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4시경 밖이 소란스럽다. 테러라도 났나싶어 밖을 내다보니 젊은이들이 술에 취해서 미카엘의문에서 쏟아져 나온다. 마치 홍수에 개미집에서 탈출하는 개미떼처럼 보인다. 주말 밤 올드타운 술집에서 뜨겁게 보낸 청춘들의 행렬이다. 노세노세 젊어서 노는 것이 부럽다. 나이 들어 초저녁부터 잠이 쏟아지니 펍에서 구경하는 것도 벅차다.

일요일 아침은 10시부터 준단다. 10시까지 참을 수가 없어서 컵라면 하나를 먹었다. 비상시에 먹으려고 가져온 컵라면을 거의 다 먹었다. 새벽에 깨는 것이 비상상황이다.

올드타운 아침산책
올드타운 아침산책

한적한 올드타운을 산책하려고 식전에 나섰다. 대성당에서 오르간소리가 흘러나온다. 굳게 닫혔던 문이 열려있다. 미사에만 열어주는 모양이다. 천주교신자는 아니지만 맘이 깨끗해지는 기분이다.

미카엘문을 통해서 올드타운으로 갔다. 밤새 요란한 흔적을 치우느라 분주한 모습들이다. 일요일아침인데도 관광객들이 꽤 보인다. 중국단체관광객들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크리스마스시장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열린 가게들도 꽤 보인다. 밤새 먹거리들을 판 모양이다. 구시청사 옆 성당에서 합창 소리가 들려서 들어갔다. 성당 미사는 이방인에겐 성스러운 콘서트를 만나는 기회다. 혹시나 방해될까봐 구석에서 조용히 들었다. 일요일아침부터 귀가 호사를 누린다.

하수구에서 기어나오는 츄밀과 함께
하수구에서 기어나오는 츄밀과 함께

산책하다가 츄밀을 만났다. 평소에는 사진 찍는 줄이 길다는데 아침이라 줄 서지않고 찍을 수가 있다. 나도 서있는 아가씨에게 부탁해서 한 장 찍었다. 브라티슬라바에는 재미난 동상들이 많다.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폴레옹동상은 결국 못 찾았다. 크리스마스시장이 서는 바람에 무대 속에 묻힌 모양이다.

숙소로 오는 길에 미사에 한번 더 참여했다. 일요일을 중앙광장근처에서 보낸 보람이 있다. 컵라면먹은것이 소화가 다되어서 출출해졌다. 숙소에 도착하니 식당이 열려있다.

클럽분위기 아침식당
클럽분위기 아침식당

식당 겸 술집 클럽 다 겸하는 모양이다. 영국스타일로 주문해서 남김없이 다 먹었다. 베이컨을 바싹 구워서 맛있다. 돼지삼겹살이 내 배로 붙어서 나의 삼겹살이 될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다 먹어치웠다. 먹고 바로 후회했다. 커피를 한잔 달라고 해서 방으로 왔다. 아침부터 찬 거리를 쏘다녔더니 몸이 으슬으슬하다. 일단은 쉬기로 했다. 레지던스숙소로 하길 잘했다. 집 같아서 짬짬이 쉬기가 좋다.

누워서 쉬다 보니 좀이 쑤신다. 브라티슬라바 쇼핑몰쪽으로 가는데 큰 행사가 있다.

각국 대사관이 참여하는 크리스마스 바자회
각국 대사관이 참여하는 크리스마스 바자회

뭐하냐고 물으니 각국의 대사관들이 모여서 크리스마스 바자행사를 한단다. 입장료가 4유로다. 자선행사라기에 기분 좋게 내고 들어갔다. 브라질이 제일 먼저 눈에 뜨인다. 일본도 보이고 중국도 보이고 베트남도 보인다. 심지어는 인도네시아도 보인다. 내가 모르는 나라도 있다.

아무리 찾아도 태극기가 안보인다
아무리 찾아도 태극기가 안보인다

근데 우리나라가 없다. 각국의 음식도 선보이고 특산물도 판매한다. 일본은 옷도 제대로 차려 입고 사케까지 판다. 우리나라 불고기나 잡채 등이 차려졌으면 이 세계를 접수하는 건데 아쉽다. 삼성, 기아, 현대 등 주재원도 많이 산다는데 아쉽다. 재미있는 건 중국과 대만이 함께 참여했는데 서로 자리가 멀리 있다. 북한도 없고 우리도 없다. 혹시나 싶어서 2층에 올라가 내려다봐도 안보인다. 기운빠져서 그냥 나왔다.

태극기 휘날리는 한국대사관
태극기 휘날리는 한국대사관

쇼핑몰로 가는 길에 우리 대사관이 있다. 크리스마스바자에서 못봐서 아쉬운 태극기를 한참 바라봤다. 집 떠나면 집이 그립듯이 나라를 떠나 방황하니 태극기만 봐도 설레인다.

쇼핑몰 도착
쇼핑몰 도착

쇼핑몰에 도착했다. 외관은 현대적으로 잘 지었다.

쇼핑몰 내부
쇼핑몰 내부

내부도 멋지다. 언뜻 보기엔 없는 것 없이 다 있어 보인다. 매장에 들어가 물건을 보면 왠지 뭔가 허전하다. 구매욕구가 없어서 대충 돌아보고 나왔다.

성마틴성당
성마틴성당

강변을 따라 한참 걸어서 성마틴성당으로 갔다. 슬로바키아 최대의 성당인 듯 보인다.

성마틴성당 내부
성마틴성당 내부

겉으로 보기에도 웅장한데 안에 들어가니 입이 딱 벌어진다. 브라티슬라바의 랜드마크로 손색이 없다.

시티월
시티월

시티월을 따라서 브라티슬라바성으로 갔다. 석양이 지고 조명이 켜지기 시작한다. 올드타운도 하나둘씩 불이 켜진다.

성마틴성당이 돋보이는 도시
성마틴성당이 돋보이는 도시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며 저녁이 내려앉는 도시의 낭만을 만끽했다. 저녁을 먹으려고 미리 알아둔 이태리식당으로 갔다. 문을 닫았다. 할수없이 주위를 방황하다 슬로바키아전통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분위기가 딱 맘에 든다. 음악도 전통음악을 틀어줘서 좋다

화이트 핫와인
화이트 핫와인

화이트 핫와인과 돼지고기요리를 시켰다. 화이트 핫와인은 처음 먹어본다. 레드와인보다 깔끔하다. 시나몬과 과일조각들도 그대로 담아 나와서 분위기가 산다.

바삭한 껍질이 맛있는 돼지요리
바삭한 껍질이 맛있는 돼지요리

돼지고기요리에 수제비를 구운 듯 한 것이 곁들어 나왔다. 우리 떡볶이느낌이다. 돼지 껍질이 바삭 구워져 맛있다.

가수들이 무대에서 노래를 하고 사람들은 서서 흥에 겨워 듣고있다. 아기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이 많다. 아기를 안고 춤추는 사람도 있고 아빠 어깨를 의자 삼아 앉은 아기들도 있다. 울 아들 애기 때 뮌헨 맥주 축제 갔던 생각이 났다. 그 시절이 너무 그립다. 애들 공부시키기보다 함께 많은 추억을 만들기 잘했다. 기억할 것이 많아 그리우면서 행복하다.

보온병에 핫와인을 사서 담고 감자부침개를 샀다. 새벽에 잠 깨서 먹을 비상 식량이 필요하다. 핫와인과 감자부침개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행복하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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