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만 하던 사고가 내게 일어났다. 아침부터 허둥지둥 종합선물 받은 기분이다. 아침 먹고 호텔 ATM에서 돈을 찾으려는데 갑자기 기계가 서면서 카드를 먹어버렸다. 리셉션직원이 여기저기 전화를 해봐도 방법이 없다. 일요일이라 기계담당직원들이 아무도 와줄 수가 없단다. 달랏 숙소 주소를 알려주고 방으로 돌아오는데 카메라가 손에 없다. 리셉션에도 없고 ATM근처에도 없다. 남편주머니에 있다. 멘붕이란 것이 이런거인듯 싶다. 예약한 렌트카가 왔다. 생각보다 훌륭하다. 호치민소재 한국인 렌트카업체에 예약하길 잘했다. 10시간 백킬로가 기본이고 넘길 경우 오버차지를 내면 된단다. 택시타는것보단 편하고 신경 쓸 일 없을듯하다. 순하게 생긴 기사님 인상이 좋다. 이름이 토앙이라 한다.

렌터카 타고 껀저로
렌터카 타고 껀저로

껀저섬으로 출발했다. 호치민은 4번째 오는건데 첨 가보는 곳이다. 정글의 법칙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단다. 최근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인지 인터넷에서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바지선 타고 도강
바지선 타고 도강

호치민시내를 벗어나 한참 달려 선착장에 도착했다. 내려서 구경하려고 했더니 토앙이 앉아있으란다. 얼마가지않아 도착했다. 내려서 구경하기엔 짧은 시간이다. 껀저는 메콩델타 하구에 오랜 세월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진 섬인 듯 하다. 습지답게 작은 웅덩이와 연못들이 계속 이어진다.

원숭이섬의 원숭이들
원숭이섬의 원숭이들

수없이 많은 개천과 강을 건너서 원숭이섬에 도착했다.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니 원숭이들이 우리를 반긴다. 어린 원숭이가 누군가로부터 담배를 훔쳐서 까고 있다. 선글라스나 모바일폰 조심하라고 계속 방송을 한다.

합승해서 맹글로브투어 중
합승해서 맹글로브투어 중

맹글로브 카누투어를 하려고 보니 모터보트밖에 없다. 사진을 보니 카누는 직접 노를 저어야한단다. 모터보트에 외국인은 6명이 탈수 있다는데 우리는 둘이다. 매표소앞에서 직원에게 물어보고 있는데 귀엽게 생긴 아가씨가 와서 말을 건다. 3명이라고 합승하자고 한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아버지와 두 딸과 함께 탔다.

모터보트가 속 시원하게 맹글로브숲안을 달린다. 물살을 가르고 달리더니 맹글로브숲속 귀퉁이에 세워준다. 오두막집들이 사이사이 보인다.

전쟁박물관에 도착
전쟁박물관에 도착

나무로 만든 길을 따라 생생한 전쟁박물관이 펼쳐진다.

정글 속에서 생존하던 전쟁 당시의 모습을 볼수있다. 나무다리길은 낭만적인데 내용은 슬프기 짝이 없다. 25분정도 구경하고 다시 모터보트에 타고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베트남가족이 우리 여행의 무사안녕을 빌어준다. 영어 잘하는 큰딸 덕분에 맹글로브 투어를 제대로 했다.

기사는 사라지고 원숭이들만
기사는 사라지고 원숭이들만

차로 돌아오니 차는 있는데 토앙아저씨가 없다. 전화하니 불통지역에 계신지 통화가 안된다. 담당직원에게 전화하니 연락해주겠다는데 마찬가지 상황이다. 느긋하게 맘먹고 점심이나 먹자고 레스토랑으로 갔다. 연락을 시도한지 50분만에 나타나서 우리를 찾아 헤맸다고 한다. 만날 시간약속을 안한 내 탓도 있으니 할말이 없다. 거기다 순하디 순한 얼굴로 웃으니 화를 낼 수가 없다. 같이 점심 먹자고 했더니 이미 먹었단다. 점심 먹고 나가니 레스토랑입구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껀저 온 김에 바닷가구경이나 하자고 했다.

멀리 붕타우가 보인다
멀리 붕타우가 보인다

붕타우가 마주보이는 해변에 데려다준다.

해먹이 늘어진 노천식당들
해먹이 늘어진 노천식당들

방파제 위를 걷고 노천식당이 줄지어 있는 해변산책을 했다. 노천식당들은 간이 의자와 해먹을 준비하고 손님들을 맞는다. 모닥불에 굽는 꼬치가 맛있어 보인다. 길거리음식에 거부감 있는 남편이 고개를 젖는다. 포기하고 선창으로 갔다. 시장 구경도 하고 다시 차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반짜잉가게를 만났다. 한 접시 사먹었다. 남편이 찜찜해하면서 받아먹는다. 다시 호치민으로 돌아왔다.

사이공스퀘어
사이공스퀘어

사이공스퀘어에 내리고 토앙과는 호텔에서 6시에 보자고 했다. 카드도 다시 찾아보고 저녁도 호텔근처에서 먹는편이 낫다. 이젠 토앙하고는 말은 안 통해도 뜻은 통한다. 사이공스퀘어는 유명한 짝퉁시장이다.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사람들 열기가 동남아열기보다 뜨겁다. 우리는 살 것이 없어서 화장실만 이용하고 나왔다. 안목이 없다보니 복잡한 시장에서는 고를 수가 없다.

대성당
대성당

걸어서 대성당으로 갔다. 어제 불 꺼진 밤 풍경만 봐서 아쉽다. 미사중인지 문은 열려있는데 관광객은 입장이 안된다. 5시에 오라는데 시간이 없다. 대성당은 여러 번 왔는데 내부는 한번도 보질 못했다.

우체국
우체국

우체국은 열려있어서 들어갈수가 있다. 여전히 아름다운 우체국이다.

서울시계아래
서울시계아래

서울시계아래 아가씨 둘이서 사진을 찍고있다. 나도 똑같이 폼 잡고 찍었다. 근처 맛집 검색을 하니 스테이크하우스와 아시안레스토랑이 괜찮아 보인다. 남편한테 물어보니 당연히 스테이크하우스라 한다.

스테이크하우스
스테이크하우스

베트남에서 아르헨티나식 스테이크를 먹겠단다. 레스토랑은 기대이상이다. 분위기도 좋고 맛도 좋다. 구운 통마늘이 맛있다. 남편은 홈메이드 버거를 시키고 나는 아스파라거스 듬뿍 든 파스타를 시켰다. 스테이크먹기에는 시간이 애매하다.

호텔로 가서 카드에 대해 물어보니 내일이나 꺼낼 수 있단다. 자주 생기는 일이냐고 물으니 자주는 아니고 몇 번 생긴 일이란다. 내잘못이란다. 갑자기 화면이 베트남말로 바뀌고 내가 베트남말을 모르는 것이 잘못이라면 내 잘못 맞다. 하여간 카드를 수거하면 잘 보관해달라고 했다. 우편으로는 신용카드를 보낼수가 없단다. 고민스럽다. 렌트카사무실에 전화해서 주차비와 입장료 등을 기사가 냈는데 얼마냐고 물었더니 입장료는 3만동이고 기사수고료등등 50불을 내란다. 껀저 바닷가까지 갔더니 기본거리를 오버한 듯 하다. 처음 예상하고는 달라서 살짝 당황스러운데 거리를 계산해보니 이해는 된다. 약간 바가지쓰는 듯싶긴 한데 기분 좋게 넘기기로 했다. 기사수고료는 선불로 이미 냈는데 또 달라고 하니 황당스럽긴 한데 토앙이 하루종일 성의를 다해줘서 주고싶긴 하다. 제대로 전해주면 고마울 일이다.

공항에서 짐을 내리고 50불과 10만동을 줬다. 토앙이 50불은 사무실에 주는거임을 몸짓으로 확인한다. 그럴것같아서 10만동을 따로 더 준거다. 50불에 포함되었다는 토앙의 수고료는 내가 확인하기 어려운 일이다. 토앙 입이 찢어진다. 내 마음도 한결 가볍다. 돈을 벌기위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선물은 돈이다. 예전에는 팁 문화에 거부감이 있었는데 여행을 거듭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한국인들이 세상을 다니면서 뿌려놓은 팁 덕분에 항상 환영받는다. 처음에는 현지물가를 흐려놓는것같아 싫었는데 이젠 마음을 바꿔서 편하다. 어차피 돈 벌겠다는 사람에게 내가 돈 이외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서비스 받고 행복한 만큼 현지사정에 맞게 팁을 지불하기로 했다.

달랏 도착
달랏 도착

비행기는 날아서 드디어 달랏에 도착했다. 오래전부터 오고 싶던 달랏이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공기가 다르다. 자켓을 꺼내 입었다. 서늘한 산동네공기가 상쾌하다. 짐을 찾고 나오니 지인이 마중을 나왔다. 베트남청년까지 함께 있어서 든든하다. 컴컴한 길을 한참 달리고 호숫가 시내를 지나 예약한 리조트에 도착했다 꿈에 그리던 리조트다. 달랏에 오기로 결정하자마자 예약한 숙소다. 프랑스식민지시절 별장을 개조해서 만든 리조트다. 체크인 하는동안 따뜻한 생강차를 내어온다. 싸늘한 밤공기에 딱 기분좋다. 매니저가 프라이빗체크인을 마치고 버기카로 방에 데려다준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콜로니얼시절의 느낌이 확 와 닿는다.

욕실을 가운데 두고 거실과 침실이 분리
욕실을 가운데 두고 거실과 침실이 분리

거실과 침실사이 욕실이 있는 3방콤보구조다.

실링팬 스위치와 전등스위치
실링팬 스위치와 전등스위치

벽에 붙은 스위치들이 세월을 말해준다.

입구쪽 거실
입구쪽 거실

벽난로가 필요하면 언제던지 말하라한다. 당장 불피우고 싶은데 남편이 말린다. 오늘은 전기히터로 자고 내일부터 나무장작을 떼라고 한다. 시간이 늦어서 부산스러운것이 싫단다. 매니저가 너무 친절하고 자상하게 설명해줘서 고맙다. 팁을 줘도 되냐고 물으니 사양한다. 짐을 들고 온 벨보이도 팁을 사양한다. 돈으로 지불하지않아도 되는 대접을 받으니 왠지 내 집에 온 기분이 든다. 오늘부터 5박6일동안 콜로니얼시절의 프랑스귀족이 되어볼 참이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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