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한참 읽다가 중간쯤에 이르러 기시감이 반복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가를 살펴보면 예전에 구입해둔 같은 책이 있어 어색한 미소로 웃게 된다. 아, 읽었던 책을 또 읽고 있다니··· 살짝 허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두 번이나 관심을 끌게 한 것은 제법 괜찮은 책이라는 확신으로 이어진다. 아울러 그렇게 같은 대상이나 사건을 가물가물 복기시켜봐야 기억과 전혀 다른 사실에 놀라기도 한다. 지난 번 기억이나 느낌이 오늘과 같을 수는 없지만 그것을 거짓이라 할 수도 없다. 진실이란 도대체 얼마나 명징해야 하는 것일까?

리테쉬 바트라 감독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 2017)’는 잘 만든 영화다. 원작자가 “책의 내용을 배신하는 것이 영화감독의 본분이다.”라고 추켜세웠을 만큼 훌륭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책을 구입했는데, 이미 읽은 책이었다. 밑줄도 그어진 것이 잘 읽은 책 같은데 기억이 희미해 다시 읽게 되었다. 제목이 잘못 번역되었다는 지적은 매력적인 제목에 대한 참으로 구글 번역기 같은 입장이 아닐 수 없다. 직역하여 ‘결말의 느낌’ 혹은 ‘결말의 예감’으로 옮긴다면 그것이 정답일지는 모르지만 참으로 매력 없는 제목이지 않은가?

평론가였던 줄리언 반스는 모교에서 ‘옥스퍼드 영어사전 증보판’ 편집의 경험과, 개업하지 않은 변호사라는 독특한 이력 속에서 ‘메트로랜드’로 서머싯몸 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댄 캐바나라는 이름으로 여러 편의 추리소설도 발표했는데, 영국의 전설적인 문학 에이전트 팻 캐바나에게 바치는 선물 같은 필명이 아닐 수 없다. 문학과 인생의 동반자였던 네 살 연상의 그녀와 행복했던 결혼생활은 2008년 사별로 절망에 이르렀으나, 3년 만에 위기를 극복하며 ‘팻에게 바친다’는 헌사로 이 소설을 발표해 이듬해 맨부커상으로 재기했다.

“젊을 때는 서른 살 넘은 사람들이 모두 중년으로 보이고, 쉰 살을 넘은 이들은 골동품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시간은, 유유히 흘러가면서 우리의 생각이 그리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해준다. 어릴 때는 그렇게도 결정적이고 그렇게도 역겹던 몇 살 되지도 않는 나이차가 점차 풍화되어 간다. 결국 우리는 모두 ‘젊지 않음’이라는 동일한 카테고리로 일괄 통합된다.” - 107쪽

토니와 앨릭스, 콜린 심슨 삼총사의 고교시절에 전학생 에이드리언이 등장한다. 헨리8세의 시대에 대해 아는 것이 좀 있느냐는 헌트 선생의 질문에 장난기를 감추지 않는 3총사와 달리 “잘은 모릅니다. 선생님, 하지만 하나의 사유방식은 있는데, 그에 따르면 모든 역사적 사건에 대해 우리가 진실 되게 할 수 있는 말은 ‘뭔가가 일어났다’는 것뿐입니다.”라는 추상적이고도 철학적인 대답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진지할 때를 제외하고는 실없는 농담을 기본으로 하는 3총사 곁에 농담일 때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진지한 모범생 한 명이 붙은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은퇴를 몇 년 앞 둔 헌트 선생의 질문에 토니는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라 인용하고, 콜린은 ‘생양파 샌드위치처럼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답하는데, 에이드리언은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상급생 롭슨이 여자친구의 임신에 충격을 받아 자살한 사건을 두고 카뮈를 인용하여 ‘자살이 단 하나의 철학적 문제’라고 규정했던 에이드리언은 그 작은 사건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망자의 증언 없이 어떻게 역사를 함부로 말할 수 있겠느냐는 인상적인 발언을 한다.

“우리는 허세덩어리였다. 달리 청춘이겠는가. 우리는 ‘벨트안샤웅’이니 ‘슈투름 운트 드랑’이니 하는 용어를 즐겨썼고. ‘그건 철학적으로 자명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상상력의 첫 번째 의무는 위반하는 것이라고 서로에게 다짐하듯 확언했다. 우리의 부모들은 상황을 다른 시각으로 보았는데, 자식들이 갑자기 유해한 세력에 노출돼버린 순진무구한 존재라고 상상했다. 그래서 콜린의 어머니는 내가 당신 아들의 ‘어둠의 천사’리고 여겼고, 우리 아버지는 내가 ‘공산당 선언’을 읽은 것이 앨릭스 탓이라고 했고, 앨릭스의 부모는 콜린이 미국 하드보일드 범죄소설을 읽는다고 콜린의 부모에게 일러바쳤다. 대강 그런 식이었다. 섹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 23쪽

토니의 첫사랑은 베로니카였다. 대학생이 된 첫 학기 어느 파티에서 만난 그녀가 혈기 왕성한 토니를 집으로 초대한 것까지는 좋았다. 험버 슈퍼 스나이프를 타는 아버지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말로 조롱했으며 있지도 않은 장소들을 설명하며 놀려대기까지 했다. 케임브리지에 다니는 오빠 잭은 오만하게 뜯어보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녀 자신은 항상 마음 졸이게 교묘히 조정을 하며 상처를 줬다. 엄마는 뜨거운 프라이팬을 싱크대에 아무렇지 않게 집어 던지던 해맑은 표정으로 자기 딸 때문에 손해 볼 일은 절대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베로니카를 일 년 남짓 사귀었는데, 모든 면에서 한 수 위인 치즐허스트에서 심각한 굴욕을 느꼈다. 사랑에도 진전이 없었으며, 자존감에 상처가 되는 혼란의 시간이었다. 토니는 사랑과 갈등과 아픔을 반복하는 한때를 보냈다. 그리고 어색한 첫사랑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우월한 벗 에이드리언으로부터 베로니카와의 교재를 허락해 달라는 편지가 도착했다. 더 큰 상처를 받은 토니는 몇 번이나 답장을 고쳐 쓰며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결국 마음에도 없는 둘이 잘해보라는 내용으로 답장한다. 그것은 절교와 다름없는 하나의 선언이었다.

괴로움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현실 도피자가 되어 방황한다. Time Is On My Side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시간은 결국 내 편이 될 것이라는 롤링 스톤스의 위로 속에 치유의 시간을 보낸다. 친구들이 의사나 변호사가 되려고 공부할 때, 아랑곳 않고 미국 여행을 떠난다. 온갖 잡일을 하면서 부랑자 생활을 하는 도중에 베로니카와 상반된 성격의 다정한 애니를 만났고, 뜨겁고 손쉬운 사랑에 빠졌으며, 적당히 타락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다행히 토니의 자기보존 본능은 첫사랑의 아픔에서 벗어나 깔끔하게 회복되어 런던의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삶이 바란 적이 없음에도 받게 된 선물이며, 사유하는 자는 삶의 본질과 그 삶에 딸린 조건 모두를 실험할 철학적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만약 바란 적이 없는 그 선물을 포기하겠다고 결정했다면, 결정대로 행동을 취할 윤리적, 인간적 의무가 있다는 것이었다. 결론 부분은 실질적으로 자신의 논지가 타당함을 알리고자 하는 내용이었다.” - 88쪽

방황과 은둔의 세월을 끝내고 돌아오자 앨릭스가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에이드리언이 그의 성적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최고 수준의 1등급 자살로 삶을 끝냈다는 비보였다. 두 대학원생과 함께 살고 있던 아파트 욕실 문 밖에 ‘들어오지 말고 경찰에 전화할 것’이라는 쪽지를 붙여뒀고 주말 하루 반나절이 지나 발견되었다고 했다. 검시관은 심리적 평형 상태를 상실한 것이 계기였다고 기록했다. 도대체 베로니카랑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처음엔 원망스러웠지만 점차 두 사람 모두를 가엾게 여기고, 잘못된 만남과 애증의 교차점에서 벗어나려 애를 썼다.

남은 세 친구가 다시 뭉친 것은 소멸된 친구의 첫 번째 기일이었다. 해마다 에이드리언을 추모하는 모임을 갖자고 맹세했으나 각자 생활에 찌들다보니 지켜지지 않고 세월은 유수처럼 흘렀다. 첫사랑에 실패한 대부분의 남자들이 적절한 경험을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헤쳐 나가는 것처럼 토니는 마거릿을 만나 결혼했고, 수지를 낳았으나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생겨 파경에 이르렀다. 다행히 수지는 부모의 이혼에 큰 상처를 받지 않았고, 두 사람은 별다른 애정 없이 친구처럼 교유한다. 토니는 은퇴한 꼰대답게 주변 사람을 적당히 피곤하게 하며 평범하게 늙어갔다.

“하나둘 씩 기억을 잃기 시작할 때 반응하는 방식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 자리에 버티고 앉아 지인과 꽃과 기차역과 우주비행사의 이름을 대려고 기억을 쥐어짜거나, 혹은 실패를 받아들이고 책과 인터넷을 참조하는 실용적인 단계를 취할 수도 있겠다. 아니면 그냥 흘려보냈다가, 가끔 한 시간이나 하루가 지나서 엉뚱한 계기로 기억이 날 때도 있다. 노화가 불러온 불면증 때문에 오래도록 뒤척이다가 기억이 날 때도 잦다. 우리 모두, 툭하면 잘 잊어버리는 우리 모두가 터득하게 되는 사실이다." - 193쪽

토니가 싱클레어라면, 에이드리언은 데미안이었고, 베로니카의 어머니는 에바 부인이었을까? 인생에 단 한 번밖에 만난 적이 없는 사라 포드 여사로부터 생각지도 않았던 유서가 도착한다. 사십 년 만에 난데없이 500파운드라는 돈과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남긴다는 내용이었다. 베로니카의 죽은 남자친구 일기장을 그녀의 엄마가 보관하고 있다가 물려준 것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것을 또 베로니카가 무단으로 가져가 버렸다는 소식은 더욱 납득이 안 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까마득한 기억 속의 유쾌하지 않은 첫사랑과 풀어야할 숙제가 생긴 것이다.

늙은 토니는 고교 시절 자신의 단언과 달리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회고에 가깝다고 정의한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가를 증명해줄 사람들이 죽고 떠나는 증인들이 소멸 속에 우리들은 늙어가고 함께 시간이 흐른다. 부단한 기록들도 존재하지만 엉뚱한 것일 수도 있다. 라그랑주를 인용해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라 말했던 에이드리언의 발언을 상기하게 된다. 그의 일기장을 반드시 돌려받겠다는 일념은 상처받은 시간 속으로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간다.

오래 전, 네 친구의 우정이 아직 유효했을 때, 트라팔가르 광장에서 모두 함께 찍은 사진 속 베로니카의 시선은 토니가 아니라 에이드리언을 향해 있었다. 오빠를 통해 어렵게 알아낸 이메일로 그녀에게 연락을 취하고,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까다롭고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썰렁한 분위기 속 재회는 서글프다.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은 이미 태워버렸다면서 코트 주머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내 주고 돌아서는 것도 야속하다. 그녀는 하나도 안 변했는데, 자신은 그래도 좋은 쪽으로 변했다는 믿음으로 견딜 수 있었다.

“인생에 대해 내가 알았던 것은 무엇인가. 신중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내가. 이긴 적도, 패배한 적도 없이, 다만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았던가. 흔한 야심을 품었지만, 야심의 실체를 깨닫지도 못한 채 그것을 위해 섣불리 정착해버리지 않았던가. 상처받는 게 두려웠으면서도 생존력이라는 말로 둘러대지 않았던가.” - 242쪽

베로니카가 헤어질 때 준 편지는 자신이 쓴 것이었다. 첫사랑의 실패로 방황하던 시절, 자신의 필체가 분명했지만 기억에 없는 분노와 저주가 잔뜩 녹아 있었다. 베로니카와 에이드리언을 향한 충격적인 욕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옛날 아무렇게나 던진 돌에 맞아죽은 개구리가 있었다면 그것이 토니 자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정반대의 입장에 있었던 것이다. 자기 편한대로 기억되는 것이 인생일까. 그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기억나지 않는 사실을 확인한 뒤로 몹시 괴로웠다. 도대체 어찌해야 하는가?

메마른 기억에 관한 현란한 아포리즘이 흐른다. 주인공의 기억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이야기도 정확할리 없다. 수많은 철학자와 역사학자가 인용되는 고교시절 수업의 대화들도 진실 너머에 있을 수 있다. 누가 감히 인생에 대해 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특별한 승리와 패배의 기억도 없이 다만 흘러가는 대로 순응적으로 살았다고 믿었는데, 신중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토니의 일생은 왜곡된 기억 속에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마거릿이 그를 떠난 이유는 무엇이고, 베로니카와 헤어진 원인은 누구에게 있었는지도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진실은 허구 보다 훨씬 더 낯설다는 마크 트웨인의 통찰을 생각한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자주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할까. 신영복의 ‘담론’에는 신참 죄수가 들어올 때마다 “내가 말이야···”로 시작하는 무용담을 늘어놓는 늙은 무기수의 이야기가 나온다. 시간이 흐를수록 뻥이 늘어 자신의 과거를 미화시키는 각색된 인생사에는 진실과 사실에 관한 깊은 고민이 있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우리는 그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떤 삶을 선택할까? 토니를 만날 수 있다면 말없이 안아드리고 싶다. 여전히 수배 중인 나와 당신의 착각들은······

안중찬 ahn0312@gmail.com 주)교보피앤비 기획실장 / 장거리 출퇴근의 고단함을 전철과 버스 안에서 책 읽기로 극복하는 낙관적이고 사교적인 생활인이다. 컴퓨터그래픽과 프로그래밍 분야 11권의 저서와 더불어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으로 한 권의 책에서 텍스트, 필자, 독자 자신을 읽어내는 서삼독의 실천가이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넥스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