었냐면 평범한 뮤직비디오 한편 보는데 만원 정도가 들었던 거다. 그래서 스트리밍 기반의 서비스는 일단 서비스 구조의 추가적인 상상조차 크게 제한되었다.

서비스를 담당하는 통신사 직원들조차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실수로' 데이터 연결 버튼을 누르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를 준다고 했다. 시장에 내놓을 물건을 정작 만드는 쪽에서 사용하면 큰일이라고 손사래를 친 셈이다. 공급자가 수요자가 어떻게 하면 사용하지 않을지를 일부러 찾아 만들어 놓은 듯 코미디 같은 일이었다.

써야 되는 소비자가 쓸 상황이 아닌 환경에서 쓸 이유가 그다지 많은 서비스들이 나왔는데 종류도 빈약하다. 이 경우에 서비스와 그 콘텐츠는 중독성 혹은 도박성같은 음지의 이유가 앞서 나오게 된다. 따라서 10년전 그 시장에서는 비즈니스로 엮을 만한 것, 즉 시장의 수요가 있는 것은 게임과 성인물 밖에 없었다. 성인물과 게임서비스에 사람들이 몰리자 게임은 금지되었다. 건전한 모바일 서비스와 콘텐츠 문화를 저해한다는 이유와 함께 강한 중독성으로 인해 다른 서비스 활성화를 방해한다는 이유였다. 서비스 활성화의 본질이 구현되고 있었던 상황이라면 그러한 이유의 금지 정책이 빛을 보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순서가 많이 어긋났다. 서비스 공급자가 누릴 수 있는 사업 환경과, 누려야만 하는 정책 현실은 시야에 없었고, 무엇보다도 사용자의 니즈를 파악하지 못한 본질적 요인부터 손을 대야 했다. 결과로 드러난 현상만으로 문제점을 해결하려 한 미숙함이 더 드러났다. 이 모든 상황이 정책의 엄숙한 계몽주의의 사례로 인용될 수 있는 면구스러움은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아이폰의 등장은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아이폰은 모든 상황을 'one shot one kill'로 정리했다. 시장의 본질로 게임의 룰을 정리한 것이다.

애플은 영리했다. 애플 역시 시장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디자인 하려했던 통신사와 큰 맥락에서 보면 크게 틀리지 않았다. 같은 비즈니스 또 다른 walled garden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애플이 통신사와 달랐던 점은 크게보면 단 하나의 키워드, '니즈'에 충실했다는 점이었다.

제조사였던 애플은 자신들이 직접 손댈 수 없는 2G 통신환경의 개선은 재빨리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손댈 수 있는 단말기만큼은 고객이 원하는 바를 바로 구현해 적용하는데 집중했다. 지금이야 너무나 당연하지만 당시로서는 콜럼버스의 달걀 같았던 어느 공간이나 닿는 와이파이를 무료 데이타서비스 구조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체인 리액션에 성공했다. 요금 부담을 안 느끼는 이용자는 이것 저것 서비스를 비판하며 사용하기 시작했다. 발생조차 하지 않던 고객의 니즈가 이곳 저곳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이 고객에는 쓰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서비스를 만들어 제공하는 사람도 포함되어있었다. 이 니즈를 빨리 실현하여 시장에 내놓으려는 서비스 공급자의 니즈는 애플의 기술이 제공했다. 빠른 속도, 좋은 성능, 쉬운 제작이 가능한 기술 플랫폼.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판매되는 마켓 플랫폼이 준비되어 있었다. 애플은 자신들의 기술 표준만 받아들인다면 누구든 서비스를 공급하고 수요에 다가갈 수 있게 하는 시장 구조로 확 바꿨다.

시장은 관계와 사람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시장은 모른다고 보아야 한다. 사람과 관계 사이에서 니즈의 발생은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므로 상상 속의 니즈란 상상 속의 자유 같은 것이다. 즉 신기루이다. 신기루도 중요하다. 기술이라는 재료가 발전할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동기가 니즈는 아니다. 니즈란 신기루 속이 아니라 쓰는 사람의 자유로운 경험에 기반해야한다. 써본 경험이 'UX'다.

쓰는 사람, 써 본 사람의 경험에 기반해서 그 다음 공급하는 사람들의 니즈가 발생한다. 공급자의 니즈도 맞춰져야 한다. 여기에 기술과 정책 그리고 환경이 재료가 되어 사업의 전략이 나온다. 누군가의 손이 필요하다면 결과적 부작용을 최소화 하기 위한 조치들이어야 할 뿐이다. 발생부터 누군가의 설계대로 진행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시장이 아니다. 시장의 시작과 설계자는 너무나 당연하게 고객의 니즈여야 했다. 모든 서비스를 독점 제공하려 했던 통신사의 의지가 사명감이었는지 욕심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애플은 이것이야 말로 시장의 패착임을 증명해낸 것이다.

사실 10년전의 아이폰은 어찌보면 이러한 당연한 니즈가 상당기간 충족되지 못했던 이용자들의 불만 에너지에 탄력을 받은 가장 큰 수혜자일지도 모른다. 기본적인 니즈를 충족 받지 못하는 이용자들은 추가적인 니즈까지는 요구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폰은 그 최소 임계 지점을 아주 잘 건드린 영리한 사업자였다. 만일 그때의 세상이 지금 만큼 스마트 했다면 그 정도의 영리함으로 만족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 세상이 더 스마트해졌다. 혁명이라는 단어가 일상화 될 만큼 IT의 근간이 되는 기반 기술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무서운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은, 기술이 가져다 줄 상상 속의 세계는 고객의 니즈가 아니다. 인공지능이, IoT가, 바이오테크놀로지, 첨단 교통수단 등등 각자의 영역에서 무섭게 발전한들, 니즈는 Lab이나 테스트베드가 아니라 시장에서 찾아진다.

니즈는 최신 기술로만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기존의 수준에 몇 가지 필요한 새로운 기술로 이루어 진다. 사실, 모두 알고있다. 그런데 기술 신기루로 동기부여 받은 사람들은 전부 새로운 것으로 완전히 멋진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 한다. 결국 우리는 지금도 그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다음 세대의 시장을 또 Lab이나 테스트베드에서 정의하려 하고 하기 때문이다.

포화상태에 이른 특정 서비스가 비즈니스를 더 이상 확대하지 못해 고민이라면, 이의 해결은 새로운 기술 능력에 힌트가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서비스의 불만이 무엇인지, 이를 해결하기위해 어떤 기술을 얼만큼/어떻게 적용해 실제 니즈를 맞추어 나갈 것인지를 보아야 한다. 그것은 인공지능 만으로도, IoT만으로도, 빅데이타 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이 니즈는 사람의 관계와 시장의 본질을 먼저 파악하고 현존하는 서비스를 개선해 나가는 와중에 발견될 것이다.

결국은 첨단 기술 간의 협력적 소통이 물꼬를 트고, 기존서비스와 신규 기술간의 협력에서 발견하는 시장의 니즈에 최우선으로 주목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의 초기 데이터 시장에서 아이폰의 탄생배경으로부터 알 수 있는 귀한 10년 전의 예를 보면서도 그것이 주는 교훈을 완전히 체화하지 못한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노수린 suerynnroh@gmail.com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 언론홍보 석사, MBN 기자, KTF 해외마케팅과 플랫폼 기획팀장을 거쳐, IoT스타트업 운영과 컨설팅 및 교육 강의를 해왔다. 현재 한림대 사회학과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IT는 사람의 행복과 가치추구를 위해 서비스와 콘텐츠로 관계를 연결하는 장치라 생각하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용한 오픈 IT를 기반으로 사용자UX가 주권처럼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며 많은 이들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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