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태어나자마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네 살에 첫 개인전, 십대에 책을 쓰고, 언론이 주목하는 인기스타였으며 세상을 떠나던 스물다섯 살까지 모두 1,600점 이상의 그림을 그린 천재 화가다. 태어나자마자 그림을 그렸다니 놀랍지 않은가? 사실은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어떤 평범한 노인의 76세 이후에 펼쳐진 인생 2막에 대한 이야기다. 남북전쟁은 물론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전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후예로 태어나 101살을 훌쩍 넘긴 한 미국 노인의 뒤늦게 시작된 장밋빛 인생을 향한 찬사다.

늘그막에 화가로 변신한 여자의 일생을 생각해보라. ‘여자의 일생’이라 하면 모파상의 소설 속 주인공 ‘진’의 비극적인 삶으로부터 시작되는 부정적 이미지가 있다. 사랑에 실패하고 자녀에 상처받고 말년에 통곡하는 뭔가 고생 잔뜩 비참한 우여곡절의 그런 느낌이지만 이 여인은 달랐다. 19세기 중반,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고생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는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따뜻했고, 아버지의 사랑은 깊었으며, 남편과 함께했던 날들에 감사했고,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자존감 높은 행복한 인생이었다.

“나는 참 행복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물론 나에게도 시련이 있긴 했지만 그저 훌훌 털어버렸지요.
나는 시련을 잊는 법을 터득했고,
결국 다 잘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려 노력했습니다.“ - 135쪽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는 1860년 9월 7일, 푸른 초원과 숲에 둘러싸인 미국 북동부 어느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일손을 돕고, 오빠들과 뛰어놀며 여동생들도 돌보는 착한 시골 소녀였다. 제대로 된 이름도 갖지 못했고 학교에 다니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열두 살부터 15년간 이웃 마을 부잣집에서 식모살이를 했다. 가난하지만 성실한 일꾼 토마스를 만나 결혼한 것은 스물일곱 때였고, 사십 년의 행복이 사별로 끝난 뒤, 조용히 그렇게 인생을 마감할 줄 알았는데, 뒤늦게 인생의 전성기가 찾아왔다.

모지스 할머니(Grandma Moses)의 고백과 삽화들은 기억의 소환이다. 전개되는 이야기 대부분은 화가이기 이전의 인생 1막에 관한 것이고, 그 회상에 적절한 자신의 그림들이 골고루 배치된 따뜻한 회고록이다. 어린 시절 빨간 드레스를 입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거푸 까먹은 것도 모자라 붉은 벽돌색 드레스를 사다준 것에 실망한 마음이나, 다양한 빛깔 색종이를 오려 놀던 기억, 예쁜 색상 양말에 대한 기억이나 붉은 분필로 벽에 그림 그리던 추억 등은 화가로서 타고난 재능에 대한 예고편과 같았다.

“예쁜 그림들을 좋아합니다. 예쁘지 않다면 뭐 하러 그림을 그리겠어요? 그래서 뭘 그리면 예쁠지 열심히 생각해보고 그림을 그리지요. 옛날 풍경들을 그리는 걸 좋아해요. 오래된 건물, 다리, 여인숙, 옛날식 주택 같은 것들이요.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고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지요. 나는 항상 기억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주로 나의 공상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 263쪽

일곱 살에 큰 폭풍을 만났다. 건조했던 날씨와 물고기의 떼죽음을 선명하게 기억하며, 갑작스러운 천둥소리와 함께 시작된 공포의 날이었다. 집안의 일꾼 짐 벅이 헛간의 마차 안에 숨어 있다가 비바람에 집 앞 과수원까지 밀려간 것이나 붉은 흙이 씻겨 나오던 도랑의 풍경은 무섭고도 신기했다. 모든 게 엉망이 되었지만 오랜 가뭄으로 메말랐던 우물과 샘의 물이 차오르는 기쁨도 있었다. 그것을 보며 아버지는 ‘크게 잃은 것이 있으면 작게 얻는 것도 있는 법’이라는 인생의 교훈을 들려주셨다. 그날의 기억은 ‘폭풍우’라는 제목의 작품(51쪽)으로 남았다.

결혼과 동시에 남편을 따라 고향을 떠났다. 남부에서 함께 농장 일을 하면서 열 번의 출산 중에 네 번의 사산과 어려서 죽은 아이 하나가 있어서 3남 2녀의 자식을 키웠는데, 19세기에는 흔한 일이었다. 무일푼에서 일궈낸 삶의 보람을 긍정적인 말과 따뜻한 색감의 삽화로 표현 탓에 마치 아무런 고생 없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우아하게 살아온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다. 시럽 만들기와 사과 버터 만들기 등 고단한 노동을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시키며, 성실함과 근면함으로 세상의 흐름에 따라 점점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다.

“하루에 세 차례 우유를 휘젓기가 너무 힘들어서 버터 제조용 들통을 하나 주문했습니다. 들통으로 버터를 만드는 건 힘이 많이 들긴 해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 일을 하면서 멀리 골짜기를 내려다볼 수도 있었고 기차가 지나갈 때면 블루리지 산맥을 배경으로 증기가 뭉게뭉게 퍼져나가는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도 있었지요. 그때 그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흰색과 회색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131쪽

20년의 남부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이글 브리지로 돌아온 그녀는 손주 열한 명과 증손주 열일곱을 둔 할머니로 행복한 삶을 이어 나갔다. 자동차와 열기구, 비행기의 발명과 함께 세상이 좋아지는 것을 목격했지만, 때로는 정말 세상이 발전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졌다. 할머니가 어렸을 때는 여러모로 느린 삶이었지만 사람들이 저마다 즐겁고 행복하게 삶을 누렸는데, 요즘엔 다들 행복할 시간이 없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단지 모지스 할머니의 추억이 아름다운 까닭만은 아닌 것 같다.

고향 사람들이 열차를 대절해서 환송해준 아름다운 신혼의 기억은 뿌듯했다. 남쪽에는 검둥이와 벼룩이 들끓는다면서 더 이상 내려가지 말고 워싱턴에서 정착하라던 지금은 용납되지 않는 작은 역사도 품었다. 고양이에 끌려 다니던 첫딸 위노나가 세 살 터울의 남동생 로이드의 머리카락을 쥐어뜯던 질투 등 다섯 자녀를 키우며 생긴 이야기들, 장남 포러스트와 차남 로이드가 자매와 결혼하여 겹사돈이 된 사연, 막둥이 휴가 졸라 강아지 ‘브라우니’를 데려다 가족처럼 함께 살았던 소소한 이야기가 정겹다.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1909년에는 친정 부모님이 차례로 돌아가셨다. 훗날 남편과 사별하고 35년을 홀로 보낸 자신과 비교하면 축복일 수도 있지만 그분들이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난 것은 큰 아픔이었다. 남동생 조가 아내와 사별하자 젖먹이 엘리너를 데려다 키운 이야기, 전쟁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맏사위 잭의 이혼, 남편 토마스가 협심증으로 세상을 떠난 것은 절정의 슬픔이었다. 둘째 딸 애나가 내출혈 재발로 사망하자 사위 프랭크가 재혼할 때까지 손주들을 돌보며 함께 살았던 이야기, 막내아들 휴의 갑작스런 죽음 등이 잔잔하게 흐른다.

“내가 만약 그림을 안 그렸다면 아마 닭을 키웠을 거예요. 지금도 닭은 키울 수 있습니다. 나는 절대로 흔들의자에 가만히 앉아 누군가 날 도와주겠거니 기다리고 있진 못해요. 주위 사람들에게도 여러 번 말했지만, 남에게 도움을 받느니 차라리 도시 한 귀퉁이에 방을 하나 구해서 팬케이크라도 구워 팔겠어요. 오직 팬케이크와 시럽뿐이겠지만요. 간단한 아침 식사처럼 말이에요. 그림을 그려서 그렇게 큰돈을 벌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요. 늘그막에 찾아온 유명세나 언론의 관심에 신경 쓰기에 나는 나이가 너무 많아요.” - 272쪽

공식적으로는 일흔여섯에 화가로 데뷔했지만 사실 첫 작품은 쉰여덟에 남겼다. 거실을 도배할 때 벽난로 덮개에 바를 벽지가 모자라서 그곳에 종이를 한 장 붙이고 페인트칠을 한 것이 그것이다. 햇빛에 물든 호수를 그렸는데, 막내며느리인 도로시의 할아버지가 그림 솜씨에 놀라워하며 반드시 잘 보존하라고 호평한 것은 쑥스러웠다. 그 위에 다시 도배를 하면서 덧대어 까맣게 망각했던 것을 삼십 년쯤 후에 벽지를 떼어 내면서 다시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색이 좀 바랬지만 그 감격스럽고 훌륭한 작품은 이 책의 229쪽에 삽화로 수록되었다.

남편이 죽기 얼마 전에 아내의 그림을 칭찬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농장 아낙으로 늙어가는 동안 취미삼아 자수를 놓았는데 그저 평판이 좋았을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만성 류머티즘 때문에 코바늘 들기가 어려웠을 무렵 민간요법으로 통증을 고칠 수 있었지만, 관절염의 뻣뻣한 증세는 극복하지 못하고 힘든 노년을 보내야만 했다. 어느 날 여동생 셀레스티아가 놀러 와서는 언니의 털실 그림을 보고는 물감을 사용하는 것이 더 쉽고 예쁠 것이라고 조언한 뒤로 진정한 화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되었다.

뉴욕의 수집상 루이스 J.칼도어가 없었더라면 모지스는 동네 화가로 그냥 그렇게 조용히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우연히 그림을 본 그가 그림을 사갔고, 수시로 찾아와서 주문한 모든 그림은 금세 팔려나갔다. 80세에 개인전을 열었고, 88세에 ‘올해의 젊은 여성’으로 선정되었다. 92세에 이 책을 출간하면서 라디오와 TV에도 출연했으며, 93세에 타임지의 커버를 장식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백악관으로 초대했고, 케네디 대통령은 할머니의 영전에 ‘미국인의 삶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로 칭했다. 단지 화가로서가 아니라 한 인생을 놓고 볼 때 참으로 감동적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액자를 사고 그 틀에 맞게 목판을 자릅니다. 나는 돼지를 사기 전에 돼지우리를 만들자는 주의거든요. 그런 다음 목판에 아마씨 기름을 바르고 흰색 무광 페인트를 세 겹 칠해서 칙칙한 나무색을 가려줍니다. 두 겹을 칠하면 거뭇거뭇 목판이 보이고 세 겹을 칠하면 두께감이 생기기 때문에 색칠할 때 물감을 많이 안 써도 되거든요. 튜브 물감은 제법 값이 비싸서 아껴 써야 하지요. 이것 역시 스코틀랜드식 알뜰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제 목판 위에 풍경을 그리면 되는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자연의 풍경이라든가 낡은 다리, 꿈, 여름이나 겨울 풍경, 어린 시절의 추억 같은 것을 그립니다.” - 259쪽

특별한 스승도 없이 타고난 재능을 뒤늦게 세상에 알린 모지스 할머니는 독학파 화가답게 독창적인 길을 걸었다. 어려운 시절을 견뎌온 세대답게 많은 것에서 검소했는데, 그때마다 그것들을 스코틀랜드식 알뜰함이라고 표현하며 웃었다. 그렇게 만든 그림의 크리스마스 카드는 1억 장 넘게 팔려 나갔고, 가정용 커튼이나 그릇 그림으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20세기 중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할머니가 불편했던 기득권 미술계가 B급 작품으로 평가절하 했지만 세상은 잠시 주춤했을 뿐 꾸준히 모지스 할머니를 찾았다.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건강한 노인들은 행복한 사람이다. 80세의 미우라 유이치로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고, 90세 올리버 홈즈 판사는 미국 대법원의 판결문을 썼다. 91세 박양자 할머니는 패션모델로 데뷔했고, 92세 해리엇 톰슨은 7시간 24분 36초로 마라톤을 완주했다. 97세 김형석 교수는 왕성하게 강연과 저술 활동 중이며, 98세 조병만 할아버지는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출연했다. 101세의 베르던 헤이즈는 스카이다이빙을 즐겼고, 105세 잭 레이놀즈는 롤러코스터를 탔고, 106세 미야자키 히데요시는 100미터를 42초22에 통과했다.

출생기록이 명확하지 않은 옛날 노인들의 나이에 대한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되지만 131세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세이티 할머니는 아직도 노래하고 춤을 춘다. 기네스북에 오르든 말든 노년의 열정은 아름답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는 모지스 할머니의 말이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모두가 늦었다고 말할 때가 어쩌면 시작하기 가장 좋은 때라는 주장은 옳다. 모지스 할머니의 표현에 몰입되어 엉덩이가 무겁고 뚱뚱한 할머니를 상상하며 읽었는데, 독서 후 확인해보니 삐쩍 마르고 눈이 초롱초롱한 미소도 유쾌한 할머니였다.

모지스 할머니의 긍정적인 철학이 그려낸 행복한 그림들을 골고루 담아서 엮은 이 예쁜 에세이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한편의 동화다. 이 책과 같은 해에 탄생한 사람들은 이제 모두 노인이 되었지만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젊고 예쁜 책이다. 활자에 대해 부담 없이 물 흐르듯 번역된 매끄러운 텍스트와 모두 67점의 그림들이 조화로운 책이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좌절하지 않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을 찾는 사람들이 아름답다. 무술년 새해를 맞아 한 살 늘어난 나이에 마음 무거워진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매력적인 선물이다.

안중찬 ahn0312@gmail.com 주)교보피앤비 기획실장 / 장거리 출퇴근의 고단함을 전철과 버스 안에서 책 읽기로 극복하는 낙관적이고 사교적인 생활인이다. 컴퓨터그래픽과 프로그래밍 분야 11권의 저서와 더불어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으로 한 권의 책에서 텍스트, 필자, 독자 자신을 읽어내는 서삼독의 실천가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넥스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