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상준의 시대공감(時代共感)] 공중전화를 마지막 이용해 보신적이 언제인가요?

발행일시 : 2017-11-08 00:00
[한상준의 시대공감(時代共感)] 공중전화를 마지막 이용해 보신적이 언제인가요?

휴대폰이 대중화 되기 이전, 대학교에서 MT를 가거나, 회사 전체 워크샵을 가는 경우, 쉬는 시간 때 공중전화로 달려가서 전화를 했다. 십여명의 사람이 공중전화를 걸기 위해서 줄을서는 모습은 공공기관이나 기차역에서는 흔한 모습이었다. 공중전화는 외부에서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제 공중전화에 긴 줄을 서는 모습은 볼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요즘 공중전화 요금이 한 통화에 얼마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다. 공중전화는 보기도 힘들고 휴대폰으로 인하여 잘 사용하지 않는다.

공중전화의 황금기와 쇠퇴
공중전화 요금은 5원일 때 이용했던 기억이 난다. 1977년 10원, 81년 20원, 92년 30원, 94년 40원, 97년 50원, 2002년에 70원으로 오른 후 현재까지 70원이 유지되고 있다. 얼마 전 모 영화에서 1960년대 공중전화에 5원짜리를 쌓아 놓고 여자친구에게 동전을 넣으면서 계속 전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당시 공중 전화는 시외 전화와 연속통화가 불가능 하였다. 기본 통화가 끝나면 다시 동전을 넣고 걸어야 했다. 시외전화는 1977년에 일본에서 수입한 다무라 공중전화로 처음 가능했다. 1982년 국내에서 제작한 시외전화 가능 공중 전화가 보급되고 부터 시외 전화와 연속 통화가 가능해졌고, 10원, 50원, 100원 동전을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100원짜리가 사용 된 이후, 공중전화는 남은 금액의 반환이 안되었기 때문에 낙전 수입이 많았다고 한다.

시대별 공중전화 변천사 <시대별 공중전화 변천사>

그 후 카드형 공중전화가 보급되면서 공중전화는 황금기를 맞게 된다. 사용한 만큼만 카드에서 차감되니 동전을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었고, 사용하지 않은 비용을 전화기에 남길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공중전화에서 국제 전화까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공중전화로 해외에 있는 친지들에게 전화할 수 있었는데, 통화 할 수 있는 잔액이 전화기에 표시 되었다. 초기에 전화를 끊을 때만 전화 카드에 남은 금액을 기록하는 방식이었는데, 일부 사용자들이 카드에 구멍을 뚫고 끈으로 연결하여 전화를 건 후, 강제로 카드를 뽑아버렸다. 장시간 전화를 하고 끊어도 기록할 카드가 없고, 기존 전화 카드는 금액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카드 한 장으로 제한없이 통화를 할수 있었다. 특히, 통화요금이 비싼 국제 전화를 이런 식으로 걸어서 문제가 되었다. 결국, 통화요금이 차감될 때 마다 전화 카드에 기록하고, 기록할 카드가 인식되지 않으면 전화가 바로 끊어지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개선해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다.

공중전화는 무선호출기, 일명 삐삐의 등장으로 더욱 사랑받게 된다. 삐삐로 문자를 보낼 때도, 문자를 받은 후 전화 할 때도 외부에서는 공중전화를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길거리 뿐 아니라, 카페에도 위탁 공중전화가 설치되었다.

1998년에는 공중 전화 매출이 7,800억원 이었다고 한다. 휴대폰의 등장으로 공중전화는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1999년에 56만대로 정점을 찍고, 꾸준히 감소해서 최근 공중전화 대수는 약 7만대라고 한다. 이제 길거리에서 공중전화는 보기 쉽지 않다. 공중전화를 유지 하기 위하여 동전 외에도 신용카드, 교통카드 등으로도 걸 수 있도록 개선하고, 수신자 부담 발신 방식도 도입하는 등 노력하였으나, 휴대 전화의 보급을 이길 수는 없었다. 휴대폰의 대중화로 한달 내내 한번도 이용되지 않는 전화기가 백여 대이고, 월 통화료가 1,000원도 안되는 공중전화가 5,000대가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공중전화는 수익보다 유지비용이 더 들어서 4만대까지 줄일 계획이라고 한다. 잘 사용하지 않는 도로변은 없애고, 복지시설 등에 설치하여 불편을 최소화 할 계획이라고 한다. 완전히 없앨 수는 없는 것이, 외국인들과 긴급 상황에서 통화 등 사회 복지 차원에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외 전화, 국제 전화 걸기
가수 김혜림씨의 DDD란 노래는 1989년 발표 되었는데, DDD는 Direct Distance Dialing로 교환원을 거치지 않고 전화기 다이얼로 바로 통화 할 수 있는 장거리 자동 전화를 의미한다. 노래 발표시기와 달리 DDD 방식은 1971년부터 서울과 부산간 교환원 없이 통화가 가능했지만 회선이 워낙 적었다. DDD 서비스가 전국 모두에서 가능해 졌던 시기는 1987년이었다.

1970년대 전화기는 버튼 식이 아니고 다이얼을 돌리는 방식이었는데, 시외 전화를 걸 경우 0번으로 시작했다. 당시 시내 요금은 통화 시간에 관계없이 한 통화는 동일한 요금이었으나, 시외 전화의 경우 시간에 따라 사용 요금이 부과 되었다. 공중전화가 많이 않아서 약국 등 가게에 설치 되어있는 전화를 빌려 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가게 주인 몰래 시외로 전화를 거는 사람들 때문에 주인이 요금 폭탄을 맞는 경우가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 다이이얼식 전화기 9번에 자물쇠를 채워서 시외전화를 거는 0번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까지 나왔다. 전화번호 중간에 0번이 있는 시내 통화의 경우에는 주인에게 자물쇠를 풀어 달라고 요청해야 했다.

1970년대에 국제 전화를 걸기 위해서는 교환원을 통하여만 가능했다. DDD처럼 바로 통화할 수 없었다. 전화국에 전화한 후 통화할 국가와 상대방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무려 1~2시간 정도 경과한 후에 교환원에게 전화가 왔다. "원하시던 곳과 연결 되었습니다"하고 나면 상대방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국제 통화를 할 수 있는 국제 회선이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신청한 순서대로 연결을 시켜주었는데, 외교관이라고 급한 일이라고 하면 20~30분 내로 연결이 되기도 하였다.

무선 호출기 삐삐(Pager)의 등장과 퇴출
삐삐가 대중화 된 것은 90년대 들어서면서 부터이다. 삐삐를 처음 본 것은 1985년 쯤 이었다. 문자는 물론 숫자도 나오지 않고, 오로지 소리와 진동만으로 호출이 왔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호출은 회사에서만 하기 때문에 호출을 받으면 무조건 회사에 전화를 하는 방식이었다. 그 후, 숫자 표시가 가능한 삐삐가 나왔고, 발전해서 문자 까지 가능한 삐삐가 등장했다. 이러한 삐삐도 초기에는 수도권에서만 가능했고, 지방에 가면 수신이 되지 않았다. 지방에서도 수신이 가능한 광역 삐삐 서비스는 출장이 많은 직장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문자 삐삐가 나오기 전에 숫자만 가능 했기 때문에 숫자로만 다양한 의미를 전달하는 방법이 있었다. 숫자로 약어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는데, “오빠 사랑해 영원히 사랑해”를 의미하는 0504 처럼 단순한 약어도 있었지만, 17317071 처럼 수신된 문자를 뒤집어서 보면 I LOVE U 로 보이는 방식도 있었다.

[한상준의 시대공감(時代共感)] 공중전화를 마지막 이용해 보신적이 언제인가요?
삐삐 화면의 숫자만으로 다양한 의사 전달을 할 수 있었다 <삐삐 화면의 숫자만으로 다양한 의사 전달을 할 수 있었다>

핸드폰에는 직접 문자를 입력해서 전송할 수 있지만, 문자 삐삐를 보내려면 통신사에 전화해서 상당원에게 40자 이내의 문구를 알려주면, 도우미들이 그 문자를 타이핑해서 보내는 방식이었다. 사회 통념과 통신사의 방침에 의하여 보낼 수 없는 금지 단어도 존재해서 상담원과 사용자와의 마찰도 있었다. 월드컵 경기가 있는 날에는 경기 실황을 5~10분마다 문자로 중계하는 서비스를 하기도 했다.

핸드폰이 출시된 후 한동안 핸드폰과 삐삐는 공존했었다. 핸드폰에서 자체 문자 전송 기능을 시범 서비스하면서 삐삐 업체는 사업권 침해라고 핸드폰에서 문자 발송을 반대 하는 등 반발하였으나 결국 시대의 흐름 대로 저렴해진 핸드폰에서 문자 발송 서비스를 시작하였고, 삐삐는 급속하게 줄어서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시티폰의 출현
휴대폰이 보급된 이후에도, 휴대폰 기기 가격과 통화요금은 일반인들에게는 부담이 되었다. 이를 해결해 주는 물건이 나왔으니, 바로 씨티폰이다. 씨티폰은 가정내에서 사용하는 무선전화와 같은 방식으로 핸드폰에 비하여 제작 단가가 낮았다.

삐삐와 시티폰만 있으면 삐삐로 연락을 받고, 시티폰으로 전화를 하면 자유롭게 통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씨티폰 기지국은 공중전화 부스를 이용하였다. 공중전화 부스에 높은 안테나의 기지국을 만들었는데, 장애물이 없는 반경 50~100m 정도까지 통화가 가능했다. 요금은 일반 공중전화와 동일했다. 단점은 발신만 가능하였고, 휴대폰과 달리 다른 기지국으로 전환 서비스가 되지 않아서 연결된 기지국에서만 통화가 가능했기 때문에, 걸으면서도 사용할 수 없었다. 한 기지국당 연결 가능한 시티폰 댓수는 제한되어 있어서 번화가에서는 기지국 옆에서도 통화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다. 시티폰끼리 통화가 불가능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심지어는 걸으면서 통화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엄청난 인기로 시작되었던 시티폰은 짧은 인기를 끝으로 사라지게 된다.

전화의 발달
요즘은 070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전화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인터넷 망을 이용하는 전화이기 때문에 시외 전화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지고, 전화기를 외국에 가지고 가서 인터넷에 연결만 하면 세계 어디든 국내 통하는 무료나 시내 통화료로 통화할 수 있게 되었다. 통신망이 회선 개념이 아닌 고속 인터넷 망을 쓰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유선전화의 경우에도 중간에 인터넷망을 사용하기 때문에, 인터넷 전화와 큰 차이가 없다. 언젠가는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인터넷 망을 통해서 전화 요금이 시내, 시외, 국제 요금이 아닌 단일 요금제도 가능하리라 본다. 이미 스카이프, 보이스톡, 페이스 타임 등을 통하여 전세계 누구와도 무료 통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음성통화는 물론 화상통화까지 가능하게 되었고, 이러한 화상통화는 일반 전화로는 통화를 할 수 없는 청각 장애인들이 수화를 통하여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전화기는 이제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전화기의 발전의 끝은 어디일까?

한상준 han.sangjoon@gmail.com 포토스탁 회사 이미지클릭 이사. 한글과컴퓨터 등 IT 분야에서 20년 넘게 일하고 있다. 새로운 기기를 사용하고 분석하는 얼리아답터 활동을 하고 있다. IT 분야 뿐 아니라 아마추어 마라토너, 요리, 커피 등 다양한 취미 생활을 하고 있다. 관심 분야의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고, 정리하여 글로 남기는 것을 즐기고있다. 현재 논현동에서 커피 전문점 카페드양도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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