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너무 많이 들어 식상하기 조차 한 말이 있다. 모든 비즈니스의 시작은 고객의 니즈라는 말이다. 과연 그렇다. 비즈니스의 성공이란 매출이 말해준다. 매출이란 이용자들의 지갑을 기꺼이 열게 하는 것과 동의어이다.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어 라고 생각하고 있는 기존 이용자들의 가려운 곳을 찾아 싹싹 긁어주는 서비스와 제품은 흥해야 마땅하다. 필요한 서비스와 상품은 당연히 확산될 것이고 입소문을 듣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 적은 투입 많은 매출. 바로 생산자가 그렇게 원하는 선순환 체계다. 그리하여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그런 아름다운 비즈니스 구조의 시작이 고객의 니즈다.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IT 비즈니스도 이 단순한 원칙의 예외가 될 수 없다. 사실 일반인에게 IT란 컴퓨터고, 휴대폰이고, 인터넷이며, 그 안에서 사용하는 앱과 서비스다. 어떤 상황을 뭔가 좀더 편리하게 해 주기 위해서 전자기기 안에서 작동하는 서비스이고, 구체적인 기술이야 어떻든 내가 쓰는 제품의 기능으로 우선 이해되는 것이다. 이용자에게 이 이상은 외계어고 절레절레다. 그런데 실은 IT는 이보다 훨씬 광범위한 형태로 이용자들에게 다가간다.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인터넷과 데이터의 형태가 관여되는 모든 분야는 일단 IT다. 이용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곳까지도 IT는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심지어 이 과정은 이용자의 이용 행태에 까지 데이터로 연결되게 된다.

어떤 기능과 사용을 데이터로 파악하고 이 데이터를 컴퓨터 계산하여 인터넷으로 확산을 하지 않는 영역은 전통적인 비즈니스 방식에서 확장된 새로운 블루오션이다. 이 영역을 간과할 비즈니스가 어디에 있겠는가. 지금의 IT는 경제적 부가가치 생산의 인프라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 즉 산업 전반의 전 영역에 기반이 되고 있다. 유통 영역은 물론, 현존하는 모든 계위의 생산 영역까지 모두 적용의 대상이 된다. 수요와 공급의 선순환, 목표의 달성을 위해 필요한 속도와 효율 그리고 규모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 인프라. 도달할 수 있는 최대한의 수위까지 확장되는 속성을 발휘하고 있다.

사회의 네트워크와 통신, 데이터, 연산처리, 초연결, 인공지능, 로보틱스, 반도체와 신소재까지. 그리하여 이 모든 영역을 활용하여 무엇인가를 쉽게 잘 생산하게 한다면, 가능하면 이 생산은 싸고 정확하게 만들어 진다면, 이렇게 아낀 자원과 시간이 더 의미 있는 곳에 투자되고 재생산 확대생산까지 연결이 될 수 있다면. IT가 의미를 갖고 열렬한 환영과 함께 경제 구조 안으로 흡수되고 있는 이유다.

생산과 유통의 기반시스템에 도입되고 이를 기준으로 일하는 방법과 수준이 바뀐다. 이에 맞춰 일의 순서와 로직도 다시 세워진다. 법과 질서가 재정비되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상식과 윤리 그리고 가치관까지 변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이 당연히 도래한다. 소위 말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광범위 하게 일어나고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면 디지털 혁명은 이미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200년전 기아와 절대 빈곤으로부터 탈피하고자 전 세계가 열렬히 환영하며 시작된 대량생산을 위한 사회적 합의사항, 자본주의의 도입과 너무나 닮았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자본주의와 대량생산이 추구하는 규모, 효율, 속도를 구현하는데 어마어마한 효과를 발휘한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까지 만들어졌다. 규모를 만들어내고 더 많은 생산을 해내는 '니즈'를 실현시켜 준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 구호에 따라 '전진 앞으로!' 경쟁이 붙었다. 생산의 규모를 더욱 늘려주니 경제는 발전할 것이다. 단위 생산의 효율이 높아지니 수준도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IT가 전 산업으로 확장되면 니즈의 딜레마가 생겨난다. 자본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애초에 IT에게 미션으로 주어진 '구현할 니즈'가 이용자의 직접적인 니즈가 아닌 딜레마 말이다. 더 많은 생산, 더많은 효율에 대한 IT 시장의 니즈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 니즈를 수혜자는 이용자가 아니라 비즈니스의 수요자인 것이다. 정확히는 수혜자들은 생산자 들이다. 주로 생산자가 IT시스템의 수요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용자의 니즈는 더 많이, 더 빨리, 더 싸게가 아니다. 우리의 니즈는 더 나에게 맞게, 더 편리하게, 더 즐겁게 이다. 이 두 니즈의 사이는 분명한 간극이 있다. 결국 모든 것의 중심이 '사람' 중심인가 아닌가를 확인하는 과정 말이다.

기술은 이 자본주의의 니즈를 규모와 효율, 속도를 앞세워 거침없이 실현시킨다. 그리고 그 약점 또한 거침없이 실현시킨다. 아직 21세기의 인류는 자본주의의 취약한 점을 보완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는데 기술은 이를 돌아보지 않고 현재의 구조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Qui bono? 대체 누구의 니즈이고 누가 그 결과의 수혜자인가 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서나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IT 시스템의 사회구조화는 단순한 비즈니스 영역을 넘어 사회의 행태와 사람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혁명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혁명적 변화의 근본, 즉 무엇 때문에 이 변화가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고찰 없이는 니즈의 정의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 단편적으로 혹은 관행적으로 수용한다면 사회는 건전한 효율과 규모의 발전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퇴행적 갈등과 위축을 맞이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등장할 때처럼 절체절명의 기아와 전근대적 사회제도하에서 신음하고 있던 시절을 살고 있지 않다. 대량생산을 실행했고 제도와 문명은 인류를 위해 보다 차원 높은 다음 단계를 향해 나갈 만큼 발전해 있다. IT는 자본주의에 사람의 얼굴을 부여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아쉽게도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현재의 비즈니스 구조적으로는 생산이 중심이지 사람을 고려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영역이 그나마 '이용자의 니즈' 이다. 이용자의 니즈, 이 건조한 경제용어를 빌어 우리는 거기서부터 그 안에서 사람의 촉촉함과 온기를 끊임없이 느끼려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사람의 행복을 끄집어 내야 한다. 그 신경의 민감도가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열쇠일지도 모른다.

노수린 suerynnroh@gmail.com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 언론홍보 석사, MBN 기자, KTF 해외마케팅과 플랫폼 기획팀장을 거쳐, IoT스타트업 운영과 컨설팅 및 교육 강의를 해왔다. 현재 한림대 사회학과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IT는 사람의 행복과 가치추구를 위해 서비스와 콘텐츠로 관계를 연결하는 장치라 생각하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용한 오픈 IT를 기반으로 사용자UX가 주권처럼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며 많은 이들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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