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스타필드 내 텐바이텐 매장에 설치된 설렘자판기. 사진=‘책 it out’ 제공
고양스타필드 내 텐바이텐 매장에 설치된 설렘자판기. 사진=‘책 it out’ 제공

대학생들의 기특하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주목을 받고 있다. 대학생 비영리단체인 ‘책 it out(책잇아웃)’가 운영하는 ‘설렘자판기’가 바로 그것이다.

최근 문을 연 대형 복합 쇼핑몰 스타필드 고양에서 설치된 이 자판기는 안을 볼 수 없는 ‘랜덤 박스’안에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서 온 헌책 한 권이 들어있다.

총 8개의 장르 중 읽고 싶은 하나의 장르를 골라 버튼을 누르면 한 때 인기를 얻었던 서울 청계천의 헌책 장인이 장르에 맞게 골라 놓은 책 한 권이 나온다. 상자를 열어 보기 전까지는 안에 어떤 책이 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연인 혹은 친구,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며 특별한 ‘설렘’을 제공한다.

청계천 헌책방거리의 ‘밍키’서점의 채오식 사장이 책을 택배박스에 포장하고 있다. 사진=‘책 it out’ 제공
청계천 헌책방거리의 ‘밍키’서점의 채오식 사장이 책을 택배박스에 포장하고 있다. 사진=‘책 it out’ 제공

이 자판기는 단순히 책을 뽑는다는 재미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서울시 유일의 헌책방 거리인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살리자는 착한 뜻이 담겨 있다. 1960년대에 형성된 이 거리는 지식을 찾는 많은 학생들이 책을 사기 위해 들리는 필수 코스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하면서 서점의 온라인화와 독서문화의 약세로 헌책방 거리는 쇠락하기 시작해 과거에 200여개가 넘던 서점들은 오늘날 20여개소만이 남았다. 이들 책방은 발길이 눈에 띄게 줄어든 책방을 꿋꿋이 지키며 청계천 헌책방 거리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헌책방 거리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연세대학교 ‘인액터스(Enactus)’ 소속 대학생들이 힘을 합쳐 공모전에 나가고 발로 뛰며, 자판기를 구입하고 제품을 구상해 올해 6월 설렘자판기를 만들어냈다.

현재 텐바이텐 대학로 매장과 텐바이텐 고양스타필드 고양매장에 이 자판기를 운영 중이며 최근에는 현대백화점 유플렉스(U-PLEX) 5층에도 ‘설렘서재’ 콘셉트의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신촌 현대백화점 유플렉스(U-PLEX) 5층에서 운영되고 있는 ‘설렘서재’. 사진=‘책 it out’ 제공
신촌 현대백화점 유플렉스(U-PLEX) 5층에서 운영되고 있는 ‘설렘서재’. 사진=‘책 it out’ 제공

이들 학생들은 ‘헌책방 지킴이’로 젊은 세대가 알지 못하는 헌책과 청계천 헌책방 거리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누력하고 있다. ‘책 it out’의 팀장 이현진(경영학, 21)씨는 “헌책이라고 해서 지저분하고 오래된 책이라는 생각도 헌책방을 더 힘들게 만드는 원인 가운데 하나이지만 자판기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새 것이 아니어도 충분히 좋은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이들은 바쁜 현대인들의 독서율 저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고민했다.

이 모임의 팀원 현지윤(영어영문학, 23)씨는 “헌 책방의 경영난도 해결하지만, 설렘자판기는 평소 여러 이유로 책 읽을 여유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쉽고 재미있는 독서경험을 제공하려는 목적도 가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책방 주인이 추천하는 책을 받아본다는 편리하고도 독특한 경험도 설렘자판기의 또다른 매력이다.

(사진 왼쪽부터) ‘책 it out’의 팀원 최용우(26), 이현진(21), 박주형(25), 현지윤(23), 허빈(22)씨. 사진=‘책 it out’ 제공
(사진 왼쪽부터) ‘책 it out’의 팀원 최용우(26), 이현진(21), 박주형(25), 현지윤(23), 허빈(22)씨. 사진=‘책 it out’ 제공

이들은 학기중에도 매주 두 번씩 청계천 헌책방거리를 찾아 서점 주인들이 설렘자판기에 들어갈 책을 고르고 포장하는 것을 돕는다.

팀원 최용우(정보산업공학, 26)씨는 “설렘자판기를 이용하신 분들이 일상 속에서 작은 설렘을 느꼈다고 말할 때 가장 뿌듯하다”며 “청계천 헌책방거리에 이렇게 좋은 책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더 많은 분들이 찾아 주셨으면 좋겠다”라는 기대를 전했다.

정영일 기자 (wjddud@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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