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에는 금지에 대한 뉴스들로 논란이 일고 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영어교육 금지와 암호화폐 거래 금지로 떠들썩하다. 이들 뉴스를 보면서 1980년대 말 노태우 대통령 때 ‘과소비에 대한 전쟁’이 생각났다. 전국적으로 술집은 밤 12시에 강제로 문을 닫아야 했는데 서울에서 외국인이 잘 다니는 이태원만 더 늦게 문을 닫았다. 필자는 한 번 어떤 대학가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셨는데 12시가 될 즈음에 술집 주인이 가게의 셔터를 내리고 불을 끄고 계속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촛불을 켜고 술을 마시면서 주인과 손님들은 미묘한 연대감을 느꼈다. 몇 년 후에 이 규제는 풀렸고 과소비에 대한 전쟁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흘러갔다.

영어 유치원이든, 암호화폐이든, 과소비이든 정부의 규제 방향은 시민의 자발적인 행위들에 대한 통제이다. 즉, 어떤 행위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므로 사회의 안전을 위한 보호 조치로 금지는 마땅하다. 금연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시민의 공간을 위해 대중교통과 실내에서 금연해야 한다. 담배가 건강에 얼마나 해로운지 의학적으로 검증이 되었고 담배 피지 않은 사람에게 해로운 것도 검증이 되었다. 정부는 담배에 대해 금연을 법제화했고, 흡연율을 낮추려고 담배요금을 높였다. 그렇지만 담배 판매를 금지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영어 유치원과 암호화폐가 담배보다 해로운 건가? 정부가 나서서 바로 금지를 꼭 해야만 하는 것일까?

영어 유치원을 금지하겠다는 이유는 사교육을 억제하고 교육의 기회를 더욱 평등하게 마련하는 데에 있다. 영어는 필수 과목이고 개인의 출세에 영향을 끼치고 있어 교육 수요가 높다. 부모들은 자식에게 더 좋은 교육 기회를 주려고 영어 유치원, 학원, 과외를 위해 돈을 쓴다. 부유한 집 아이들에게는 당연히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이런 점에서 영어 유치원 금지는 영어 교육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것이다.

한국에서 비트코인과 같은암호화폐 거래 금지를 발표하자 금융 시장에 화제가 되었다. 국제 경제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나라 중에 처음 있는 일이다. 암호화폐 거래 금지 이유가 1980년대 노태우 정권시절의 과소비에 대한 전쟁과 비슷한 이유로 과열 억제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암호화폐는 한국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의 통화 관리를 위협할 수 있어 언젠간 통제 또는 금지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 거래를 금지한 이유가 마약이나 테러 단체의 악용과 자본 도피처로 악용되는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 열정이 과열된 시장에 대한 것이므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영어 유치원과 가상화폐 거래 금지의 근본적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는 행위를 강제로 못하게 하는 것이다. 영어 유치원은 영어 능력을 키우는 데에 효과가 별로 없겠지만, 그것은 부모가 결정할 일이다. 마찬가지로 암호화폐는 안전한 투자 상품은 아니지만, 그것은 거래하는 사람이 판단해야 할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손해를 보고 배우겠지만 주식 시장도 손해를 볼 수 있고 과열될 수 있어 가상화폐와 큰 차이가 없다.

환경 문제 관련해서 금지보다 현명한 답을 찾았다. 쓰레기 발생을 억제하기 위해 한국은 2000년대 초 일회용 비닐봉투를 10원으로 판매하고 쓰레기용 봉투를 판매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그리고 백화점과 마트에서 판매하는 비닐봉투는 쓰레기 봉투로 사용할 수 있다. 쓰레기 분류를 의무화해서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는 제도도 도입했다. 이러한 제도는 담배 세금과 같이 경제적 부담을 통해 시민의 행위의 변화를 유도하는 ‘인센티브’ 정책이다.

그런데 영어 유치원 문제는 근본적으로 사교육 문제로 금지보다 초등학교 영어 교육에 투자하면 된다. 그러면서 초등학교 한자 교육을 강화하고 중국어를 영어 대신에 선택을 허용하면 더 열린 외국어 교육 정책을 실천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선진국처럼 초등학교 안에 유치원을 만들면 많은 가정에 사교육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일관성이 있는 교육 과정을 도입하기 쉬울 것이고 교육이 더욱 효율적일 것이다. 공교육이 좋아지는 것은 사교육을 피하도록 하는 인센티브이다.

반면에 암호화폐 거래 억제를 위해서는 한국을 포함한 많은 선진국이 이미 주식 거래 이익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고 있는데 이것을 암호화폐에 적용하면 된다. 암호화폐가 사회적 문제가 된다면 주식보다 높은 세율로 부과하면 된다. 국제적으로 암호화폐를 통제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면 그 때 통제나 금지를 생각하면 된다. 암호화폐 거래 이익에 대한 세금과 위험을 생각하면 매력이 떨어질 것이다.

1988년 총선이 끝나고 여당이 과반수를 잃어 당시 큰 충격이었다. 선거 다음 날에 한 지인이 “민정당이 너무 큰 힘을 가지면 안 된다”며 “국회가 대통령을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 후에 4년 마다 총선이 치러졌고 대부분 여당 의석이 줄어드는 결과였다. 이렇게 보면 한국인은 독재 시대의 강한 정부를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강한 정부를 재현하려고 했던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한 것은 이러한 생각이 작용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시민의 행위를 바로 금지하는 강한 정부보다 시민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익을 추구하는 열린 정부이다.

로버트 파우저 robertjfouser@gmail.com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미시간대에서 일어일문학 학사 및 응용언어학 석사,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와 일본 교토대에서 영어와 영어교육을 가르쳤고, 일본 가고시마대에서 교양 한국어 과정을 개설해 가르쳤다. 한국 사회를 고찰하면서 한국어로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을 출간했다. 취미는 한옥과 오래된 동네 답사, 사진촬영으로 2012년 종로구 체부동에 ‘어락당(語樂堂, 말을 즐기는 집)’이라는 한옥을 짓기도 했으며, 2016년 교토에서 열린 ‘KG+’ 국제 사진전시회에 사진을 출품했다. 현재 미국에서 독립 학자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어로 ‘외국어 문화사’를 집필 중이며 참여형 새로운 외국어 교육법을 개발 중이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넥스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