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여자에게 결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세상 무서운 것 없는 여자는 결혼은 혼자 살 자신 없는 나약한 인간들이나 하는거라고 답했다. 남자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생각이 같은 사람끼리 같이 살아야한다고 남자가 여자에게 결혼하자고 했다. 여자는 남자와 함께 있으면 재미있고 행복해서 결혼했다. 꿈 많던 여자는 결혼하고 평범한 주부가 되었다. 아들딸 낳고 키우고 독립시키는 동안 남자는 더 바빠지고 여자는 더 평범해졌다.

그 여자가 지금의 나다. 주말까지도 반납하고 일하는 바쁜 남자를 여자는 이해한다. 그런 남자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하지만 날개 잃고 빈 둥지를 지키는 허전함은 채울 방법이 없다. 가끔은 가지않은 길이 궁금하기도 하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여자에게 남자는 가끔 날개를 달아준다. 혼자 머나먼 곳으로 날아가고 싶어서 비행기표를 샀다.

탑승동 라운지에서 보는 인천공항
탑승동 라운지에서 보는 인천공항

부다페스트까지 가는 직항이 없어서 모스크바를 경유하기로 했다. 부다페스트에 밤늦게 도착하기 싫어서 모스크바에서 1박하기로 했다. 아르바트에서 저녁먹으려고 시내 위치 좋은 호텔을 예약했는데 남편이 걱정한다. 공항 호텔로 변경하려고 보니 취소 기한을 넘겨서 취소가 안된다. 할수없이 시내호텔비를 날리고 공항호텔을 별도로 예약했다. 항공좌석을 체크인하면서 비상구좌석을 달라고 하니 별도로 돈을 내야한단다. 10만원정도를 내란다. 잠시 갈등하다가 그냥 샀다. 항공사마다 규정이 다르긴한데 다소 비싼 듯싶다. 비행기표를 싸게 샀다고 좋아했는데 이래저래 구멍투성이다.

탑승동으로 가는 셔틀을 탔다. 내 또래 아줌마들이 단체로 동남아여행을 가는지 옷을 화장실에서 갈아입자며 떠든다. 탑승동에서 옷 갈아입고 쉬기 좋은 곳을 알려줬는데 관심없어한다. 괜히 참견했다. 화장실에서 갈아입는 것을 더 재미있어하나보다. 탑승동라운지로 가서 점심 먹고 쉬다가 시간 맞춰 비행기에 탔다. 비상구좌석에는 달랑 나혼자다. 좌석 가격을 비싸게 책정한탓인듯 싶다.

비상구좌석 3개를 독차지
비상구좌석 3개를 독차지

덕분에 3자리에 옷도 놓고 짐도 놓고 혼자서 제꼈다 걸쳤다 별 짓을 다했다.

모스크바 도착
모스크바 도착

식사두번 간식한번을 먹고 드디어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여전히 입국심사줄이 길다. 러시아는 입국신고서를 심사관들이 작성해준다. 그래서 심사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경유하는 한국인 단체 중 일부가 입국심사를 받고 나가버렸다. 안에 남은 일행들이 밖으로 나간 일행에게 들어오라고 고함지르고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말이 안 통하니 심사관은 안에 남은 일행에게 뒤쪽 경유심사대로 가라고 막무가내다. 이산가족의 현장을 보는듯 하다. 보다못해 대표인 듯한 남자분께 나간 사람들은 다시 보안검색받고 출국심사받고 보세구역으로 들어와야한다고 설명해드려도 이해를 못하신다. 입국신고를 마치고 나가보니 나온 일행들이 승무원을 붙잡고 이야기중이다. 승무원이 해결해줄 것 같아서 그냥 나왔다. 모스크바공항을 경유할 때는 시간이 촉박하면 초조할 듯 싶다.

하루 체류하기 잘했다싶다. 짐 찾고 호텔 셔틀을 타러가는데 택시기사들이 유혹을 한다. 공항호텔이니 셔틀탈거라 했더니 셔틀시간이 끝났단다. 저녁6시에 끊어지는 호텔셔틀이 세상에 어디 있는지 기가 찬다. 그냥 웃으며 사양했다. 계속 걸어가는데 다른 택시기사가 오더니 천루블주면 호텔에 데려다준단다. 걸어서 1킬로거리다. 천루블이면 시내까지도 갈 요금이다. 말대꾸도 어느정도 통해야 할만하다. 조그만 동양여자가 혼자 다니니 먹이를 찾아 서성대는 하이에나들이 끊임없이 달려든다. 셔틀정류장에 도착해서 기다리는데 우버기사라며 싸게 데려다주겠다고 또 달려든다. 그냥 멀뚱멀뚱 바라봤다. 다행히 잠시 후 호텔셔틀버스가 왔다.

호텔셔틀 안내판
호텔셔틀 안내판

15분간격으로 온다고 써 있는데도 사기치는 기사들이 이해가 안된다. 외국인들중에는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나는 작년에 한번 타본 셔틀이라 갈등할 이유가 없다.

공항호텔 도착
공항호텔 도착

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갔다.

객실 미니바
객실 미니바

냉장고를 여니 러시아답게 술이 종류대로 많이도 들어있다. 대충 옷을 갈아입고 지하로 갔다.

카탈로그의 수영장
카탈로그의 수영장

이 호텔을 선택한 이유가 카탈로그에 나와있는 스파사진때문이다.

카탈로그의 스팀실
카탈로그의 스팀실

사우나와 스팀실이 수영장에 붙어있다. 프론트에 수영복을 입어야하냐고 물어보니 타올을 충분히 갖추고있으니 가운입고 가면 된다고 해서 갔다. 수영장에는 선남선녀들이 끼리끼리 수영을 즐기고 있다. 나는 대형타올 2개를 빌려서 돌리고 가리고 사우나와 스팀을 즐겼다. 쭉쭉빵빵 비키니입은 러시아아가씨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보니 눈이 황홀하다. 남자들은 풀사이드에 앉아서 수영은 안하고 놀고있다. 구경만 해도 재미있다.

공항호텔을 예약하기 잘했다. 시내호텔비 날린 것이 아깝긴 하지만 혼자 모스크바 밤거리를 다닐 생각을 하니 두렵기도 하다. 남편 말 듣기를 잘했다.

호텔방에서 보는 야경
호텔방에서 보는 야경

모스크바는 작년에 일주일을 머물면서 실컷 봐서 미련도 없다. 세상을 혼자서 헤쳐갈거라 자신만만했던 시절도 있었다. 내가 제일 잘난 줄 착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세상을 다닐만큼 다니고 별별일을 겪다 보니 이젠 두렵기도 하고 움츠려들기도 한다. 세상을 혼자 살아갈 자신이 이제는 없다. 전화를 열어보니 조심히 다니라는 남편의 메시지가 있다. 고맙고 든든하다. 조심 또 조심하자.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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