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눈비가 내린다
아침부터 눈비가 내린다

친구시모님의 부고를 받았다. 친한 친구인데 맘이 편치 않다. 90넘으신 나이에도 정정하시던 분이시다. 나이 들면 예측불허라더니 허망하다. 아버지께 전화 드려서 추운 날씨에 조심하시라 당부 드렸다. 망인을 위해 촛불 하나라도 켜드리고 싶어서 나섰다.

올드시티로
올드시티로

월요일이라 올드타운안 성당들은 문이 닫혀있다. 어제 성마틴성당의 미사 시간이 12시였던것이 생각났다. 성마틴성당으로 갔다.

성마틴성당
성마틴성당

성마틴성당은 특별한 역사를 가진 곳이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헝가리국왕으로 대관식을 치른 곳이다. 베토벤의 장엄미사가 처음 열린 곳이다. 20명 가까운 헝가리왕들의 대관식이 여기에서 치러졌다고 한다.

천주교신자는 아니지만 역사적인 곳의 미사에 참석하고 싶어졌다. 아침에 눈이 내리더니 날이 개기 시작한다. 성당 입구에 관광은 1시부터 입장이 가능하다고 써있다. 오늘은 관광객이 아니라 미사에 참여하는거라 당당히 들어갔다.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평일미사라 오르간연주와 합창없이 예배만 본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가슴속 아래부터 뭔가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눈물이 콧물까지 동반해서 4줄기 강물이 되어 흐른다. 돌아가신 분의 영면을 빌어드렸다.

해가 나오니 성당 안이 어제와 다르다.

미사 후 제대로 보는 스테인드글라스
미사 후 제대로 보는 스테인드글라스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제대로 보인다. 빛의 항연을 제대로 느꼈다. 미사에 참여하려고 다시 오길 잘했다.

시티월을 따라 브라티슬라바성으로 갔다. 내부를 제대로 보고 성안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하고 싶었다. 어제 늦게 들어가서 야경만 보고 내려온 것이 아쉽다.

해가 나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 아쉽게도 월요일은 내부 관람이 안된단다.

성 안 레스토랑에서 본 풍경
성 안 레스토랑에서 본 풍경

레스토랑은 영업중이다. 소꼬리 탕과 라비올리를 시켰다.

화이트 핫와인
화이트 핫와인

화이트 핫와인도 시켰다. 예전에 독일에서 겨울이면 즐겨마시던 글뤼바인을 원도 없이 매일 마신다.

소꼬리탕
소꼬리탕

소꼬리탕에 후추를 뿌리니 우리나라 갈비탕맛이 난다. 맛있어서 남기지않고 다 먹었다. 라비올리도 맛있다. 다 먹고 나니 배가 빵빵 터질 것 같다. 기분 좋게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한국말이 들린다.

사진찍고 있는 한국인 형제와 만남
사진찍고 있는 한국인 형제와 만남

비슷하게 생긴 두 청년이 사진을 찍고있다. 반가워서 아는 척을 했다. 대전에서 왔단다. 우리 애들 또래의 형제란다. 형은 우리 아들하고 신기하게도 닮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같이 걸었다.

형제가 알려준 UFO타워
형제가 알려준 UFO타워

청년들 덕분에 UFO타워를 알게 되었다. 매일 보던 탑인데 무심코 봐서 몰랐었다. 매의 눈으로 자세히 보니 안에 사람들이 보인다. 내 눈에는 타워로 가는 길이 보인다.

형제에게 같이 가자고하니 어떻게 가냐고 갸웃거린다. 내가 앞장서서 데리고 갔다. 길을 찾아가니 형제가 감탄한다. 내가 끌고간거라 입장료를 내줬다. 배낭여행자가 감수하기엔 다소 무리한 금액이다. 별것도 아닌 것에 너무 감사하니 내가 오히려 민망하다. 자식 같아서 보여주고 싶고 해주고 싶다.

UFO타워전망대에서 바라본 다뉴브강
UFO타워전망대에서 바라본 다뉴브강

타워 위에 올라가니 브라티슬라바 멀리까지 보인다. 오스트리아국경도 보인다. 셋이서 감탄사를 계속 질렀다.

동행이 있으니 사진도 찍어주고 좋다. 오랜만에 실컷 수다도 떨었다. 형제가 너무 좋아하니 혼자 보는 것보다 열 배는 좋다.

같이 밥이라도 먹고싶은데 나도 배가 부르고 형제도 막 밥먹고 나온거란다.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유럽에 온지 두달동안 여행을 하는중이란다. 래는 어쩌냐고 물으니 해야한단다. 내 숙소에 세탁기가 있으니 가져오라고 했다.

같이 시내를 돌고 각자 숙소로 갔다. 내일 떠날 짐을 정리하고 쉬었다. 형제가 놀러왔다. 2시간여동안 서로 정보도 교환하고 남은 일정에 대해서도 의논했다. 덕분에 요즘 젊은이들 여행트렌드를 알게 되었다. 아무리 봐도 형이 우리 아들을 닮았다. 아들 사진을 보여주니 동생이 놀란다. 객지에서 아들을 만난 기분이다. 내일 비엔나로 간단다. 나와 버스 시간이 달라서 내가 먼저 비엔나에 도착한다. 덕분에 유럽버스여행정보까지 얻었다.

2달동안 동유럽여행에 1인당 2백만원정도를 쓴단다. 부모의 도움없이 다니는 여행이라니 대견하다. 어릴 때부터 끌려 다녀서 여행 의욕을 상실한 우리 애들하고는 정반대다. 내가 묵는 숙소를 보고 돈 많이 벌어서 나이들면 나처럼 여행다니겠다고 의욕을 불태운다. 젊고 건전한 열의를 보니 뿌듯하다. 함께 반나절을 보낸 보람이 있다. 삶의 의욕이 내게 전염되어 나까지 힘이 난다.

내일 비엔나에 도착하면 서로 연락하기로 하고 형제는 떠났다. 아쉽게도 버스 시간이 다르다. 오후 내내 젊고 발랄한 형제 덕분에 에너지만땅 충전했다. 아들과 함께 여행 다닌 기분이다.

오늘 찍은 사진을 보다 깜짝 놀랐다. 형제를 만나서 함께 보낸 얼굴이 활짝 웃고 있다. 얼굴은 마음의 도화지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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