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안중찬의 書三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끝과 시작’ -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하루도 없다.

발행일시 : 2017-12-29 00:00
[안중찬의 書三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끝과 시작’ -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하루도 없다.

안개 짙은 겨울 아침, 가까운 사람이 건강관리를 소홀히 하다가 큰 병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서성이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을 막지 못한 어리석음이 한스러웠기 때문이다. 무기력한 시간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준 것은 5년 전 세상을 떠난 위대한 폴란드 시인의 단조롭고 깊은 시선이었다. 인생의 정수를 담아 일획을 긋는다는 명필들의 삶처럼 지혜로운 사람이란 어쩌면 끝이 좋은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은 참으로 중요하다는 말씀을 되새기며 무거운 겨울 햇살을 느끼고 싶었다.

잃어버린 시간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던 시인의 고백은 뭉클했다. 최고의 전성기였던 그 시절에 ‘다리 위의 사람들’을 통해 발표된 그 시는 내 청춘을 압도했었다. 지혜는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는 성찰의 언어들에 호흡이 멈추던 날들의 기억은 강렬했다. 애초부터 나이 따위를 헤아릴 생각은 꿈에도 없었으며 아는 것이 별로 없었지만, 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음도 감추지 않았다. 인생이란 아무리 긴 듯해도, 언제나 짧은 법이라는 일상의 언어가 그대로 시가 되는 사람이었다.

[안중찬의 書三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끝과 시작’ -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하루도 없다.

인생이란······ 기다림.
리허설을 생략한 공연.
사이즈 없는 몸.
사고가 거세된 머리.
내가 연기하고 있는 이 배역이 어떤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 257쪽, ‘인생이란······ 기다림(Życie na poczekaniu)’ 도입부


우리는 노벨문학상에 열광하면서도 117년 노벨문학상 역사상 고작 몇 명의 수상자를 기억할 뿐이다. 1901년 제1회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쉴리 프뤼돔’이라는 사실도 잘 알지 못한다. 이러한 현실을 잘 알고 있는 프랑스 작가 두 사람이 최근에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198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클로드 시몽의 유명한 작품 일부를 발췌해 글쓴이를 밝히지 않고 유명 문학출판사 편집자 열아홉 사람에게 보내 출판 의사를 타진한 것이다. 결과는 12명의 출판 거부와 7명의 무응답으로 참담했다. 작가의 이름과 배경을 설명했더라면 다른 결과가 있었을까?

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ława Szymborska)도 그 난해한 이름 탓에 쉽게 각인되지 못한 199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2차 대전 이후 모국에 등을 돌린 슈무엘 아그논(1966),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1976), 체스와프 미워시(1980) 등 폴란드 출신 망명파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들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신토불이 폴란드 작가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호명하며 ‘모차르트의 음악같이 잘 다듬어진 구조에, 베토벤의 음악처럼 냉철한 사유 속에서 뜨겁게 폭발하는 그 무엇을 겸비했다’고 칭송했고, 이내 ‘시단의 모차르트’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모든 것” ㅡ
이것은 뻔뻔스럽고 주제넘기 짝이 없는 낱말이다.
따옴표 안에 집어넣고, 매우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마치 빼먹은 건 하나도 없다는 듯,
집중하고, 아우르고, 수용하고, 포함하는 척
그럴듯하게 연기를 하고 있다.
그저 순간적인
폭풍의 끝자락에 불과할 뿐이면서.
- 410쪽, ‘모든 것 (Wszystko)’ 전문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연설문에서 쉼보르스카가 강조한 것은 끊임없는 질문이었다. 진정한 시인이라면 자기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나는 모르겠어’를 되풀이해야만 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라고 했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지 않는 모든 지식은 결국 열정을 잃게 되고 소멸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경고였다. 우리가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 어느 것 하나 결코 평범하거나 일상적일 수 없다는 주장과 함께하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평범함에 영혼을 불어 넣는 지혜롭고 위대한 시들은 그 바탕 하에서 완성된 것이다.

문학은 특히 시는,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많은 수난을 겪지만 훌륭한 번역자를 만나면 안전해진다. 이 책을 번역한 한국외대 최성은 교수는 쉼보르스카가 소천하던 2012년에 폴란드 정부로부터 십자 기사 훈장을 받는 것으로 제 2의 창작 능력을 검증받았다. 원문의 리듬을 찾아가며 번역시로 낭송해 보면 정성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단어의 절제와 단락의 균형이 적절한 변화를 통해 독자에게 다가온다. 원문에 많이 등장하는 ‘słowo’의 경우 ‘낱말’ 혹은 ‘단어’라는 두 가지로 풀이로 적절하게 배치하여기계적이지 않은 부드러움을 제공한다.

[안중찬의 書三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끝과 시작’ -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하루도 없다.

내가 “미래”라는 낱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그 단어의 첫째 음절은 이미 과거를 향해 출발한다.

내가 “고요”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나는 이미 정적을 깨고 있다.

내가 “아무것도”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이미 무언가를 창조하게 된다.
결코 무(無)에 귀속될 수 없는
실재하는 그 무엇인가를.
- 383쪽, ‘가장 이상한 세 단어 (Trzy słowa najdziwniejsze)’ 전문


쉼보르스카는 독자의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자극하는 시인이다. 특별한 꾸밈없이 단순한 몇 마디로 유쾌하면서도 날카로움의 정수를 보여주는 ‘가장 이상한 세 단어’를 보라. 미래(Przyszłość), 고요(Cisza), 아무것도(Nic)를 차례로 입에 올리고, 입에 올리는 그 순간에 단어의 의미가 무색해지는 경험을 연출하는 마법사와 같다. 폴란드어 고유의 리듬으로 완성도 높은 틀을 만든 다음, 그 안에 역사와 문학에 대한 고찰이나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인간 실존 문제에 대한 철학적 명상을 군더더기 없이 잔뜩 채웠다.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가장 천박한 단어는 너무나 거룩하다.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가장 적대적 단어는 퍽이나 온건하다.
······
우리가 내뱉는 말에는 힘이 없다.
그 어떤 소리도 하찮은 신음에 불과하다.
온 힘을 다해 찾는다.
적절한 단어를 찾아 헤맨다.
- 14쪽, ‘단어를 찾아서(Szukam słowa)’의 부분


이 아름다운 녹색 시선집의 첫 번째 수록 작품은 ‘단어를 찾아서(Szukam słowa)’로 1945년 폴란드일보에 발표한 등단작이다. 수많은 단어의 오염을 경험하며 살아온 우리들에게도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시다. 외래어의 남발과 정체불명의 신조어 등 평범한 일상의 언어가 훼손된 것은 애교로 봐줄 수도 있을 만큼 심각한 언어 왜곡의 시대였다. 정의사회구현, 건전가요, 보통사람, 순수시민, 친환경녹색성장, 국민행복시대, 진실한 사람, 자유대한민국 등 의미가 변질된 단어들이 더욱 쓰라리게 다가온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해에 능욕 당한 땅에서 피어난 꽃처럼 묵직한 시다. 도덕 불감증의 시대를 관통하며 부끄러운 단어들의 틈바구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른 강렬한 펜의 위력이 느껴진다. 나치 독일의 폭력성과 전쟁을 둘러싼 수많은 인간군상이 사용했던 단어들이 내포한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스물두 살의 용기는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그 청춘을 가로막았고 자기검열의 시대에 체제순응적인 두 권의 시집은 시인 스스로를 위축시켰다.

세 번째 시집을 발표하면서부터 억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자유로운 글을 쓸 수 있었다.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문학성에 집중했고, 다시 20년쯤 흐른 뒤 스스로의 위상을 찾으며 자기 자신을 향한 끊임없는 질문과 함께 용기 있는 시인으로 복귀했다. 괴테 문학상과 헤르더 문학상, 펜클럽 문학상을 휩쓸며 거침없이 달렸다. 소련의 붕괴와 함께 폴란드 정치 상황이 요동치는 위기 속에서도 다른 문인들과 달리 폴란드에 머물며 절제된 모국어로 진정한 시인의 용기를 보여줬다. 새천년에도 시대정신을 유지하는 끊임없는 질문으로 왕성한 노년을 보냈다.

[안중찬의 書三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끝과 시작’ -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하루도 없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 34쪽, ‘두 번은 없다(Nic dwa razy)’ 도입부


간결하면서도 냉정한 ‘두 번은 없다’를 낭송하노라면 인생과 인간에 대한 통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겉보기에 유사하지만 서로 다른 투명한 물방울처럼 각각 고유한 존재임을 강조하며 마무리되는 이 시는 폴란드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그 나라의 국민시다. “한 편의 시를 봄에 쓰기 시작해서 가을에 가서야 완성하는 경우도 많다”는 시인의 고백을 생각하게 한다. 등단할 때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전달 방법에 대한 확고한 방식을 유지해온 일관성 있는 시인다운 탁월한 작품이다.

팔십구 년 동안 다듬고 또 다듬은 문장으로 하나의 시를 완성시키며 완벽주의를 추구했던 시인은 이제 세상에서 사라졌다. 결혼식과 돌잔치보다도 장례식으로의 초대가 더 많아지면서 중년의 삶이 무겁게 다가오는 독자는 그 완벽주의에 늘 고개 숙인다. 삶과 자연의 이치에도 시작과 끝을 대비하는 지혜와 용기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물이나 현상을 함부로 재단하거나 단정 짓지 않고 투철한 성찰의 과정을 거쳐 대상의 본질에 접근하는 노력을 보여주고 떠난 위대한 시작(詩作)들로 세상은 분명히 더 아름다워졌을 것이다.


모든 전쟁이 끝날 때마다 (Po każdej wojnie)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만 하리. (ktoś musi posprzątać.)
그럭저럭 정돈된 꼴을 갖추려면 (Jaki taki porządek)
뭐든 저절로 되는 법은 없으니. (sam się przecież nie zrobi.)
- 325쪽, ‘끝과 시작(Koniec i początek)’ 도입부


전쟁 같은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새로운 날에 누군가 또 태어나고, 누군가 또 소멸되어 갈 것이다. 지나온 세월을 정리하고, 새로운 다짐과 각오를 다지는 연말연시에 잘 어울리는 책이다. 책은 반드시 읽기 위해 구입하지 않아도 된다. 서가에 나열된 책등을 바라보며 사는 것도 그 나름 권장할만한 독서법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큰형이 시골집에 두고 간 ‘키에르케고르 사상집’이 어린 내 가슴에 잔잔한 파도를 일으킨 경험으로 하는 말이다. 어떤 책은 그 제목과 표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끝과 시작’은 틀림없이 그런 책이다.

안중찬 ahn0312@gmail.com 주)교보피앤비 기획실장 / 장거리 출퇴근의 고단함을 전철과 버스 안에서 책 읽기로 극복하는 낙관적이고 사교적인 생활인이다. 컴퓨터그래픽과 프로그래밍 분야 11권의 저서와 더불어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으로 한 권의 책에서 텍스트, 필자, 독자 자신을 읽어내는 서삼독의 실천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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