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필자가 거주하는 프로비던스 지역의 뉴스를 검색했다. 프로비던스는 전통적으로 히스패닉계 이민자가 많이 사는 동네로 비영리 협동조합 형태 수퍼마켓을 위한 모금 운동에 대한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주유소가 있었던 오염된 빈터를 환경 기준에 맞게 정화하고 거기에 수퍼마켓용 새 건물을 지을 계획이다. 환경 문제를 해결하면서 지역 상업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는 사업이다. 이 계획을 주도하는 계층은 주로 10년 사이에 해당 지역에 새로 유입한 대졸 출신의 젊은 백인들로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이다.

그런데 지역에 도움이 될 만한 계획을 찬성하지 않는 진보 세력이 있다. 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걱정하는 세력인데 현재 히스패닉계 이민자와 관련이 있다. 미국의 다른 도시 협동조합 수퍼는 일반 수퍼보다 비싸고 고객층은 주로 고학력 백인이다. 이 지역은 젊은 백인의 유입으로 주택 임대료가 많이 올랐다. 그런데 이런 형태의 수퍼가 이 지역에 들어오면 백인의 유입이 가속화되고 임대료가 더 빠른 속도로 상승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협동조합 수퍼를 비판하는 사람은 시가 나서서 빈터에 저렴한 사회 주택을 짓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같은 날에 프로비던스에서 먼 덴버 시에 있는 한 카페는 “젠트리피케이션 덕분에 동네가 좋아졌다”는 간판 때문에 그 카페 앞에서 항의하는 시위까지 벌어졌다는 기사도 읽었다. 덴버에 가 본 적이 없어서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기사에 따르면 시내에서 가까운 히스패닉계 이민자가 많이 사는 지역에 최근 젊은 고학력 백인이 많이 들어와 임대료 상승은 물론 서민 주택을 철거하고 비싼 매매용 고층 아파트가 많이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오랫동안 그 지역에 거주했으나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주민들은 빠른 속도로 쫓겨나고 있다.

프로비던스와 덴버의 사례를 보면 미국에서 일어나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논쟁은 뿌리 깊은 사회적 갈등을 반영하는 것이다. 프로비던스의 오염된 빈터에 협동조합 수퍼를 짓는 계획이 일각에서는 찬성보다는 오히려 침투의 상징이 되어 반감을 사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협동조합 수퍼 찬반 논쟁은 같은 진보주의자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보수는 어떤 의견일지 궁금하다.

프로비던스 협동조합 수퍼에 대한 보수의 입장을 찾지 못했지만, 도시를 보는 보수의 일반적 입장을 보면 그 생각을 쉽게 알 수 있다. 보수는 지역의 공동체보다 부동산 프레임으로 본다. 즉, 땅과 건물은 개인 것이고 법적 허용하는 범위 안에 개인이 알아서 활용하면 된다. 그리고 한 지역의 변화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정부가 개입할 만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빈터를 수퍼의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환영할 것이고 그 수퍼가 상업적으로 성공하면 축하할 만한 일로 본다.

덴버의 카페에 대한 글은 보수적 경제신문인 ‘더 월 스트리트 저널’에서 찾았다. 이 기사 역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변화를 좋게 평가했다. 지역 인구가 많아지면서 사업도 활성화되었고 지역도 좋아졌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반대하는 사람은 경제를 모르면서 지역 현실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보는 세 가지 입장이 있다. 사회적 평등을 구축하려고 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고 공공의 역할 확대를 주장하는 그룹, 협동조합 수퍼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을 비판하면서 ‘살기 좋은 동네’를 주장하는 그룹,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부동산 시장의 자유를 주장하는 그룹이다. 이 세 그룹 사이에 가장 큰 차이는 지역 변화에 대한 입장이다. 첫 번째 그룹은 지역 변화를 원하지 않다. 두 번째 그룹은 ‘허락된 변화’, 즉 취향과 유행에 맞는 변화를 원하다. 세 번째 그룹은 변화가 발전이라고 생각하고 변화가 많은 지역은 발전하는 지역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회적 논쟁이 그렇듯이 개인의 경험과 가치관에 따른 문제이므로 다양한 목소리가 정치에 참여해야 사회적 합의 속에서 바람직한 방안을 찾을 수 있다. 현재 미국을 보면 대부분의 지역 정부들이 변화가 발전이라는 생각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어 변화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정치의 근본적인 변화는 업적이 될 수 있어 정부 입장에서는 변화를 좋아한다. 반면에 많은 시민 단체는 지역 변화를 반대하면서 이미 개발의 편을 둔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지역 정부와 시민 단체 사이의 논쟁 속에서 주민은 여전히 생활하고 있고, 상점도 운영되고 있고 오염된 빈터도 존재하고 있다. 교육, 범죄, 교통 시설이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큰 변화는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역 정부를 믿지도 않고 시민 단체와는 정서적으로 거리가 있어 아예 논쟁을 피하는 ‘침묵하는 다수’가 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침묵하는 다수’의 의견은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정치 제도가 변하지 않은 한 ‘침묵하는 다수’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적다. 지역과 도시마다 조금 다르지만, 현대 일반 도시가 선거를 통해서 시장과 시의원을 뽑는다. 이 과정에서 개발을 원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목소리가 크고 ‘침묵하는 다수’는 그대로 있다. 개발은 경제적 이익에 관계하는 문제라 영향력은 제일 크지만, 변화를 원하지 않은 사람은 결집을 잘하므로 무시하기 어렵다.

여기서 대안이 있다. 민주주의의 출생지 아테네는 추점을 통해 시민을 행정에 참여시켰다. 한 번에 몇 명을 뽑고 팀으로 일을 배우고 활동했다. 많은 시민 참여를 위해 재임은 할 수 없었다. 미국 법조계는 이미 배심제를 추첨을 통해 뽑아 의무적으로 참여시킨다. 현대 투표와 군 복무는 선택이지만, 배심제만 시민의 의무이다.

시 의회의 크기와 구성은 도시 마다 달라 작을 경우에 추첨을 통해 뽑은 ‘시민 참여단’의 대표 한 명은 시 의회에 참여하고 ‘시민 참여단’이 합의한 대로 결의에 투표할 수 있다. 의회가 클 경우 ‘시민 참여단’의 모든 사람은 의회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추첨을 통해 시민 대표를 뽑으면 건강 또는 다른 개인적인 이유로 못할 경우 다시 뽑으면 된다. 책임이 따르는 일이라 배심제처럼 소정의 수고료를 줄 수 있고 자료와 교통편의 등을 돕는 제도를 마련하면 된다.

‘시민 참여단’이 ‘침묵하는 다수’로 구성될 보장은 없지만 그 확률이 높다. 정치인과 시민 단체가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특정한 이익을 위해 보장한 이야기가 아닌 현실적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젠트리피케이션의 복잡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논의의 틀을 크게 넓힐 수 있다. 이것은 미국 도시에 해당하는 이야기만이 아니라 서울과 같이 시민 공동체 활동을 지원하는 한국 도시들도 생각할 만한 제도이다.

로버트 파우저 robertjfouser@gmail.com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미시간대에서 일어일문학 학사 및 응용언어학 석사,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와 일본 교토대에서 영어와 영어교육을 가르쳤고, 일본 가고시마대에서 교양 한국어 과정을 개설해 가르쳤다. 한국 사회를 고찰하면서 한국어로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을 출간했다. 취미는 한옥과 오래된 동네 답사, 사진촬영으로 2012년 종로구 체부동에 ‘어락당(語樂堂, 말을 즐기는 집)’이라는 한옥을 짓기도 했으며, 2016년 교토에서 열린 ‘KG+’ 국제 사진전시회에 사진을 출품했다. 현재 미국에서 독립 학자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어로 ‘외국어 문화사’를 집필 중이며 참여형 새로운 외국어 교육법을 개발 중이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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