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호주아저씨가 날 보더니 얼굴이 좋아보인단다. 푹 잘 잔 것 같다며 부러워한다. 두 사람은 거의 못잤단다. 히말라야 산골에서 잘 자려면 둔해져야 한다. 더러운 것도 무시하고 불편한 것도 참아야 한다. 깨끗하고 안락한 잠자리를 원하면 히말라야산골에 오면 안된다.

숙박비와 식비를 계산하려니 샤워비와 밧데리 차지를 더해서 비싸졌다. 산이 높아질수록 감수해야할 부분이다. 지불하고 출발했다.

자가트부터는 티벳불교 느낌이 물씬 든다. 전통 돌집들이 정겹다. 마을사람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세속에 찌들지않은 순수한 사람들이다.

계속 걸어서 올라가니 드디어 설산이 보인다. 싱기히말이다. 푸른 하늘 아래 도도한 자태를 보여준다.

필름
필름

싱기히말 아래 다리를 건너서 필름에 도착했다. 체크포인트가 있다. 쉬어갈 겸 점심도 먹었다.

점심 먹고 한시간 정도 걸어오니 오늘의 목적지인 치소빠니가 있다. 호주일행들이 자기들 숙소로 오라고 소리를 지른다. 근데 새로 지은 숙소라 맘에 안 든다. 난 로컬스러운 숙소가 더 좋다.

치소빠니 숙소
치소빠니 숙소

빔이 내 맘에 딱 드는 숙소를 골라서 나를 기다린다. 주인이 순박해보여서 일단 맘에 든다. 방도 햇빛 잘드는 복도에 붙은 방으로 골랐다. 주인 여자가 의자 두개를 우리방 앞에 놓아준다. 시골 여인의 순박함이 보여서 맘에 든다.

샤워가 가능하냐고 물으니 바켓에 뜨거운 물을 준단다. 남편이 먼저 씻고 내 차례가 되어보니 물이 딱 한 바켓이다. 작다고 뭐라했더니 충분하단다. 겨우 아껴가면서 머리도 감고 땀에 젖은 몸을 씻었다. 따뜻한 물로 씻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다.

빨래를 해서 햇살 좋은 베란다에 널었다. 바람까지 불어서 기분 좋게 마른다. 행복이란것이 참 소박한것이란 생각이 든다. 따뜻한 햇살과 산들바람이 고맙다.

저녁 주문을 하고 건너편 호주일행하고 양지바른 곳에 앉아서 노닥거렸다. 호주아저씨들이 친해지자 자꾸 농담을 한다. 한국말로 하는 농담도 알아듣기 힘든데 호주발음으로 하는 농담은 알아듣기 난해하다. 이해가 안되서 되물으면 농담이라고 한다.

호주팀은 잘생기고 키 큰 미남이와 항상 심각한 표정인 심각이 두 사람과 가이드 포터 총 4명이다. 가이드이름은 하리다. 네팔에서 흔한 이름인 듯 하다.

하리는 마나슬루쪽은 처음인 듯 보이고 포터가 오히려 더 잘 아는듯 보인다. 네팔에서 흔한 경우다. 카트만두 투어샵에 트레킹을 의뢰하면 그런 경우가 더러 있다. 특히 쭘밸리처럼 사람들이 잘 안가는 구간이면 카트만두에서 가이드구하기가 어려워서 교묘하게 노련하고 유능한 포터를 섭외한다.

미남이와 심각이는 방으로 쉬러 들어가고 하리는 나와 이야기하는 것이 좋은지 자꾸 이야기를 이어간다. 앉아서 노닥거리면서 쭘밸리에서 나오는 팀에게서 정보를 얻었다.

잠시 후에 대단한 청년을 만났다. 혼자서 라르케라를 넘은 벨기에청년이 지나간다. 80일동안 네팔 트레킹 중이란다. 이번 구간은 돌포 무스탕을 거쳐 안나푸르나라운딩중에 마나슬루라운딩을 합쳐서 한단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오늘은 자가트에서 치소빠니까지 8.5킬로미터를 걸었다. 짧은 거리지만 뒤꿈치에 문제가 생겨 걷기가 힘들었다. 다행히 빔이 오늘은 쉬는 시간을 넉넉히 가지자고 한다. 덕분에 마나슬루 시골마을을 푹 즐겼다. 이런 동네에서는 며칠 살아도 좋겠다.

저녁시간이 되어서 부엌에 가니 동네 아낙네들이 놀러 와있다. 치소빠니부터는 티벳족들이 사는 곳이라 인사말이 다르다며 아낙들이 나에게 티벳말을 가르쳐준다. 순박한 사람들덕분에 이 동네가 더 좋다.

나마스테대신 ‘따시뗄레’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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