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장윤정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only one impulsive tantrum away

발행일시 : 2017-12-13 00:00
[장윤정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only one impulsive tantrum away

그건 인내심이 아니었고, 마치 혈관처럼 가슴에 연결된, 그러나 보이지 않고 기회만 노리는 '뇌관’이었다. 누군가가 사소하게라도 툭툭 건들면, 곧 그 순간이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마자 순간 가속을 높이는 100미터 달리기 선수마냥 '땅’하면 '빵’하고 솟구칠 준비를 하는 것이 보인다.

[장윤정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only one impulsive tantrum away

'화(火, anger)'는 내게 그런 것이었다. 숨죽이고 있다가 한순간에 요란하게 폭발해버리고, 남는 것이 없는 것. '남는 것이 없다’는 이 사실에 스스로가 주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장은 순간의 감정 해소가 중요했고, 그것밖에 사실 눈에 보이지 않았다.

묵혀 둔 세월이 한참이라 잊어버린 그 실체를, 알고 보니 그동안 '강한 인내심’이라는 그럴싸함으로 포장해서 감추고 있었다. 한계가 드러나자 여기저기 무섭게 터지기 시작했다. 항상 시작은 별거 아닌 일이다. 언제나 별거 아닌 것에 '화’가 폭발했다. 최소한의 위안이라고 할 만한 것은 화를 자주 내지 않는다는 것뿐. 그러다 남는 게 없는 이 장사를 잊을 만하면 왜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다행히 좋은 기회가 찾아 왔다. 적절한 때에 우연히 한 친구를 만났다. 내 안에서 숨죽이며 언제든지 터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화’를 스터디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그 친구는 끊임없이 물었고, 내 이야기를 기다렸다. 쌓여가는 시간들만큼, 내 '화’는 순한 '양’이 되기 시작했다. 보잘 것 없이 보인 '화’의 이유는 사실 오랫 동안 나를 괴롭혀온, 들여다 보지 못하고 소외된 내 안의 상처로 전부 의미 있는 소중한 것이었다. 좋고 나쁨을 떠나 내면의 상처를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화를 일으키는 보잘 것 없는 그 이유들이 소중해졌다.

이때도 쉽지는 않았지만 감정의 편 가르기는 하지 않았다. 그것이 긍정이냐 부정이냐 등의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판단은 하지 않았다. 다만, '있었지’ '그랬었지’하며 근본 원인을 들여다보려고 애를 썼다. 실패할 때도 있었고, 쉽게 극복되지 않아 낙담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화를 통해 내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과정들이 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폭발한 '화’의 끝에 찾아온 '공허함'과 '제자리걸음’ 혹은 '뒷걸음질’로 관심이 옮아갔다. '화’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그 순간들의 느낌을 기억하려는 시도가 쌓여가면서, 뒤끝의 불편함에 당황스러웠다.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과 '화’가 남기는 내면의 상처가 깊어간다는 사실때문에.

나를 완전히 압도하는 '화’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는 다른 감정까지 살펴보는 과정까지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었다. 나눠 놓고 보면 달라보여도, 출발점은 같은 셈이다. 한 감정이 오픈되면, 감정 그 자체에만 매달리던 시간들이 줄어들자, 감정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시간들은 늘어갔다. 인간의 감정의 깊이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 대상에 따라 하나의 감정도 대상의 수만큼 확대된다는 것도 차츰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장윤정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only one impulsive tantrum away

2017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핵무기폐기국제운동 아이캔(ican)의 사무총장은 수상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Our mutual destruction is only one impulsive tantrum away."

한순간의 충동적인 화가 핵전쟁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다. 한반도의 상황과 비추어, 결코 흘려들을 수 없었다. 힘없는 나의 화도 주변을 힘들게 하거나 자신을 괴롭히기에 충분한데, 힘있는 개인의 충동적이고 순간적인 화는 상상할 수 없는 재앙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있다.

화는 무조건 참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누르기만 하면 언제든지 폭발한다. 화는 강하고 대단히 거친 감정이다. 용기있게 바라보는 것이 처음 해야 할 일인듯 싶다. 외면하고 성내고, 돌아서는 반갑지 않은 이 악순환을 끊어내려면 말이다.

가끔 불쑥 '화’가 손님처럼 찾아온다. 더이상 손님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장윤정 eyjangnz@gmail.com 컴퓨터 전문지, 인터넷 신문, 인터넷 방송 분야에서 기자로, 기획자로 10여년 간 일했다. 틈틈이 출판 기획 및 교정을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살면서 본 애보리진과 마오리족의 예술, 건강한 사회와 행복한 개인을 위한 명상과 실수행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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