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중 속옷을 그날그날 빠는 습관때문에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본능적으로 빨았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가습기를 켜고 옆에다 말리고 있다. 다행히 가습청정기라 청정기만 가동된 듯 하다. 아침식사가 깔끔하고 훌륭하다. 호텔 실내장식 중 낡은 트렁크를 이용한 것이 맘에 든다.

가죽트렁크 의자
가죽트렁크 의자

정문 벽면을 낡은 가죽트렁크로 장식하고 방에 놓인 의자도 고풍스런 가죽트렁크에 바퀴를 달아놓았다. 호텔에서 테이크아웃 커피 쿠폰을 제공해준 센스 덕분에 체크아웃하고 커피 두 잔을 받아서 렌트카데스크로 갔다. 공항 규모에 비해 렌트카데스크가 지나치게 소박하다.

버스승차권 파는 데스크에 붙은 렌트카데스크
버스승차권 파는 데스크에 붙은 렌트카데스크

버스승차권파는 데스크에 종합부록으로 붙어있다. 운전면허증을 보여주니 렌트카사무실에 전화를 하고 확인을 한다. 주차장 1층으로 가서 30분을 기다리란다. 설마했는데 진짜로 30분 가까이 기다렸다. 나리타공항과 달리 하네다공항은 렌트하는 사람들이 많지않은 모양이다. 동경 시내와 가까운 공항이다보니 외국인들은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듯 하다.

드디어 백마타신 나이 지긋한 기사님이 나타나서 우리를 찾으신다. 기다린 시간이 길다보니 그저 반갑고 고맙다. 셔틀을 타고 렌트카사무실에 도착했다. 이 지역 땅값을 실감했다. 사무실이 작아도 너무 작다. 제로베이스로 보험도 새로 들고 ETC카드도 요청했다. 눈치가 수상하다. 직원이 영어를 전혀 모르는 듯 싶은데 고개를 끄덕인다. 보험 확인하느라 ETC를 확인안한것이 실수다. 차를 몰고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톨게이트를 지나는데 차단봉이 올라가지않는다. 직원이 오더니 ETC카드를 보자고 한다. 카드홀더를 확인하니 없다. 황당하다. 다행히 친절한 직원아저씨가 수동으로 처리해주셨다. 죄송하고 감사하다.

렌트카직원을 욕하니 딸은 내 탓을 한다. 세상에 남 탓할 일이 없다. 재차 확인 안한 내 탓이다. 일본에 와서 영어 쓰면서 내 욕구대로 다하려는 것은 욕심이다. 자식이 어른이 되니 이제 자식에게 배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환상의 아이스크림
환상의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이 맛있어보여서 사 먹고는 둘이서 탄성을 질렀다. 여태 먹어본 것 중 최고의 맛이다. 콘 껍질까지 맛있다. 콘 하나에 5천원정도인데 비싼 값을 한다.

오합목 가는 길
오합목 가는 길

차를 달려 후지산 5합목으로 갔다. 2006년 10월 엄마와 친구분들 모시고 갔었다. 당시 단풍도 예쁘고 전망도 좋아서 감탄했던 곳이다. 1합목을 지나서 본격적으로 산길에 들어서자 아름다운 길이 펼쳐진다.

구름 위로 나온 후지산
구름 위로 나온 후지산

구름 위로 후지산이 얼굴을 내밀고 인사를 한다. 감탄사가 끝나기도 전에 탄식으로 바뀌었다. 11월부터 동계에 들어 도로를 막아놓았다. 할수없이 차를 돌려 야마나카호수로 갔다. 야마나카호수에 도착하니 3시다. 배가 고파서 식당을 찾으니 변변한 식당이 없다.

검은 닭튀김
검은 닭튀김

우동과 후지산 블랙 프라이드치킨을 먹었다. 우동이 맛없어 거의 남겼다. 까만 옷 입은 치킨은 먹을만하다. 야마나카호수에서 보는 후지산 경치는 다행히 기대이상이다. 딸과 함께 호수 주변을 다니며 산책하고 오리하고도 놀았다.

후지산뒤로 넘어가는 해
후지산뒤로 넘어가는 해

석양 지는 후지산이 호수에 비친 광경은 감동이다. 열심히 차를 달려 하코네로 왔다. 꼬불탕 산길이라 40킬로를 한시간 넘게 걸렸다. 열심히 달려 6시경에 예약한 료칸에 도착했다. 가이세키를 예약해 놓아서 늦을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직원이 방을 안내하고 설명을 해준다.

노천탕 설명듣는 중
노천탕 설명듣는 중

노천탕 딸린 방을 예약하길 잘했다. 딸이 좋아한다. 방은 평범한 료칸방인데 하코네인데다 노천탕 딸린 방이라 가격이 세다.

가이세키 시작
가이세키 시작

다행히 딸이 가이세키도 맛있게 먹는다. 돈 쓴 보람이 있다. 엄마는 딸이 먹는 모습만 봐도 행복하다.

저녁 먹고 동네 산책을 나갔다. 생각보다 번화하진 않다. 산책하고 편의점에 들러 커피 간식 맥주를 샀다. 딸이랑 다니니 재미있다.

료칸으로 돌아와 온천하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음료수들이 희한하게 꽂혀있다. 생각없이 맥주 한 병을 꺼냈다가 딸한테 혼났다. 자동 미니바체크시스템이란다. 편의점에서 사온 캔맥주도 있는데 어쩌냐고 뭐란다. 가격을 보니 한 병에 7천원정도다. 남편이라면 절대 뭐라하지 않을텐데 서럽다. 알뜰한 딸은 엄마의 실수로 낭비하는 돈이 아깝단다. 40만원넘는 방에 재워주고 7천원땜에 혼나니 우습고 한편으론 기특하다. 그래서 편의점에서 사온 캔맥주도 마시고 실수로 꺼낸 병 맥주도 마셨다. 주량은 캔맥주한병인데 과음했다. 알딸딸 누워있으니 엄마 생각이 난다.

2006년 후지산 5합목에서 엄마
2006년 후지산 5합목에서 엄마

2006년 엄마가 후지 5합목에서 소녀처럼 좋아하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그립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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